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기념촬영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구윤철 부총리, 이억원 금융위원장. /사진=뉴시스(재정경제부 제공)


정부가 외국인이 해외 금융기관에 원화 계좌를 만들고 원화를 예금·대출·송금할 수 있도록 '역외원화결제기관'을 도입한다.


이 기관의 계좌를 이용해 외국인끼리 원화를 빌려주거나 주식·채권 투자자금을 주고받을 때는 자본거래 사전신고를 면제한다. 한국은행에는 해외에서 이뤄지는 원화 거래를 24시간 처리하는 별도 결제망도 만든다.

정부는 19일 관계기관 합동으로 이런 내용을 담은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해외 은행에 원화 계좌…국내 계좌 없어도 거래

그동안 외국인이 원화를 송금하거나 결제하려면 원칙적으로 국내 외국환은행에 계좌를 만들어야 했다. 해외 은행에는 원화 계좌를 만들기 어려워 원화를 미리 보관하거나 다른 외국인에게 보내는 데도 제약이 있었다.

한국 주식이나 국채에 투자하려는 외국인도 불편을 겪었다. 해외 현지 낮 시간에는 원화를 환전하기 어려웠고 원화 대출이나 증권 거래를 할 때 당국에 미리 신고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부는 이런 불편을 줄이기 위해 '역외원화결제기관' 제도를 도입한다.

역외원화결제기관은 일정 요건을 갖춰 재정경제부에 등록한 해외 금융기관이다. 외국인을 상대로 원화 예금과 대출, 송금 업무를 한다.


제도가 시행되면 미국 자산운용사는 뉴욕의 은행에 원화 계좌를 만들고 한국 국채를 살 자금을 미리 보관할 수 있다. 외국 기업이 자국 은행에 보유한 원화로 한국 업체에 물품 대금을 지급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형렬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지난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사전브리핑에서 "외국인이 원화를 보유하고 사용하는 데 불편이나 두려움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원화 국제화"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간 원화 거래 신고 면제

역외원화결제기관 계좌를 이용한 외국인 간 원화 자본거래에는 사전신고 의무가 없어진다.

외국인끼리 해외 금융기관을 통해 원화를 빌려주거나 한국 주식·채권 투자자금을 주고받을 때마다 당국에 미리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다만 외국인끼리 국내 부동산을 거래하는 경우는 신고 면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은행의 확인 절차도 줄인다.

현재 은행은 송금액이 수출입 대금인지 부동산 거래대금인지 등을 확인한 뒤 돈을 보내야 한다. 앞으로는 계좌 정보 등 최소한의 내용만 확인해 실시간 송금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다만 역외원화결제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외국인에게는 기존 신고와 확인 절차가 그대로 적용된다.

이 국장은 "원화 거래가 편리해진다고 외국인 투자가 바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며 "한국 주식과 국채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더 편리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한은에 24시간 역외결제망 구축

한은은 해외에서 이뤄지는 원화 거래를 최종 처리하는 '역외원화결제망'을 새로 만든다.

역외원화결제기관은 국내 은행에 기관 명의의 원화 통합계좌를 만든다. 외국인 고객이 해외에서 원화를 보내면 이 계좌를 거쳐 한은 결제망에서 거래가 마무리된다.

정부는 지난 6일부터 외환시장을 24시간 운영해 해외 투자자가 현지 낮 시간에도 원화를 환전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역외원화결제기관과 결제망을 구축해 환전한 원화를 해외 계좌에 보관하고 한국 주식·국채 투자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야간에 결제에 필요한 원화가 부족해질 경우 해외 금융기관이 국내 은행에서 원화를 일시적으로 빌릴 수 있도록 한다. 필요하면 한은이나 외국환평형기금이 원화를 추가로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정부는 외환시장 24시간 운영과 해외 원화 계좌, 한은 결제망, 거래 규제 완화를 통해 원화를 달러처럼 해외에서도 자유롭게 바꿔 쓸 수 있는 '자유교환통화'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원화 투자·무역 결제 확대…안전장치도 마련

정부는 외국인이 원화를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도 정비한다.

외국인이 보유한 국채와 통화안정증권을 해외에서 다른 금융기관에 빌려주거나 담보로 쓸 수 있도록 한다. 잠시 보유한 원화를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도 고친다.

기업이 수출입 대금을 원화로 결제하면 정책금융 금리를 낮춰주거나 무역보험 한도를 늘려주는 방안도 검토한다. 방산이나 원전 수출 계약을 원화로 맺을 경우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다만 원화 거래가 자유로워지면 해외 자금이 빠르게 들어오고 나가면서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 여력을 늘리고 국가 간 통화스와프를 강화하는 등 원화 국제화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한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