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나마 ‘빨리’를 잊고 ‘천천히’ 살아본다
인레호수는 ‘아껴둔 여행지’다. 흔히 미얀마, 하면 바간에 흩어진 수천 개의 사원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주변에서 누군가 미얀마에 간다고 하면, 빼놓지 말아야 할 곳으로 ‘인레호수’를 권한다. 특별히 조용한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필요한 ‘그 것’을 분명히 얻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미얀마도 쉬운 발걸음이 아닌데 여기서 다시 로컬 비행기를 타고 헤호공항으로, 그곳에서 다시 한 시간쯤 차를 달려가야 도착하는 곳이 인레호수 마을, 낭쉐다. 처음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이따금 지나가는 차는 먼지를 풀풀 날리고, 주변에 펼쳐진 논밭은 한국에서도 흔히 보아온 풍경이다. 그리고 그 좋다는 ‘인레호수’는 어디 있는 건지….
호수로 들어가는 작은 부둣가는 ‘따따따따…’ 하는 모터 소리로 그나마 평화롭게 느꼈던 이 동네의 정적을 깬다. 그렇다. 이곳은 대단한 볼거리를 기대하며 올 만한 곳이 아니다. 그렇지만 실망은 이르다. 동네에 들어온 첫날은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카누를 타고 석양을 보러 나가본다.
갑자기 주어진 아무것도 없는 시간이 어색하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을 놓고,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찾아오고…. 지금까지는 너무나 분주했다. 낯선 동네에 탁 떨어졌는데 특별히 볼거리도 할 거리도 없다. 고작 고민할 만한 게 ‘저녁은 뭘 먹을까?’ 정도다. 오히려 할 것이 없는 게 처음에는 불안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게으름에 적응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곧 해가 떨어지고 고요히 내려앉는 어둠은 자연스럽게 온 몸을 휴식의 시간으로 이끌 것이다.
빠다웅족
샨족 정식
인따족 뱃사공
◆다양한 생활상이 하나의 호수로 닿아있는 곳
하루쯤 보트를 빌려 인레호수를 돌아보자. 호수 주변에는 샨족, 인따족, 빠다웅족, 마우족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70여 개 마을에 흩어져 있다. 몇 군데 마을과 사원을 둘러보며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만나러 가는 뱃길에서는 호수의 평화를 즐기게 될 것이다.
보트를 타고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인따족이다. 호수 저편으로 띄엄띄엄 뱃사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 일찍 수초를 건지러 왔거나 수경재배터인 쭌묘에 가거나 고기를 잡으러 나온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다섯 살만 되면 노를 젓는다’고 하는데 가끔 아주 어린 아이들이 배를 젓는 모습을 보면 다섯 살이 아니라 걸음마 떼고 바로 배를 탄 것처럼 익숙해 보인다. 특히 발로 노를 젓는 모습은 신기에 가깝다. 가느다란 조각배에 가운데도 아닌 한 끝에 위태롭게 서서 무심히 다리 한쪽을 노로 감싼 채 ‘끼익끼익~’ 배를 운전한다. 아침햇살을 받은 호수는 물빛을 화려하게 반사하는데 그 위로 뱃사공의 모습이 하나하나 스칠 때마다 점점 그림 속으로 빨려가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낭쉐 가까이로 너른 밭이 보이는데, 깔끔하게 구획도 잘 나누어져 있는 이곳은 흙이 아닌 물 위의 수경재배 지역이다. 이곳에서 토마토, 감자, 양파, 양배추, 오이 같은 것들이 재배된다고 하는데, 밥을 사 먹어보면 딸려 나오는 반찬들의 식재료가 싱싱하고 맛이 억세지 않아 부드럽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데 배를 한 켠에 대고 일을 하거나 가끔은 ‘밭’이라고 할 수 있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갔다 한다. 보통의 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광경이다.
인레호수의 종족 중 가장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종족은 빠다웅족이다. 목에 동그란 링을 수도 없이 차올린 여인들의 모습을 보면 왠지 안쓰러운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목걸이가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목을 보호하려는 데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면 잠깐의 동정심은 도시인의 막연한 허영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여행자를 대상으로 사진도 찍어주고 장사도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가 되어 다소 신비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심심할 줄만 알았던 호수에서 기대치 않았던 이색적인 만남이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할까.
◆복잡해진 나를 본다, 마침내 감사한다
보트를 빌린 김에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쉐 인떼인 유적지이다. 해발 1300m의 고원지대인 이곳에서도 더 높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보트 또한 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굽이굽이 수로를 따라 부두에 도착하면 비교적 큰 마을을 지난다. 가끔 운이 좋으면 장이 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상당히 규모가 크다. 즉, 이 마을이 이 지역 일대의 중심임을 짐작 할 수 있다.
