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정유사 손실 보전을 위해 4조원이 넘는 예산을 편성했지만 보전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정유업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부산의 한 주유소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가 세 번의 가격 상한제를 시행하는 동안 정유사 손실 보전 방안은 구체화되지 않아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4조가 넘는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정유사들이 손실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미리 준비해 재원이 적정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세부 가이드라인 제시가 필요하단 지적이 제기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3차 석유 최고가격을 발표하고 오는 10일 0시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미국과 이란이 2주 휴전을 결정하며 국제 유가가 급락했음에도 이번 최고가격이 2000원을 넘을거란 전망이 나온다. 최고가격 결정은 직전 가격이 아닌 2주간 평균 유가 흐름을 반영하는데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시장 석유제품 현물 가격이 중동 전쟁 확전 우려로 지속해서 올랐다. 2차 석유 최고가격은 보통 휘발유 1934원·자동차 및 선박용 경유 1923원·실내 등유 1530원으로 지정됐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시행되고 있지만 정유사 손실 보전 세부 기준은 불분명해 업계 불안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말 확정된 추가경정예산에서 정유사 손실 보전 예산 4조2000억원을 목적예비비로 편성했다. 정유사가 손실액을 직접 산정해 공인 회계법인 심사를 거쳐 제출하면 '최고액 정산위원회'가 검증해 보전액을 산정하겠단 큰 틀도 제시했다. 전체 재원의 약 20%가 투입되는 만큼 산정 기준 등 세부 내용도 함께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부는 최고가격 설정 기준과 시행 기간, 대상 유종 범위 등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표를 미뤘다.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아 정유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유사가 손실액을 자체 산정해야 하는데 어떤 항목을 손실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아 제출 자료와 검증 절차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어렵다. 손실 입증 과정에서 원가 구조와 가격 전략 등 영업기밀이 노출될 수 있기에 정부 가이드라인 없이 선제적으로 자료를 준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 대응이 늦어지며 손실 보전액 지급 시점도 밀릴 가능성이 커진다. 최고액 정산위원회는 아직 구성되지 않았고 전문가 수십 명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 만큼 결론을 도출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는 1차 손실분을 오는 8월부터 지급하겠다고 했다.


정부의 손실 보전 세부 기준 발표가 미뤄지는 사이 석유 최고가격제로 인한 정유업계 부담은 늘고 있다. 국제유가는 중동 위기 고조로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는 가운데 정유사들이 원가 상승분을 제품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정제마진이 악화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과의 기름값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중동 전쟁 이후인 3월 첫째 주부터 넷째 주까지 한 달간 유럽 20개국 평균 경윳값은 31.8% 올랐지만 한국은 8.1% 상승에 그쳤다. 정부의 손실 보전액 지급이 늦어질수록 정유사 실적은 빠르게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유업계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손실 보전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2일 공개한 '2026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5조원 규모의 재정이 민간 기업의 손실보전에 투입되는 만큼 구체적인 산정 기준과 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산정 기준과 운용 방안은 고지받지 못했다"며 "정부 발표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