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사진=뉴시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중동 전쟁발 충격을 주시하며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다. 공급 충격이 장기화할 경우 기대인플레이션이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정책 대응 필요성을 열어두면서도, 현재는 물가 상방 압력과 성장 하방 압력이 동시에 커진 상황인 만큼 금리 방향 제시보다는 사태의 전개와 파급 영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개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급충격에 대한 통화정책 운영의 기본 원칙은 명확하다"며 "충격이 일시적일 경우에는 정책 시차 등을 고려할 때 금리 조정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그 충격이 장기화하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확산되고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정해질 경우에는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이날 금통위원 전원 일치로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7회 연속 동결 기조를 이어가게 됐다.


중동 전쟁발 충격…"성장 둔화·물가 압력 동시 확대"

이 총재는 이번 동결 배경으로 중동 전쟁 이후 급변한 대내외 여건을 꼽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에너지 인프라 훼손 등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에너지 공급 차질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경제는 성장세가 약화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대되는 흐름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중동 전쟁 이후 대외 여건이 크게 바뀌었다"며 "국제유가 상승과 에너지 공급 차질로 글로벌 성장세는 약화되고 물가 압력은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내 상황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평가했다. 1분기까지는 수출 증가와 소비 회복으로 예상보다 견조한 흐름을 보였지만 중동 사태 이후에는 심리지표가 약화되고 일부 업종에서 생산 차질이 나타나면서 성장의 하방 압력이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이 총재는 "최근에는 심리지표가 약화되고 에너지 관련 업종을 중심으로 생산 차질도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물가에 대해서는 상방 압력이 한층 커졌다고 평가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유류 가격 상승 영향으로 전월 2.0%에서 2.2%로 높아졌고, 기대인플레이션율도 2.7%로 상승하는 등 물가 불안 요인이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 총재는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물가 상방 압력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며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존 전망치를 상당폭 웃돌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근원물가 역시 기존 예상보다 다소 높은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우 전쟁과 달라"…복합 충격에 정책 난이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서는 일단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현 시점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작다"고 말했다. 다만 "2주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에너지 인프라가 파괴된다면 영향이 장기화할 수 있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로 간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지금의 중동 전쟁 충격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당시에는 팬데믹 기간 억눌렸던 수요가 확대되며 경기가 회복되는 국면이었던 만큼 전쟁 충격이 경기 둔화보다는 물가를 크게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고 짚었다.

그는 "러·우 전쟁 당시에는 수요가 강하게 회복되는 상황이어서 전쟁 충격이 물가를 크게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그때는 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보다 복합적인 충격이라고 진단했다. 전쟁이 물가뿐 아니라 경기에도 동시에 영향을 미치면서 두 변수 간 상충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지금은 전쟁이 물가뿐 아니라 경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물가와 경기 간 상충이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환율 수준이 이미 높은 데다, 경제 주체들이 물가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회의에서 포워드 가이던스가 공개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중동 관련 뉴스에 따라 경기 변수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면서 금리 경로 자체를 제시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판단이다.

이 총재는 "최근 몇 주 동안 중동 관련 뉴스로 경기 변수 변동성이 너무 급격히 바뀌었다"며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자리를 잡아야 거기에 맞춰 의견을 제시하고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3개월 내 금리 인상이나 인하에 관한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환율과 관련해서는 외국인 자금 이탈이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의 핵심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외국인 주식 매도가 환율 상승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지난해와는 차이가 있다"며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외국인 주식 매도 액수가 478억달러인데 작년 한 해 전체가 70억달러였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3월에만 298억달러가 나갔다"며 "이란 사태가 안정되면 그 이전에 환율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올라간 것만큼 빠르게 내려올 가능성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부동산·재정까지 언급…"구조적 문제 해소 필요"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부분과 한계를 동시에 짚었다. 그는 "이번 추경은 재정 적자, 부채를 통해 조달된 것이 아니라 초과 세수를 통해 조달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추경안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4조8000억원 들어가 있다"며 "경기 대응을 해야 하는데 초과 세수가 생겼다고 이것을 초중고등학교 교육 예산으로 보내는 것이 과연 목적에 합당한가"라고 반문했다.

부동산과 가계부채에 대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수도권 주택시장은 전반적으로 오름세가 둔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서울 외곽과 수도권 비규제 지역을 중심으로 거래가 늘고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는 등 지역별 차별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총재는 "주택 가격 상승이 다른 모든 자산 수익률을 뛰어넘는 구조가 계속되면 자본의 효율적인 배분을 위해 나쁜 방향"이라며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선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현송 차기 총재 후보자의 외화자산 비중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엄호했다. 이 총재는 "국민 정서에는 어긋날지 모르지만 해외 인재를 모셔 오는 데 외화자산이 있다고 해서 여러 우려를 하는 것은 너무 크게 고려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의 애국심이 가진 자산보다 클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마지막으로 "앞으로 통화정책은 중동전쟁과 관련해 입수되는 추가 정보와 경제지표를 바탕으로 그 충격이 물가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와 지속성을 판단하면서 정책 방향을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