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공매도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공매도의 양면성이 주목된다. 사진은 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사진=뉴스1


"회사가 탐욕 세력에게 농단당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보유하고 있는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 지분을 매각하고 모든 경영권을 포기하겠습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2013년 4월 기자회견에서 공매도와 관련해 언급한 내용이다. 최근 대표 제약·바이오 기업의 공매도가 다시 기승을 부리자 주가 하락 주범이라는 주장과 주가 거품을 걷어내는 장치라는 평가가 맞선다.

커지는 공매도 비중…유한·녹십자·삼성에피스 타깃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사진=클립아트코리아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코스피 상장사의 공매도 비중(거래대금 기준)이 상승세다. 국내 매출 1위 전통 제약사인 유한양행의 공매도 비중은 지난해 12월30일 5.1%에서 이달 8일 30.9%로 6.1배 급등했다. GC녹십자와 삼성에피스홀딩스의 공매도 비중은 같은 기간 각각 4.0배(5.1→20.3%), 9.4배(2.0→18.7%) 확대됐다. 코스닥 상장사 중에서는 제넥신, CMG제약 등이 공매도 거래 상위 종목으로 집계됐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먼저 매도한 뒤 추후 다시 매수하는 투자기법이다. 주가가 내릴수록 이득을 보고 주가가 오르면 손해를 입는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만큼 공매도 비중이 높을수록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특정 기업의 주가 하락 원인으로 공매도가 언급되는 이유다.


실제로 공매도 비중이 상승한 유한양행은 주가 내림세를 피하지 못했다. 전날 6만9100원으로 마감된 유한양행 주가는 지난해 말 종가(11만2400원)와 비교했을 때 38.5% 내렸다. 증권가에서 유한양행 목표가를 기존 14만원에서 11만원으로 21.4% 낮추는 리포트가 나오는 등 전망도 밝지 않다. GC녹십자 주가는 같은 기간 15만9000원에서 12만1200원으로 23.8% 하락했다. 삼성에피스홀딩스 주가의 경우 동 기간 74만3000원에서 38만500원으로 48.8% 떨어졌다.

유한양행은 올 2분기 실적 개선이 예고된 상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를 살펴보면 유한양행의 올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전망치는 각각 6269억원, 612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8.3%, 영업이익은 22.8% 높다. GC녹십자는 올 2분기 수익성 악화 후 3분기 반등이 예상된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매출 상승 속 신약개발 R&D(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등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증시가 활황인데 제약·바이오 기업은 사실상 소외돼 있어 주주들의 불만이 많은 상태"라며 "일부 기업은 공매도로 인한 수급 문제까지 겹치면서 IR(기업설명) 담당자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 상대방이냐, 자본시장 파수꾼이냐…공매도의 양면성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주가 하락을 이끄는 공매도는 역기능과 순기능이 분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선 실적이나 미래 성장성 등 기업의 펀더멘털(기초 체력)과 무관하게 주가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 공매도 물량이 특정 종목에 집중될 경우 투자 심리가 위축돼 매도세가 확산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본질 가치보다 낮은 수준까지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한때 경영권 매각을 언급하고 공매도와 전쟁을 벌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공매도 세력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빌린 주식을 상환한 후 한동안 다시 공매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제도적 허들을 만들어 개인투자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차별적인 공매도 공격을 막아야 하는데 제도권은 수수방관 중"이라며 "금융당국은 특히 취약한 코스닥에 대한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고평가된 주가의 거품을 걷어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가 상승을 이끄는 매수세만 존재할 경우 기업의 본질 가치를 웃도는 수준으로 주가가 오르기 쉽다. 공매도는 과열 장세에 제동을 걸어 주가가 기업의 실제 가치에 수렴하도록 유도한다. 향후 주가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하는 시장 충격도 예방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자본시장에서 공매도를 부정적으로 보기보단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제도로 평가하는 이유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공매도가 사라진다면 주식 시장이 과열됐을 때 억누를 수 있는 힘이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돈을 빌려 주식을 사거나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처럼 주식을 빌려 거래하는 공매도 자체는 역시 문제가 없다고 본다"며 "시장 참여자들이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