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올해 상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미국과 한국의 금리 인상 시계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점도표를 통해 향후 금리 경로를 상향 조정한 데 이어, 한국은행도 고유가와 고환율, 반도체 성과급에 따른 임금·수요 압력 등을 근거로 물가 상방 리스크를 경계하고 있어서다. 한미 금리차가 상단 기준 1.25%포인트로 유지되는 가운데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과 국내 물가 불안이 맞물리면서 한은의 금리 인상론에도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연준은 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준금리는 네 차례 연속 동결됐다. 한국과의 기준금리(연 2.50%) 격차는 상단 기준 1.25%포인트를 유지했다.

표면적으로는 동결이지만 내용은 매파적이었다. 점도표 변화는 이번 FOMC가 단순한 동결이 아니라 '매파적 동결'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개된 점도표에서 전망치를 제출한 연준 위원 18명 중 절반인 9명이 올해 안에 최소 한 차례 이상의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했고, 올해 말 기준금리 중간값도 3월 전망치 3.4%에서 3.8%로 상향됐다. 8명은 동결을 전망했으며, 금리 인하를 예상한 위원은 1명이다.


연준의 물가 전망도 높아졌다. 올해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3.6%,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CE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3.3%로 제시됐다. 앞서 3월 전망치였던 2.7%에서 크게 높아진 수치다.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합의로 유가 상방 리스크가 일부 완화됐지만, 에너지 가격 충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시선은 한은으로 쏠린다. 이번 FOMC를 계기로 연내 인하 기대가 사실상 후퇴하면서 한은으로서는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을 기다리기 어려워졌다. 미국 고금리가 장기화될 경우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 압력이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수입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 물가 여건도 한은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한은은 올해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를 넘어선 3% 안팎에 달하고,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2% 중·후반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소비자물가는 목표 수준 근방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지만, 중동 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까지 확대됐다. 근원물가 상승률도 2.5%로 높아졌다.

한은이 주목하는 건 물가 상승세의 지속성이다. 최근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합의로 중동 리스크는 일부 완화되는 모습이지만 에너지 공급망이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되고 국제유가가 안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동안 누적된 고유가 영향이 에너지 가격에 그치지 않고 시차를 두고 공업제품과 서비스 가격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국제유가 상승은 석유류 가격에 즉각 반영된 뒤 공업제품과 서비스 가격에는 약 14~18개월의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쳤다. 유가가 안정되더라도 이미 발생한 비용 충격이 물가 전반에 반영되기까지는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반도체 기업의 대규모 성과급 지급도 물가 상방 요인으로 거론된다. '2026년도 제10차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일부 위원은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 규모가 자사주 지급분을 제외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이라며, 해당 자금이 주택시장에 유입될 경우 주택가격 상승 기대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관련 부서는 반도체 기업과 직주근접한 서울 동남권, 경기 남부 지역에서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상승폭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위원은 반도체 기업의 영업이익이 성과급, 주가, 배당, 정부 세수와 재정지출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가계로 이전될 경우 수요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특히 IT 업종을 중심으로 한 높은 보상이 다른 업종의 임금 협상 기준으로 작용하거나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임금 인상으로 이어질 경우, 임금 상승 압력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직전 금통위 의사록에서도 이 같은 우려는 확인됐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장용성 위원과 유상대 위원 등 2명은 기준금리를 현 2.50%에서 2.75%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다수 위원은 동결을 선택했지만, 의사록에서는 중동전쟁에 따른 고유가 충격, 고환율 전이효과, 반도체 기업의 임금 상승, 생활물가 상승에 따른 기대인플레이션 불안 등을 경계하는 발언이 잇따랐다.

특히 일부 위원은 금년 및 내년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돌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당분간 물가 중심의 통화정책 운용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냈다. 또 생활물가 상승으로 체감물가가 높아진 상황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흔들릴 수 있고, 임금과 물가 간 상승작용으로 물가가 고착화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은의 금리 인상 압력은 경기 대응보다 물가 안정 필요성에서 커지고 있다. 고유가와 고환율이 소비자물가를 밀어올린 데다, 생활물가 상승이 기대인플레이션과 임금 인상 압력으로 번질 경우 물가가 목표 수준 위에서 고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준의 매파적 동결로 미국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까지 높아지면서 한은의 물가 대응 부담은 한층 커진 상황이다.

신현송 총재는 "높은 물가 수준은 소비자의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기업의 가격 인상 가능성을 높여 물가가 다시 오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앞으로의 물가 흐름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