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기름값 묶은 한국…일본은 '톱러너'로 에너지 효율 높였다
김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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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중동발(發) 오일쇼크에 대응해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30년 만에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한시 도입했다. 물가 안정을 위한 임시적 조치지만 인위적 가격 통제로 시장이 왜곡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유사의 손실을 국민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대목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과 같은 고유가 사태에 대비해 일본처럼 '에너지 다소비·저효율'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 4차 회의를 열고 석유제품 가격 안정화 조치를 결정했다.
1차 최고가격은 보통휘발유 리터당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으로 설정됐다. 현재 정유 4사의 평균 공급가격은 휘발유 1833원, 경유 1930원, 등유 1730원이다. 해상 운송비가 추가로 발생하는 도서 지역 등 특수 지역의 경우 휘발유 1743원, 경유 1732원, 등유 1339원으로 상한가격이 별도로 책정됐다.
이번 최고가격은 이날부터 26일까지 2주 동안 적용된다. 정부는 가격 안정 효과와 국제 유가 반영 시차, 재정 부담 등을 고려해 최고가격을 2주 단위로 재설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오는 27일 국내외 유가 상황을 반영해 가격 상한을 조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중동 정세 악화 이후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하자 이 같은 조치를 단행했다. 최근 국내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0원가량, 경유는 300원 이상 상승했다. 또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비축유 방출 결정 등으로 향후 유가 전망의 불확실성도 커진 상황이다. 강기룡 재경부 차관보는 "단기간에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한 만큼 단기 대응 차원에서 최고가격제를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에도 정부는 국제 유가와 국내 가격 흐름을 지켜보며 비축유 방출, 유류세 추가 인하,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취약계층 직접 지원 등 단계적 대응을 통해 유가 상승에 따른 민생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국제 유가 상승은 곧바로 주유비와 전기·가스 요금, 식탁 물가로 이어질 수 있어 단기적인 물가 안정 조치의 필요성은 크다. 다만 최고가격제는 정부가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조치인 만큼 부작용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은 "(최고가격제는) 국제 유가 급등과 같은 외부 충격이 발생할 경우 소비자 부담을 일시적으로 줄이는 효과는 있다"면서도 "도입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과 수요 등 부작용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초과 수요는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상태를 의미한다. 가격이 시장 가격보다 낮게 설정되면 소비는 늘고 공급 유인은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
정부는 정유사가 가격 상한으로 손실을 볼 경우 세금으로 이를 보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 경우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국민도 세금을 통해 사실상 기름값 인하 비용을 부담하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경제의 에너지 구조 취약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 경제가 외부 에너지 충격에 취약한 이유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높은 수입 의존도다. 세계 8위의 원유 소비국인 한국은 연간 원유 수요의 10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DS증권에 따르면 이 가운데 중동 의존도는 약 65~70% 수준이다.
한국 경제의 '에너지 효율'이 낮다는 점도 취약 요인으로 거론된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부가가치 기준 에너지 원단위는 0.1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097)을 크게 웃돈다. 에너지 원단위는 1차 에너지 공급량을 총부가가치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의미다. 일본(0.087), 독일(0.074)과 비교하면 한국은 같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이들의 2배 가까운 에너지를 소비하는 셈이다.
결국 오일쇼크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단기적인 가격 억제책을 넘어 산업 전반의 고강도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모범 사례가 이웃 나라 일본이다.
일본 역시 한국처럼 원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지만 1970년대 두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며 국가 차원의 에너지 효율 혁신에 나서 경제 내성을 키웠다. 1979년 제정된 '에너지사용합리화법'은 일본 에너지 절약 정책의 핵심 법률로 산업·건물·수송 부문 전반에 걸쳐 에너지 효율 개선을 의무화했다.
특히 1999년 시행된 '탑러너'(Top Runner) 제도는 일본 산업의 에너지 효율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정책으로 평가된다. 이는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등 특정 품목 중 시장에서 가장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을 기준으로 삼아 일정 기간 내 모든 제조사가 이를 충족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이다.
일본은 이러한 정책과 함께 철강·화학 등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중후장대형 산업 비중을 점진적으로 축소,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재편해 경제 규모 확대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소비 증가를 억제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에 성공했다. 그 결과 일본은 외부 충격에 강한 경제 구조를 갖추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 정책 박사는 "최고가격제는 본질적으로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눌러 단기적으로 안정시키는 정책 수단"이라며 "이번 조치가 정유사 공급가격에 적용되는 방식인 만큼 실제 소비자 가격 안정 효과가 얼마나 나타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본의 탑러너 제도처럼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리는 정책을 도입하는 방향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하며 "다만 에너지 효율 규제는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그 부담이 결국 제품 가격 상승이나 소비자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는 석유제품 소비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고부가가치 산업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장기적인 해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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