미국·이란 전쟁 장기화로 정유업계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주유소 모습. /사진=뉴스1


정부가 기름값을 낮추기 위해 정유사를 향해 '석유 최고가격제' 칼을 빼들었다. 정치권에서도 횡재세 법안이 재등장하며 미국·이란 전쟁으로 원가 부담이 커진 정유업계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0시 부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실시했다. 1차 최고가격은 리터(ℓ)당 보통 휘발유 1724원, 자동차용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으로 설정됐으며 국제 유가 상황을 반영해 매 2주 단위로 재조정된다. 지난 11일 정유사가 제출한 평균 공급가격에 대비 리터당 휘발유는 109원, 경유는 218원, 등유는 408원 저렴하다. 정부가 시장 가격 조정에 나선 건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 만이다.

정부는 매점매석 금지 고시도 발표했다. 최고가격제 시행 후 정유사가 손실을 막기 위해 공급량을 낮출 거란 우려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2개월간 월 반출량을 전년 동기 대비 90% 이상 유지해야 한다. 정유사가 국내 공급을 줄이고 수출을 늘릴 수 있단 우려로 수출 물량 역시 전년 동기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론 국제유가 상승이 호재지만 유가 급등락이 심해 중장기적인 경영 계획을 세우기 어렵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 수급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라며 "정부가 최고가격제 손실분을 보장해준다 했지만 시행 초기다 보니 예상할 수 없는 것도 우려된다"고 했다.

정부는 정유사가 최고가격제로 인한 손실액을 계산해 제출하면 석유 전문가, 회계법인, 교수 등으로 구성된 '최고액 정산위원회' 논의를 통해 분기별로 보전해주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보전해줄지가 불분명하고 전문가 수십 명의 의견을 모아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만큼 보전금 지급이 늦어질 수 있다. 정유사가 정부 정산액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손실 보전을 위한 정부의 재원 마련 방안이나 지출 규모 등도 나오지 않아 정유업계 불안이 커진다.


정치권에서도 정유사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국회에선 유가 변동을 이용한 에너지 기업의 과도한 초과 이윤을 환수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개정안, 일명 횡재세법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11일 장철민 의원(더불어민주당·대전 동구)은 초과 이익에 추가로 법인세 20%를 부과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미국·이란 전쟁 장기화로 국제유가가 올라 정제마진 개선으로 수혜를 입는 정유사들에 추가 세금을 부과하겠단 취지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판매가격에서 원유 구매비 등을 뺀 값으로 정유업계 수익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정유사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원유 운송 운임과 보험료 부담이 확대되는 상황이다. 사진은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전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회의'에서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등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뉴스1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 전부터 정유사들은 여러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원유 운송 운임과 보험료가 치솟아 원가 부담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전쟁 장기화 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으로 석유제품 수요가 위축돼 정제마진이 악화될 가능성도 크다.

원유 운임 지표인 발틱원유유조선지수(BDTI)는 지난 11일 기준 2835로 전쟁 직전인 지난달 27일(1991) 대비 42.4% 올랐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적용되는 보험 프리미엄은 3%까지 상승하며 전쟁 전(0.25%) 대비 12배 뛰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넘어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의 원유 운송 선박들로 공격 범위를 확대하고 있어 해당 지표들은 더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정유사들은 원유 수급선을 중동 외 지역으로 다변화하고 있지만 원가 부담 확대로 어려운 상황이다. 해양진흥공사는 중동~한국 대신 서아프리카·북미 등 대체지 경유를 분석한 결과 운송기간이 기존 25일에서 최대 60일까지 늘어난다고 보았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선박 운임비가 전반적으로 모두 올랐기에 운송 기간이 길어질수록 원가가 상승한다. 호주, 동남아 등 인근 국가에서 스폿 물량을 구입해 운송 기간을 줄일 수 있지만 장기계약과 비교해 유가가 20%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참고할만한 최고가격제 시행 선례가 없다 보니 정부 정책에 동참하며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중동 전쟁 진행 상황도 함께 살피며 대응책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