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speed), 유연성(flexibility), 실행(execution)에 방점을 두고 신속히 개혁한다."


2025년 4월, 트럼프는 행정명령을 통해 기존 국방 조달 체계를 "시대에 뒤떨어진 시스템"으로 규정하고 전면 개편을 명령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조달 절차는 완전히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령한 행정명령 '국방 조달 현대화 및 방산 기반 혁신 촉진(Modernizing Defense Acquisitions and Spurring Innovation in the Defense Industrial Base)'은 미 국방부 조달 체계의 전면적인 대수술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그래픽=강지호 기자


펜타곤, '85% 해결책'으로 첨단 기술 선점

'OODA 루프'(관찰·판단·결정·실행으로 이어지는 의사결정 순환 고리) 개념을 창시한 미 공군 전략가 존 보이드에 따르면 "전장의 결정 사이클을 더 빨리 돌리는 쪽이 상대의 대응 능력을 무력화하는 압도적 우위를 얻는다." 미군이 AI를 미래 역량이 아닌 당장의 전투 필수 요건으로 규정한 것도 이 판단에서 비롯됐다.

문제는 가장 앞선 AI를 군이 아닌 민간에서 만든다는 점이었다.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인사청문회부터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미국 민간 부문의 AI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 우리는 이를 국방부의 필요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 AI, 드론 등 민간의 혁신 속도를 전장의 속도로 동기화하는 '조달 혁명'의 서막이었다.


구체적인 행동 강령은 그해 11월 7일 나왔다. 헤그세스는 합참의장단, 방산업계 CEO 등을 모아놓고 한 시간 동안 '속도(speed)'를 25번 반복하며 개혁의 윤곽을 구체화했다. F-35 전투기 한 대를 전력화하기 위해 20년 넘게 기다리던 완벽주의 시대의 종언을 고하며, 기존 체계가 "전쟁의 속도가 아닌 서류의 속도로 움직였다"고 직격했다. 나아가 "오늘 당장 장병의 손에 쥐어주는 85% 해결책이, 끝없는 시험을 기다리는 100% 해결책보다 낫다"며 민간의 소프트웨어(SW) 개발 방식(먼저 출시하고 실전에서 반복해 개선하는 애자일 방식)을 무기 획득 체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미국은 첨단 기술 도입을 위해 기존 국방 조달체계의 3대축을 전면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미국, 이제는 '신속 획득'이 기본

말뿐인 개혁은 아니었다. 미 국방부는 연설 당일 세 개의 메모를 동시에 발표하며 제도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핵심은 단순했다. 과거 예외 조항에 불과했던 '신속 획득 트랙'을 제1원칙으로 격상시켰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무기 도입을 가로막던 3대 관문(요구조건 결정·획득 관리·예산 배분)을 동시에 허물었다. 가장 먼저 각 군의 요구사항을 수년씩 심사하던 심의 시스템을 22년 만에 전면 폐지했다.

획득과 예산 배분 방식도 뜯어고쳤다. 무기 하나하나를 별도 조직이 관리하던 방식을 버리고, 연관 무기체계를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묶어 전담 총괄자 한 명이 예산·계약 전권을 쥐는 구조로 바꿨다. 이 총괄자는 국방부 메모에 명시된 "수개월의 결재 없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진다"는 원칙에 따라 자원을 즉각 재배치한다. 더 나은 민간 기술이 나오면 즉시 방향을 틀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의 획득 체계는 사실상 투트랙으로 재편됐다. 항공모함·핵잠수함 같은 대형 하드웨어는 기존 절차를 유지하지만, 개발 주기가 빠른 드론·AI·SW 등은 신속 계약을 기본으로 한다. 미국 방산·정부계약 전문 로펌 홀랜드 앤 나이트(Holland & Knight)는 이번 개혁을 "느리고 규정 준수 중심이던 시스템에서 포트폴리오 기반의 상업적으로 통합된 조달 생태계로의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으로 평가했다

바뀐 패러다임, 변화 시급한 한국

로이터는 이번 개혁을 "글로벌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획득 체계의 전면 재편"으로 분석했다. 전직 상원 군사위 사무국장 아놀드 푸나로는 "이번 개혁은 수십 년간 국방 조달을 제약해온 기존 패러다임을 깨뜨리고, 더 뛰어난 역량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공급하는 모델로 대체할 것"이라며, 단순히 조달 절차를 빠르게 한 것이 아니라 무기 획득의 기본 논리 자체가 바뀐 점을 지적했다. 이에 동맹국들도 이 변화와 보조를 맞춰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한국도 그 과제 앞에 서 있다. 장원준 전북대 교수는 "통상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양산해 배치하기까지 10~15년 이상이 소요된다"며 "이같은 방식으로는 군사적 위협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일선에 배치될 즈음이면 해당 기술은 이미 시대에 뒤처진다. '기술 진부화'가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남기헌 연구위원은 "현행 획득체계는 하드웨어 중심이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SW 획득에 특화된 별도의 조달 절차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2026년 2월 유용원 의원 등 17인이 '소프트웨어 중심 무기체계 획득절차 특별법'을 발의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현행법상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부속품일 뿐, 이를 중심으로 한 별도의 획득 절차는 전무한 실정이다." SW를 독립 무기체계로 정의하고 애자일 방식의 반복 개발 사이클과 신속 조달 트랙을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 심의 중에 있다.

◆특별취재팀=제도혁신연구소 이상언 소장·이무영 부소장, 정치경제부 김인한·김성아 기자, 산업1부 최유빈 기자, 증권부 이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