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추적]암표로 내몰린 야구팬들, 신종 '환불 사기'에 두 번 운다
프로야구 인기 노린 신종 피싱 수법 기승
'예금자명 오류'라며 재차 입금 요구한 뒤 잠적
보이스피싱처럼 '긴급 지급 방지' 제도 시급
유찬우 기자, 이가영 기자
공유하기
20년 넘게 프로야구 응원을 위해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을 찾는 이모(31) 씨. 그는 일주일에 최소 2번은 야구장을 찾아 목청 높여 응원하며 업무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그런 이 씨에게 불행이 닥친 건 지난달 말. 오는 11일 열리는 프로야구 올스타전 암표를 구하려던 이 씨는 단 50분 만에 48만원을 날렸다. 이른바 '환불 사기'. 프로야구의 인기를 악용한 신종 피싱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금자명 잘못 기재" "환불 위해 추가 입금"…신종 피싱 주의
사건이 발생한 건 지난달 30일. 이날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엔 '올스타전 티켓 한 장당 8만원에 판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씨의 눈이 번쩍 띄었다. 해당 경기 티켓의 정상 판매가는 2만원이지만, 현재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50만원 넘게 거래되고 있었다. 그걸 8만원에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씨는 곧바로 거래 의사를 밝혔다. 이것이 악몽의 시작일 줄은 상상도 못 한 채….사기범은 자신을 3년간 아무 문제가 없는 대행 업체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이 씨는 거래 전 티켓 확인을 요구했다. 사기범은 미리 준비해둔 가짜 캡처 사진을 보냈다. 저렴한 암표를 빨리 사고 싶은 이 씨는 2장 가격, 16만원을 바로 이체했다.
하지만 이체 2분 뒤 사기범으로부터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3자 양도 및 악용 방지를 위해 이름과 경기 날짜를 이체 당시 예금자명에 입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예금자명을 정확하게 입력해 다시 같은 금액(16만원)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사기범은 기존에 보낸 금액은 추가 입금이 확인되면 정상적으로 환불 처리되니 걱정 말라며 이 씨를 안심시켰다.
결국 16만원을 더해 총 32만원을 결제한 이 씨는 다시 5분 뒤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입금자명 표기가 또 잘못됐다는 것이다. 역시 16만원을 다시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32만원 환불이 가능하다는 말도 똑같았다. 슬슬 의구심이 들었다. 추가 입금에 앞서 이미 입금한 32만원부터 돌려달라고 하자 사기범은 '그러면 비정상거래로 간주돼 24시간 이내에 환불이 불가능하다. 걱정 말고 먼저 보내라'고 했다.
이씨는 32만원을 날릴 수 없다고 생각해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16만원을 이체했다. 그러자 사기범은 본색을 드러냈다. 이번엔 단기간 내 잦은 거래로 업체 계좌에 문제가 생겨 정상거래로 처리되기 전까지 티켓을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사기임을 확신한 이 씨는 48만원 전액을 환불해 달라고 요구했다. 돌아온 답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보낸 금액 48만원을 한 번 더 입금하면 정상거래로 처리돼 5분 안에 96만원 전액 환불해줄 수 있다고 했다.
분노한 이 씨는 당장 돈을 돌려주거나 티켓부터 보내라고 재촉했지만 사기범은 '이게 절차다', '안내해드린 내용을 확인하라'는 말뿐이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카톡은 차단됐다. 번개장터의 판매글도 삭제됐다. 이 씨는 50분 만에 48만원을 날렸다. 이 씨는 전형적인 피싱 사기에 자신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줄 몰랐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수사 허점 이용해 적금통장으로 사기친 뒤 잠적
이런 '환불 사기'는 최근 인기를 누리는 프로야구 시장을 겨냥해 새롭게 등장한 피싱 수법이다. 정부가 투자리딩방이나 가상자산(코인) 사기를 집중 단속하자 기존 피싱 범죄 조직이 암표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수사 역량이 사기 수법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중고거래에서 발생하는 사기는 현행법상 보이스피싱이 아닌 '일반 사기'로 분류돼 즉각적인 계좌정지 조치가 어렵다. 일반 사기 사건의 경우 계좌를 정지하려면 사건을 접수한 경찰이 부정거래로 판단한 뒤 공문을 금융감독원에 보내야 한다. 금감원은 이를 다시 해당 은행에 보내 지급정지가 이뤄지는 구조다. 즉, 경찰→금감원→은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경우 사기범의 대포통장에 사기 피해액이 남아 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심지어 이런 절차를 밟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 씨 사건을 접수한 서울 성북경찰서 측은 "중고거래 사기 사건이 많아 단발적인 사건 하나만 가지고 계좌의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없다"며 "조만간 대포통장 계좌 개설지의 관할 경찰서로 사건을 이첩한 뒤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만약 해당 계좌가 같은 범죄에 여러 차례 악용된 정황이 밝혀진다면 부정계좌로 등록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적금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악용되는 제도적 허점도 있다. 예금통장과 달리 적금통장은 개설 규제가 느슨하다. 현재 예금통장은 한번 해지하면 어느 은행에서도 20일 동안 새 통장을 만들 수 없다. 대포통장 등 범죄에 악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반면 적금통장을 이런 규제가 없다. 명의를 도용한 적금통장으로 사기를 친 뒤 즉시 해지하고 곧바로 다시 새로운 적금통장을 만들어 또 범죄에 이용할 수 있는 구조다.
금감원은 이런 문제를 알고 조만간 적금통장 역시 금융사별로 분기당 1인 최대 3개 이내로 신규 발급을 제한할 방침이다. 하지만 적금통장은 예금통장과 달리 금융사별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아 A은행에서 3개를 발급받고 해지한 뒤 다시 B은행에서 3개 발급을 요청해도 제지할 방법이 없다. 여러 은행과 금융사를 돌아다니며 적금통장을 마구 발급받아 범죄에 이용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통 사기범들이 저소득 및 청년층을 고용해 계좌를 개설하기 때문에 이를 규제할 추가적 조치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관 출신 한 법률 전문가는 "환불 사기가 반복되는 만큼 보이스피싱과 유사한 긴급 지급정지 제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
-
유찬우 기자
안녕하세요. 유찬우 기자입니다.
-
이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