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장기화하면서 부동산신탁사의 건전성 지표가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부동산 호황기 금융지주들도 신용도를 앞세워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사업장을 늘리면서 공사 지연과 분양 악화의 역풍을 맞았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공사장의 모습./사진=뉴스1


부동산 경기 침체가 수년째 지속되면서 신탁사의 재무 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시장금리 인상에 공사비가 오르고 신탁계정대여금 규모가 급증하면서 책임준공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일부 신탁사는 고정이하여신(건전성에 따른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5단계 중 고정 이하의 부실 여신) 비율이 90%를 넘어섰다.


7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하나자산신탁의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A0'로 내렸다. 등급 전망은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하나자산신탁의 재무건전성 지표가 저하되고 수익성이 낮아졌다는 평가다.

하나자산신탁의 신탁계정대여금은 2023년 2511억원에서 지난 3월 9254억원으로 4배 이상 불었다. 신탁계정대여금은 신탁사업장의 자금 부족분을 신탁사가 자기 자금으로 대신 지원한 금액이다. 사업성이 악화할 경우 회수 부담으로 작용한다.


김재범 한기평 선임연구원은 "2023년 이후 차입형 토지신탁의 수주 비중이 증가했고 신탁계정대 투입이 확대될 경우 재무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준공 관리를 위해 신탁계정대 회수 추이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자산신탁과 한국자산신탁도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면서 업계 전반으로 유동성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호황기 시절 수익을 견인했던 책임준공형 토지신탁이 우발채무 부메랑으로 돌아와 이를 막기 위한 신탁계정대도 불어났다.


NICE신용평가는 최근 우리자산신탁과 한국자산신탁의 기업신용등급(ICR)을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내렸다. 코리아신탁도 신용등급 전망이 'BBB(안정적)'에서 'BBB(부정적)'로 내려왔다. 한신평은 교보자산신탁의 기업어음 신용등급을 'A2-'에서 'A3+'로 하향 조정했다.

책임준공 '청구서' 받은 은행 신탁사들

책준형 토지신탁과 신탁계정대의 부실화는 신탁사의 뇌관이 되고 있다. 분양 경기가 꺾이면서 시공사 부실과 공사 지연이 지속되고 신탁사들이 책임준공 의무를 떠안은 우발채무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청구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부동산신탁사 14곳의 신탁계정대는 9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말(8조9726억원)보다 5274억원 증가했다. ▲KB부동산신탁(1조2279억원) ▲신한자산신탁(1조2009억원) ▲대한토지신탁(1조985억원) ▲교보자산신탁(1조936억원) 등 4곳의 신탁계정대가 1조원을 넘어섰다.


교보자산신탁과 신한자산신탁은 신탁계정대 규모가 큰 동시에 고정이하여신비율도 각각 95.12%, 90.22%를 기록해 PF 부실에 따른 재무부담이 커졌다.

KB부동산신탁과 신한자산신탁 등 금융지주를 모회사로 둔 신탁사들은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수혈하고 있다. 충당금을 확보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취지다.

최근 KB부동산신탁은 KB금융지주로부터 1500억원을 지원받았다. 2024년 3000억원을 지원받은 후 2년 만의 추가 수혈이다. 지난해 KB부동산신탁의 책준형 신탁사업장은 14곳, PF 대출은 1조2402억원에 달한다. KB부동산신탁은 지난해 경기 김포와 인천 물류센터 개발사업에서 책준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서 대주단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신한자산신탁도 지난 1월 1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발행했다. 모회사인 신한금융이 이를 전액 인수했다. 앞서 신한자산신탁은 2024년 말 이후 유상증자 1000억원, 신종자본증권 2500억원, 기타 차입금 1000억원 등 총 55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하지만 지난 3분기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은 830억원으로 1년 만에 65% 이상 감소했다.

윤재성 나신평 수석연구원은 "책준형 토지신탁 사업장의 리스크가 여전히 커 신규 사업 수주의 여력이 부족하다"며 "지난해 대규모 손실을 낸 부동산신탁사를 중심으로 추가 손실과 실적 회복, 재무부담 수준, 사업포트폴리오 재편 과정을 살펴본 뒤 신용평가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