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사람 살리는 포용금융?"…기관간 분절·정보단절로 '삐걱'
[포용금융 2.0②]
국세 체납·원스톱 분절·신용평가 한계
김 원장 "현장서 제도 사각지대 확인"
기본금융·자체신용평가 모형 강조
강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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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금융이 단순 대출 지원을 넘어 채무조정, 추심 관행 개선, 취약차주 재기 지원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동행미디어 시대는 제도 설계와 상담 현장을 함께 짚으며 금융이 나아가야 할 다음 과제를 들여다봤다.
지난 26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성남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문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담 창구 앞 대기석이 하나둘 채워졌다. 누군가는 손에 든 서류봉투를 계속 만지작거렸고, 또 다른 상담자는 휴대전화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상담 창구에서는 "현재 소득이 어느 정도인지" "연체가 시작된 시점이 언제인지" "기존 대출이 몇 건인지"를 묻는 상담사의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센터를 찾은 이들의 사정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제도권 금융의 문턱에서 더 밀려나지 않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점이다. 긴급 생계비, 채무조정, 정책서민금융 상담을 받기 위해 센터를 찾은 이들에게 이곳은 단순 상담창구가 아니었다. 무너진 신용과 생활을 다시 붙잡기 위한 마지막 안전망에 가까웠다.
이날 동행미디어 시대는 김은경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과 함께 성남센터 상담 현장을 둘러봤다. 성남센터는 서금원과 신복위 상담이 함께 이뤄지는 통합지원센터다. 김 원장은 오전 9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정책서민금융 신청, 채무조정 상담, 금융·복지 연계 지원 절차 등을 살폈다.
김 원장은 상담자들이 낯선 방문자 앞에서 긴장하지 않도록 딱딱한 정장 대신 편안한 셔츠 차림을 택했다. 그는 상담 창구 앞에 앉아 신청자의 소득과 채무 구조, 연체 상황을 함께 들여다보며 상담사들의 안내 과정을 지켜봤다. 현장을 점검하는 방문이라기 보다는 상담실 안에서 실제로 어떤 말이 오가고 어디서 제도가 막히는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현장에서는 단순 대출 상담보다 복합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고금리 대출 상환 부담과 연체 우려, 소득 감소, 생활비 부족이 맞물리면서 한 번의 금융 상담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게 상담사들의 설명이다.
상담실 안에서는 금융권에서 익숙한 용어도 민원인에게는 낯선 말이 됐다. '상계' '선순위·후순위' '채무조정', '재조정' 같은 단어가 오갈 때마다 김 원장은 상담 내용을 다시 풀어 설명했다. 그는 "눈빛만 봐도 알아듣고 있는지, 놓치고 있는지 보인다"며 "금융권에서 익숙한 말도 민원인에게는 어려운 언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세 체납에 막힌 생계형 자영업자…"6개월 사이가 사각지대"
이날 현장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사각지대는 국세 체납 문제였다. 상담사들은 생계형 자영업자 가운데 오래 전의 사업 실패나 폐업 과정에서 생긴 국세 체납 때문에 서민금융 상품 이용이 막히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금 체납 정보가 신용정보에 남아 있으면 정책서민금융 대출 진행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특히 문제는 '시간차'다. 국세청에는 생계형 체납자에 대해 납부 의무 소멸 등을 검토하는 절차가 있지만 체납을 소멸하는 데 최대 6개월 정도 걸린다. 그 사이 신용정보에 체납 정보가 있으면 대출 진행이 어렵다.
