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하락 우려와 구체화되지 않는 정부 손실 보전 방안으로 인해 정유 4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국내 정유 4사가 올해 1분기 조 단위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회사 내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와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해 일시적으로 수익성이 개선됐을 뿐 전쟁 기간 중 비싸게 구입한 원유가 제품 생산에 투입되면 실적이 악화할 수 있어서다. 손실 보전액 산정 기준에 대한 정부와의 이견도 커 업계의 불확실성은 확대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조2832억원으로 집계됐다. SK이노베이션 전체 영업이익의 60%가량을 차지하는 규모다. 에쓰오일도 1분기 영업이익 1조2311억원을 올리며 흑자 전환했다.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는 영업이익이 지난해 1분기 대비 각각 1310%(1조6367억원), 2902%(9335억원) 급증했다.

호실적은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래깅 효과와 재고평가이익 증가 때문이다. 래깅은 원재료 구입 시점과 제품 생산·판매 시점 차이서 발생하는 시차 효과를 말한다. 국내 정유사는 원유 운송·저장·정제 과정을 고려해 일정 규모의 재고를 보유한 뒤 석유제품을 생산·판매한다.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는 물론 휘발유와 석유 등 제품 가격도 급등하면서 수개월 전 낮은 가격에 확보한 원유로 제품을 생산하자 정제마진이 개선됐다.


2분기부터는 암울하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 지난 1분기 실적 개선을 견인했던 요소들이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고가에 도입한 원유가 생산에 투입되고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경우엔 정제마진 축소와 재고평가손으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과 석유제품 수출 통제로 인해 불어난 손실을 제대로 보전받지 못할 거란 우려도 정유업계의 고민을 깊게 한다. 현재 정유사들은 국제유가와 원유 도입비, 물류비 등이 모두 올랐음에도 최고가격제로 인해 원가 상승분을 반영치 못하고 있다. 국내 공급 우선 조치로 수출 물량까지 제한되면서 업계에선 누적 손실이 3조원대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한다.


정유업계에선 원유 도입과 정제, 판매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제품별 원가 산정이 불가능한 만큼 국제 석유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손실액을 산정해야 한단 입장이지만 정부는 원가 기반으로 산정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날 중동상황 일일 브리핑에 나선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3조원대 손실은 국제 석유제품 가격 기준으로 단순 계산한 최대치"라며 "손실 보전은 원가를 산정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손실 보전액 지급 시점도 문제다. 정부는 이번 달 말 손실 보전 정산 기준을 고시하고 이를 검증하는 '최고액 정산위원회'를 출범할 계획이다. 정유사가 손실액을 자체 산정한 뒤 회계법인 검증과 위원회 심의까지 거쳐야 하는 만큼 실제 보전까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1분기 호실적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발생한 시차 효과와 재고평가이익 등 일시적 요인이 컸다"며 "고가 원유 투입과 최고가격제 부담이 본격화되는 만큼 정부의 실질적인 손실 보전 방안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