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녹십자 기업이념인 백신주권이 실현된 사례도 탄저백신 배리트락스주 국산화가 꼽힌다. /그래픽=강지호 기자


매출과 영업이익이 기업의 핵심 가치로 판단되는 요즘, 시대 흐름을 빗겨나간 기업이 있다. 백신주권을 실현하겠다는 일념으로 수익성이 낮은 의약품에 투자하고 있는 GC녹십자다. GC녹십자는 국민 건강제고를 위해 실적 개선 효과가 작은 탄저백신 등을 국산화했다.

인류 건강한 삶에 이바지…창업 의지, 배리트락스주로 꽃폈다

GC녹십자는 만들기 힘들지만 꼭 필요한 의약품을 개발해 인류의 건강한 삶에 이바지한다는 기업 철학을 갖고 있다. 1967년 부친 고 허채경 회장의 지분을 출자받아 GC녹십자의 전신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식회사를 인수한 고 허영섭 회장은 '누구나 고통받지 않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신념 아래 사업을 확대해 왔다. 허영섭 회장의 의지는 아들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와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대표로 계승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GC녹십자가 안정적인 수익보다 국민 건강에 방점을 찍은 대표 사례는 탄저백신 배리트락스주 국산화다. GC녹십자는 지난해 4월 질병관리청과 함께 탄저백신 배리트락스주 개발에 성공했다. 2002년 개발에 착수한 지 23년 만의 성과다. 배리트락스주는 지금껏 전량 수입되던 탄저백신을 대체하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출하돼 현재 질병관리청 비축 백신으로 이름을 올렸다.

탄저백신은 시장 규모가 작아 수익성이 떨어지지만 없어서는 안 될 의약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휴전 국가인 한국은 다른 국가보다 전쟁 위험이 커 탄저백신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치명률이 97%에 달하는 탄저균은 공기 중 살포가 쉬워 생물학무기로 악용될 수 있다. 열악한 환경에도 균이 장기간 생존 가능해 1급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GC녹십자의 탄저백신 국산화가 갖는 의미가 큰 배경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수익성이 없는 백신 등은 일종의 전략물자이긴 하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개발 매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백신 폐기 등의 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황 속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백신을 개발했겠지만 당연한 의무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백신 개발로 인한 손실을 보지 않도록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며 "정부가 생산 물량을 총괄 구매하는 등의 뒷받침이 있다면 국민 건강도 지키고 기업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3년간 질병청과 협력…민관 공동대응 성공 모델

사진은 지난해 12월 배리트락스주가 처음 출하하는 모습. /사진=GC녹십자


GC녹십자의 탄저백신 국산화는 순탄치 않았다. 20년이 넘는 개발 기간 규제 환경과 사회경제적 환경이 수차례 변화했던 탓에 개발 과정에서 전략적 수정이 불가피한 순간이 많았다는 게 회사 관계자 설명이다. 탄저백신은 치명적인 질환 특성상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유효성 평가(임상 3상)가 비윤리적이라는 특수성도 존재했다.


한계 극복을 위해 GC녹십자가 택한 건 정공법이다. 국내 규제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긴밀하게 소통해 비임상 데이터로 유효성을 입증하는 개발 경로를 수립했다. 개발 단계마다 논의를 거쳐 규제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에도 주력했다. GC녹십자의 탄저백신 국산화가 단순한 기술개발을 넘어 보건당국과 협력한 '민관 공동 대응의 성공 모델'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 20여년 동안 질병관리청과 긴밀히 협력하며 개발에 매진한 이유는 백신 주권 확보와 국가 안보 증진이라는 사회적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탄저백신 국산화 성공은 대한민국 보건 안보를 한 단계 격상시킨 성과"라고 평가했다.


한편 GC녹십자는 탄저백신 외에도 국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F와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 등을 상용화했다. 2010년 국내 품목허가를 받은 그린진F로 치료 가능한 A형 혈우병은 혈액 응고를 일으키는 제8인자가 없거나 부족해 나타나는 희귀병이다. 출혈이 잘 멈추지 않아 상처가 났을 때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2012년 상용화된 헌터라제는 특정 당 분해 효소가 부족해 노폐물이 축적되는 희귀 유전질환인 헌터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