김 원장은 최근 국세청 관계자들과 만나 관련 자료 연계 필요성을 논의했다. 김 원장은 국세 체납을 일률적으로 금융지원 배제 사유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금을 낼 여력이 있는데 체납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상공인이 사업 실패나 폐업 과정에서 체납 상태에 놓이는 경우도 있다"며 "이들의 어려움을 별도로 데이터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부·고용부와 연계하듯 국세청과도 협업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상호 정보 연계를 위한 업무협약(MOU)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확인된 또 다른 문제는 기관 간 정보 단절이었다. 국세청은 체납액 납부의무 소멸 여부를 판단할 권한과 절차를 갖고 있지만 복지·소득 정보와의 연계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서금원·신복위는 상담 과정에서 취약차주의 소득과 복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접점이 있다. 생계형 체납자를 더 빨리 찾아내기 위해 기관 간 연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민금융의 과제는 돈을 빌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아직 연체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연체 징후가 나타나는 차주를 조기에 발견하고 필요한 지원으로 연결하는 것이 현장의 다음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김 원장은 "서민금융은 단순히 자금을 공급하는 정책이 아니라 다시 버틸 수 있게 연결해주는 안전망"이라며 "상담 현장에는 통계로는 보이지 않는 취약차주의 어려움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연체 전 단계의 조기 지원을 강조했다. 김 원장은 "문제가 본격화된 뒤 대응하는 것보다 제도권 금융에서 완전히 밀려나기 전 위험 신호를 빨리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상담 접근성을 높이고 필요한 경우 복지·고용 지원까지 함께 연계하는 방향으로 현장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말로만 원스톱 안 된다"…신용평가도 '과거 연체'서 '가능성' 중심으로
김 원장은 이날 현장에서 '원스톱 서비스'의 한계도 마주했다. 그는 "말로는 원스톱 서비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분절 현상이 심하다"며 "신복위는 신복위대로, 미소금융은 미소금융대로, 서금원은 서금원대로 벽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벽을 깨야 한다"며 "현장에 있는 분절 현상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이 말하는 서민금융은 돈을 빌려주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닌 다시 제도권 안에서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상담, 채무조정, 정책대출, 복지 연계, 신용회복 지원이 각각 따로 움직이면 취약차주는 기관을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다시 탈락할 수밖에 없다.
신용평가 체계 손질도 김 원장이 보는 핵심 과제다. 이날 상담 사례에서도 신용점수는 취약차주의 현재 상황과 재기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김 원장은 "신용평가에 허수가 많다"며 "점수만 보면 체감과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서금원 차원의 대안신용평가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서금원이 보유한 정책서민금융 데이터 등을 분석해 데이터센터를 만들고, 데이터 전문위원회 운영을 통해 모델을 구체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향후에는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이 활용할 수 있는 신용평가 모델로 발전시켜 기존 신용평가 체계에서 포착하지 못한 취약차주의 상환 가능성을 더 정교하게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원장이 주목하는 것은 '과거의 실패'가 아니라 '현재의 가능성'이다. 그는 "우리는 너무 과거에 집착돼 있다"며 "최근 1년 또는 3년 동안 며칠을 연체했는지 같은 정보를 중심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 사례를 보면 현금흐름, 계약 체결 여부 등 현재 상황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비금융 정보가 많이 들어간다"며 "우리도 금융 정보에 비금융 정보를 더해 가능성을 보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찾은 '사람을 살리는 금융'
이날 김 원장은 현장을 둘러본 뒤 "오늘 한 건 더 잡았다"고 했다. 책상 위 보고서로는 보이지 않던 제도 사각지대가 상담실에서 드러났다는 의미였다. 그는 "현장에 오면 생각했던 문제가 실제로 확인된다"며 "확인하고 말하고, 다시 제도 개선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김 원장이 구상하는 '기본금융'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단순히 취약차주에게 대출을 공급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상담부터 채무조정, 보험, 대출, 저축까지 이어지는 회복 경로를 제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김 원장은 "우선 대출부터가 중요한 게 아니고, 채무조정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며 "기초 상담, 기초 채무조정, 기초 보험, 기초 대출, 기초 저축이 하나의 사이클"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금융은 단순한 자금 공급이나 채무 탕감에 그치지 않는다. 김 원장은 "돈만 빌려주는 것이 금융이 아니고, 돈만 저금하는 데가 금융도 아니다"라며 "금융을 통해 사람이 살아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적인 제도가 금융"이라며 "살아나가게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금융이 언제나 선의의 안전망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김 원장은 "어느 순간 약탈로 바뀌면 그것은 도둑이고 괴물"이라며 "끝까지 살아나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사회적 제도가 금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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