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올해 예산에 '워라밸+4.5 프로젝트'를 반영하고 노사 합의로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200여개 사업장을 지원하는 시범 사업을 본격 가동하며 주 4일제 국가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금요일에 쉰다고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


'금요일은 새로운 토요일'(Friday is the New Saturday)의 저자인 페드로 고메스 영국 런던대 버크벡 경제학과 교수는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핵심은 '일하는 방식의 혁신'임을 강조했다. 그는 "포르투갈의 주 4일제 실험 당시 업무 프로세스 개편 없이 노동시간만 줄인 기업의 40%는 결국 주 5일제로 회귀했다"며 "생산성 향상은 단순히 노동자가 더 쉬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업이 업무를 재구성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다. 임금을 유지하면서 노동시간을 단축한 기업이 생존하려면 일하는 방식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4.5일제 도입을 추진하는 한국이 귀담아 들어야 할 제언이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는 올해 예산에 '워라밸+4.5 프로젝트'를 반영했다. 노사 합의로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200여개 사업장을 지원하는 시범 사업이다. 연간 1800시간을 웃도는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 구조를 깨지 않고서는 초저출산 위기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주도하는 경제 체제에서는 '더 많이' 일하는 양적 승부보다 '더 똑똑하게' 일하는 질적 혁신이 필수적이라는 판단도 깔렸다.


그러나 노동시간이 단축된 만큼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으면 기업들은 인력 추가 채용 등에 따른 비용 부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난제를 풀 실마리는 앞서 주 4일제를 실험한 영국과 아이슬란드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과 아이슬란드는 회의 축소 등 업무 재설계를 통해 생산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주 4일제, 노동시간 단축 실험을 성공시켰다.

"더 적게가 아니라 더 똑똑하게"…주4일제 성공의 핵심은 업무 혁신

영국의 비영리단체 '포데이위크 글로벌'(4 Day Week Global)이 주도한 실험에서 참여 기업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35% 증가했고 퇴사율은 57% 감소했다.그래픽은 영국의 주4일제 실험 성과를 나타낸 그래픽.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주4일제가 성공적으로 도입된 대표 사례로는 영국의 비영리단체 '포데이위크 글로벌'(4 Day Week Global)이 주도한 실험이 꼽힌다. 61개 기업, 노동자 약 2900명이 6개월간 참여한 이 실험에서 참여 기업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35% 증가했고 퇴사율은 57% 감소했다. 노동자들의 삶의 질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프로그램 시행 전후 실시된 조사 결과 39%는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답했고 54%는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기가 더 쉬워졌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실험 종료 후 참여 기업의 92%가 주4일제를 계속 시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100-80-100 모델'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임금은 100% 유지하고 ▲노동 시간은 80%로 줄이되 ▲생산성은 100%를 달성한다는 노사 간의 신뢰 계약이다. 영국 주4일제 실험의 질적 연구를 이끈 브렌던 버첼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직원들은 '더 열심히(harder)'가 아니라 '더 똑똑하게(smarter)' 일했다"고 설명했다.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고 의사결정 과정을 간소화하는 등 조직 내 비효율을 걷어냈다는 것이다. 버첼 교수는 "노동시간 단축이 직원들의 수면과 정신건강 개선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병가와 이직률 급감으로 나타나 기업이 막대한 채용 및 관리 비용을 절감하는 핵심 요인이 됐다"고 했다.

아이슬란드에서 진행된 단축근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단체협약이 체결되면서 2021년 기준 아이슬란드 전체 노동 인구의 86%가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이를 요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를 확보하게 됐다.그래픽은 아이슬란드의 공공부문 단축근로 실험 성과를 나타낸 그래픽.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영국이 민간기업 차원에서 주4일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면 아이슬란드는 성공적인 실험을 국가적 제도로 확산시킨 대표적 사례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아이슬란드 중앙정부와 레이캬비크 시 주도로 진행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주 40시간→35~36시간) 실험은 초기 66명에서 시작해 전체 노동 인구의 1.3%인 2500명 이상으로 확대됐다. 여기에는 사무직뿐 아니라 병원, 유치원, 경찰서 등 24시간 교대가 필요한 대민 서비스 직군까지 폭넓게 포함됐다.


