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시내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나타난 모습. /사진=뉴시스


국내 정유업계가 올해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더 난처한 상황에 놓일 전망이다. 고유가 흐름으로 재고 평가이익이 오르며 외형상 실적은 개선되지만 사실상 장부상 이익인 만큼 기업의 실질적인 이익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가가 안정화되면 전쟁 기간 구매했던 고가의 원유 가치가 폭락해 2분기 대규모 손실도 우려된단 지적이다.


28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1조199억원을 기록하며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에쓰오일(S-Oil)도 같은 기간 7508억원 규모의 흑자를 내며 전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2배 가까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비상장사인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도 1조원대 영업이익 달성이 유력하다.

견조했던 정제마진 흐름이 호실적으로 이어졌다. 올해 1분기 기준 복합 정제 마진은 배럴당 19달러로 전 분기 대비 배럴당 4.6달러 상승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자재 비용을 제외한 수치로 정유사 이익의 핵심 지표로 여겨진다. 통상적으로 정제마진이 높을수록 이윤이 많이 남기 때문에 정유사 영업이익이 동반 상승하게 된다.


다만 이번 실적의 핵심이 재고평가이익이라는 점에서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국제 원유 및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쟁 이전에 확보해 둔 재고자산의 장부상 가치가 크게 상승한 게 실적으로 반영돼서다. 실제 전쟁 이전 배럴당 60달러 후반대~70달러 초반대였던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24일 기준 105.99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금의 호실적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현재는 원유 도입 시점보다 판매 시점 가격이 오르며 이익이 커진 것처럼 보이지만, 추후 유가가 안정세로 돌아서면 전쟁 기간 비싸게 들여온 물량이 대규모 평가손실로 적용돼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석유 최고가격제까지 장기화하면서 향후 수익성 역시 불확실한 상태다. 최고가격제의 경우 정유사의 주유소 석유제품 공급가 마지노선이 정해져 있어 현재의 국제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정부가 손실 보상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으로 예비비 4조2000억원을 마련했으나 정유사의 1분기 대규모 흑자가 현실화할 경우 여론상 정유사 지원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는 우려다.

손실액 보상 기준을 두고도 정부와 업계 간의 이견이 예상된다. 정부는 손실액을 최고가격제와 공급가의 원가 차이로 보고 있는 반면에 정유업계는 석유제품의 국제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매출 손실액을 추정하는 상태다.

지난달 27일부터 시행 중인 나프타 긴급 조정 조치도 고충이다. 국내 정유업체는 이날부터 5개월 동안 나프타 수출을 전면 제한받고 있다. 나프타 수급난을 겪고 있는 다른 업계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결정이지만 수출로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정유사 입장에서는 추가 수익 창출 기회가 줄어드는 조치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리스크가 완화되면 전쟁 당시 고가에 샀던 원유는 재고평가손실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1분기 대규모 흑자는 단기적인 실적으로 봐야 한다"며 "(주유소 공급가격 제한 등도) 이해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업계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