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선 집회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 일부가 중국인이라는 주장이 공공연히 퍼지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외국인은 경찰공무원이 될 수 없다. 복수국적자 역시 경찰 임용이 제한된다./사진=뉴스1



"관등성명을 대라. 중국 공안 아니냐."
최근 서울 잠실 개표소 앞 시위 현장에서는 믿기 어려운 장면이 벌어졌다. 일부 시위 참가자가 경찰관을 중국 공안으로 의심하며 신분 확인을 요구한 것이다. 현장을 취재하던 대만 언론인들은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다녀야 했다. 온라인에선 집회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들이 중국인이라는 주장이 퍼졌고, 결국 경찰청이 공식 설명에 나섰다. 앞서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도 중국인이 선거에 개입했다거나 중국 공안이 활동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 끊임없이 유통됐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어느 순간 중국은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분노가 투영되는 거대한 스크린이 됐다. 선거에 대한 불신도, 정치적 양극화도, 경제적 불안도 때로는 "중국 때문"이라는 설명으로 수렴된다. 반대로 어떤 이들에게 중국은 여전히 경제 협력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협력자로 인식된다. 정반대처럼 보이는 두 시선에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 중국을 보기보다 각자의 기대와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 일각의 착시는 중국을 만능 악역으로 보는 데서 시작된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대만해협 긴장, 북·중·러 협력 강화 등을 고려하면 경계심 자체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경계심이 혐오와 음모론으로 변질될 때다. 중국을 국내 정치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하거나 사회 문제의 배후로 상정하는 순간 현실 인식은 흐려진다.


실제로 최근 "중국인이 강남 아파트 수백 채를 싹쓸이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사실과 달랐다.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이야기가 사실 여부보다 먼저 확산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중국의 과학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첨단기술 발전을 기술 탈취와 모방의 결과로만 치부하는 시각은 냉정한 분석을 가로막는다. 상대를 과대평가하는 것만큼이나 과소평가하는 것도 위험하다.

일부 진보 진영의 착시는 중국을 경제 협력과 북핵 해결의 파트너로 고정해 놓는 시각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현실은 과거와 달라졌다. 한국은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비공식 경제 보복을 경험했다. 한한령은 문화·관광 산업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줬고 최근에는 희토류와 핵심 광물이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제 협력의 필요성이 중국의 강압적 행태까지 눈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북핵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오랫동안 중국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핵심 지렛대가 될 거라고 기대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협조하는 동안에도 중국은 비핵화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다루지 않았다. 최근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비핵화는 주요 의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중국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오래된 가정 역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사회는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끊임없이 논쟁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중국은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다. 중국은 한국 내부의 보수·진보 논쟁보다 한국이 미국 동맹 체제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은 독립된 행위자라기보다 미국 주도의 동맹망을 구성하는 핵심 축으로 비친다.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라는 싱하이밍 전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은 그런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미경중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언급한 것은 달라진 국제 환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공식은 오랫동안 한국 외교의 기본 전제였다. 그러나 이제 경제와 안보를 별개의 영역으로 나눠 생각하기 어렵다.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 희토류, 공급망은 모두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특히 미국은 첨단 반도체에 이어 최첨단 AI 모델 접근까지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중국 역시 오픈소스 전략을 앞세워 자국 AI 생태계 확대에 나서고 있다. 기술 플랫폼과 데이터, AI 모델 자체가 국가 전략자산으로 취급되는 시대다. 경제와 안보, 기술과 외교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지만 동시에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친중도 반중도 아니다. 미국과의 동맹을 외교의 중심축으로 유지하면서 중국과는 협력할 분야와 경계할 분야를 명확히 구분하는 전략적 현실주의가 요구된다. 협력은 실용적으로 추진하고, 국익을 침해하는 행위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현장 경찰관을 중국 공안으로 의심하는 사회는 중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반대로 중국의 선의만 기대하는 사회 역시 현실을 직시할 수 없다. 국가 전략은 혐오도 환상도 아닌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만 가능하다. 중국을 둘러싼 두 개의 착시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중국의 위협은 물론 기회까지 정확히 읽을 수 있다. 그것이 미·중 경쟁 시대에 한국이 가져야 할 현실주의의 출발점이다.

이상복 시대 논설위원 겸 미디어랩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