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업체들이 특수지 가격 인상안을 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한 제지기업 직원이 생산된 종이를 살펴보는 모습./사진=한솔제지


국내 주요 제지업체들이 추진하던 특수지 가격 인상 계획을 돌연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제지업계의 '할인율 축소 담합'에 대해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한 직후여서 업계 안팎에서는 사법 리스크와 여론 부담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할인율 축소=우회 인상'…공정위 제재 직후 업계 긴장감 확산

28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한솔·삼화제지 등 주요 제지업체들은 최근 특수지 일부 제품에 대한 '할인율 5% 축소' 방침을 유통 대리점에 전달했다가 이를 전격 철회하거나 잠정 보류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이들 업체는 내달 1일부터 할인율 축소를 적용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지업계에서 할인율 축소는 사실상 공급 단가를 높이는 대표적인 우회 가격 인상 방식으로 통한다. 표면적인 제품 가격은 유지하면서도 거래처에 제공하는 할인 폭을 줄여 실질 공급가를 높이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이번 철회 배경으로 공정위의 대규모 담합 제재를 지목한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달 말 국내 주요 제지사들의 가격 담합 행위를 적발하고 총 33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핵심 혐의 가운데 하나 역시 할인율 축소를 통한 가격 인상이었던 만큼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특히 공정위 제재 직후 또다시 유사한 방식의 가격 인상 움직임이 현실화될 경우 추가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에서는 공정위가 동일 업종·유사 행위를 단기간 내 반복할 경우 '반복적 법 위반'으로 판단해 가중 처벌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 직후 다시 할인율 축소 방식의 가격 인상이 이뤄질 경우 고의성과 반복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과징금뿐 아니라 형사 리스크와 평판 부담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펄프값 뛰고 환율 치솟았지만…출판·패키징 업계 "더는 못 버텨"

전방 산업의 반발 조짐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제지업체들은 최근 국제 펄프 가격 상승과 고환율 등을 이유로 가격 조정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실제 국제 펄프 가격은 지난해 말 톤당 700달러 안팎에서 최근 800달러 수준까지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 역시 1500원대를 오르내리며 수입 원가 부담을 키우고 있다.

다만 인쇄·출판·패키징 업계에서는 경기 침체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한계 수준에 이르렀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패키징 업계 관계자는 "이미 종이값과 물류비, 인건비가 모두 오른 상황"이라며 "영수증이나 라벨지 같은 특수지 가격까지 오르면 결국 자영업자와 유통업계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수지는 일반 인쇄용지보다 단가와 수익성이 높은 제품군으로 꼽힌다. 영수증 용지(감열지), 라벨지, 고급 포장재 등에 사용되며 기술 장벽도 상대적으로 높다.

업계에서는 특수지가 전체 매출의 약 20% 수준을 차지하지만 수익 기여도는 그 이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일부 제품은 품질 안정성과 공급망 문제로 수입산 대체가 쉽지 않아 국내 대형 제지사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펄프 가격과 환율 부담이 계속되는 상황이라 원가 압박은 여전하다"며 "당분간은 공정위 움직임과 시장 분위기를 지켜보며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