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개헌 동참 요구를 거부하면서,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개헌이 추진될 가능성이 커졌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31일 우원식 국회의장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원포인트 개헌' 에 불참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군사작전 하듯 개헌을 밀어붙이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이재명 대통령 연임을 위한 수순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개혁신당 등 6개 정당은 이날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며 개헌안 발의를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정신, 대통령의 계엄권 제한,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원칙을 헌법에 담기로 합의했다.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인 197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범여권과 개혁신당, 무소속 의원을 합쳐 187석 안팎이어서 국민의힘에서 10명 이상의 이탈표가 나와야 한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의 입장 변화만 기다릴 수도 없다. 오는 6월 지방선거일에 국민투표를 병행하려면 다음달 7일까지 개헌안이 발의되어야 하고, 5월 초 국회 의결도 마쳐야 한다.

이번 개헌안은 국민의힘이 그간 내세워 온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은 여러 차례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언급해 왔고, 장 대표 역시 부마항쟁 정신 계승을 강조한 바 있다. 지방분권 강화와 국가균형발전 또한 보수 진영이 꾸준히 주장해 온 방향이다. 대통령의 계엄권 제한도 국민적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자는 차원이다. 개헌안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도 국회가 해제를 의결하거나 48시간 안에 승인하지 않으면 즉시 효력을 잃게 하는 내용이다. 현행 헌법의 불명확성을 보완하자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산물로 탄생한 현행 헌법은 어느덧 불혹을 앞두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할 안전장치를 보강하고 달라진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데 여야의 이견은 없다. 하지만 개헌은 늘 '필요하지만 미뤄지는' 의제였다. 여야의 갈등이 커지거나 다른 정치적 이벤트가 생기면 번번이 논의에서 밀리곤 했다. 특히 권력구조를 손대는 부분은 대통령과 여야의 이해관계에 막혀 개헌 논의 자체를 좌초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여야가 합의 가능한 사안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왔고, 이번 지방선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 점에서 국민의힘이 개헌안 내용이 아닌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로 보기 어렵다.

다만 절차 문제를 제기하는 국민의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민주당이 그동안 다수 의석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국회를 운영해 온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비친 상황에서 제1야당이 협상에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측면도 있다. 그런 만큼 여권 역시 개헌 명분만 앞세우기보다는 야당이 논의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숙의와 공론의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개헌은 특정 정당이나 정권의 과제가 아니다. 낡은 권력 구조를 고치고 국민의 기본권을 확장하는 시대적 책무다. 일부 이탈표에 기대어 통과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무산되는 개헌은 모두 정치의 실패다. 여야 합의와 국민적 동의 속에 추진될 때 비로소 헌법은 권위를 얻는다. 지금은 정쟁이 아니라 헌법만을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