아이슬란드 역시 성공의 비결은 업무 프로세스 개선이었다. 회의 단축, 불필요한 업무 제거, 디지털 서비스 전환, 업무 우선순위 재조정 등이 동반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경찰서의 연간 수사 종결 건수가 늘어나고 행정 부서의 서류 처리 기간이 단축되며 공공서비스의 질 저하 우려를 불식시켰다. 동시에 노동자들의 번아웃은 줄고 일과 삶의 균형은 뚜렷하게 개선됐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단체협약이 체결되면서 2021년 기준 아이슬란드 전체 노동 인구의 86%가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이를 요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를 확보하게 됐다.

'시간만 줄여선 실패'…프랑스·스웨덴이 남긴 교훈

뚜렷한 업무 프로세스 혁신 없이 노동시간만 단축한 국가들은 부작용을 겪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 옥상에서 내려다 본 파리 시내 전경. /사진=뉴스1


반면 뚜렷한 업무 프로세스 혁신 없이 노동시간만 단축한 국가들은 부작용을 겪었다. 프랑스의 '주 35시간 근무제'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프랑스는 2000년대 초 법정 노동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였다. 당초 취지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고 고용을 늘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체 고용 총량에 큰 변화가 없었고 노동 이동률(일정 기간 전체 종사자 대비 새로 유입되거나 이탈한 인원의 비율)만 상승하면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커졌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재직 당시 프랑스 주 35시간 근무제를 분석한 마르셀루 에스테방 국제금융협회(II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법 도입의 주된 목적이었던 일자리 창출 효과는 사실상 없었다"며 "노동시간이 줄어들자 기업들은 기존 인력의 생산성 압박을 높이고 유연근무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고 했다.

프랑스 사례에서 또 다른 주요 변수는 임금이었다. 근로시간은 줄었지만 임금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되면서 시간당 노동비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에스테방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근로시간 단축이 임금 보전과 결합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특정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며 "결국 기업들은 비용이 커진 노동자를 줄이거나 채용 규모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6시간 근무' 실험도 한계를 보여줬다. 예테보리의 한 요양시설은 임금을 유지한 채 노동시간을 단축했다. 노동자의 건강과 만족도는 개선됐으나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추가 채용이 불가피했다. 당시 68명의 간호 인력을 8시간 노동에서 6시간 노동으로 전환하기 위해 17명을 새로 채용해야 했고 그 비용으로만 126만유로(약 18억8000만원)가 소요됐다.

"5년 실험, 10년 전환"…기업 규모·업종별 단계적 도입

한국 정치권과 노동계는 주4일제 전면 도입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금요일 오후 휴무 등을 포함한 '주4.5일제'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일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인터뷰에 나선 브렌던 버첼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모습. /사진=줌(zoom) 인터뷰 캡처


한국 정치권과 노동계에선 주4일제 전면 도입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금요일 오후 휴무 등을 포함한 주4.5일제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사무직·전문직 직군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버첼 교수는 "사무직 기반 기업과 전문직 업무, 마케팅이나 정보기술(IT) 업무를 하는 곳은 주4일제의 성공률이 매우 높았다"며 "반면 소매나 건설,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더 어렵기 때문에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4.5일제 역시 금요일 오후를 쉬는 방식보다는 '2주 9일 근무제'가 중간 단계로 더 효과적이라는 제언도 나왔다. 고메스 교수는 "금요일 오후 조기 퇴근은 출근 자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통근 비용이 그대로 발생하는 등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반면 격주로 하루를 온전히 쉬는 2주 9일 근무제는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휴식과 여행 등 삶의 질 개선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과거 8년에 걸쳐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였던 것처럼 대기업과 공공부문부터 시작해 기업 규모별·산업별로 노동시간 감축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고메스 교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10년 뒤에도 같은 논의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며 "5년간 제대로 실험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신중하지만 실제로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