드디어 시작되는 유적지. 위대한 문명을 일으키고 갑자기 사라졌다는 마야문명의 이야기를 다른 대륙까지 가서 찾을 것도 없다. 이곳 쉐 인떼인에 운집해 있는 파고다만 보더라도 그 옛날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종교적이었으며 얼마나 문명이 발달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500여 개의 파고다가 아직도 그대로 방치됐다가, 최근 들어 조금씩 복원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복원이 썩 자연스럽게 되지 않아 복원된 파고다가 오히려 주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지 않고 어색한 흰 빛을 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찬란한 문명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과 초라한 복원사업의 이면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라의 부와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이 대단한 유적지를 한눈에 보기 위해 산길을 헤치고 좀 더 높은 곳으로 오른다. 동네 아이들이 따라오며 길을 안내해 줄 테니 돈을 달라고 한다. 미얀마 아이들은 이런 일이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다. 더더욱 가슴이 아려오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애잔한 마음도 잠시, 자꾸만 졸라대는 아이들이 금세 짜증스러워진다. ‘어쩔 수 없는 도시 사람이고,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인간이구나…’를 깨달으며 마침내 산 위에 오르면….
펼쳐지는 시원한 광경에 복잡했던 마음은 말끔히 자취를 감춘다. 아래로는 존재만으로도 놀라운 인떼인 유적지가, 저 멀리 산봉우리가, 그 뒤로 펼쳐진 초원, 그 위로 고산지대 특유의 맑고 청량한 하늘…. 아름답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않아도 인레호수, 이곳에 온 것에 감사하게 된다. 잠시 숨을 고르고, 땀을 식히고, 이 공기와 그림을 가슴에 새긴다.
산을 내려오는 시간, 힘겹게 오르던 보트가 동력을 끄고 슬슬 수로를 따라 흘러간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상에 지치고 시간의 공백이 그리울 때 이미 마음은 이곳에 와 있을 것 같다.
채우려고 애쓰던 일상을 떠나 비우고 돌아가는 여행이었다. 이제 돌아가자. 또 멋진 여행을 기대하며….
[여행정보]
<한국에서 미얀마, 인레호수 가는 방법>
미얀마에 비행기로 입국할 경우, 수도인 양곤이나 만달레이 공항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대한항공 직항이 있으며 양곤 공항으로 취항하고 있다. 양곤에서 인레호수로 가기 위해선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헤호 공항으로 이동한다. 헤호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낭쉐까지 가면 비로소 인레호수를 만나게 된다. 국내선 항공권 구매는 인터파크 항공(http://tour.interpark.com)이나 대한항공(http://kr.koreanair.com)을 이용하면 된다.
<자유여행을 계획할 때 도움될 만한 정보>
1. 미얀마 여행 관련 카페 가입 및 사이트 검색으로 기본적인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미얀마 문화원(네이버 카페) : http://cafe.naver.com/mayanmar/
미얀마 여행 동호회 (다음 카페) : http://cafe.daum.net/burmese
2. 미얀마 국내선, 호텔 예약 대행 에이전시를 활용하면 처음 자유여행에 도전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
IBBG 여행사 묘툰우(myo oo) : mtozhi@gmail.com 현지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로 한국어로 상담 가능. 예약 대행, 환전은 물론 여행에 대한 궁금한 사항을 메일로 주고 받을 수 있다.
코미투어 : http://www.myanmar.to/v1/index.php 미얀마 전문여행사이며 한국 지부에서는 미얀마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음식>
미얀마 음식의 구성은 밥과 반찬으로 우리 음식과 비슷하고, 이태리 식당이나 중국 식당 등 무리 없이 먹을 만한 음식이 많다.
샨 음식 : 미얀마의 여러 부족 중 샨족의 음식이 구성이나 맛에 있어 우리나라 음식과 가장 비슷하다. 인레호수는 수경재배가 유명한데, 이곳에서 나오는 싱싱한 토마토 샐러드를 비롯해 치킨커리, 감자볶음, 스프 등 이름은 조금씩 달라도 맛을 보면 우리 입맛에 익숙하다.
샨 누들 : 샨족의 음식 중 국수를 말하며 깔끔한 국물에 닭고기나 돼지고기, 땅콩을 올려 먹는다.
팬케익 : 낭쉐에는 팬케익 전문점인 ‘팬케익킹덤’ 있는데, 버섯, 양파, 치즈 등으로 토핑해 피자처럼 먹는 팬케익부터 디저트로 먹기 좋은 달콤한 팬케익까지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인레호수 주변 숙소>
인레호수 주변의 숙소에서는 보트투어 등 여행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GIC 호텔 : 인레호수 안에 위치한 방갈로 리조트로 투숙객 환영 행사가 유명하다. www.gicmyanmar.com 150~200$(1박)
인레 트레져 리조트 : 인레호수의 최고급 리조트 www.myanmartreasureresort.com 180~200$(1박)
GYPSY inn : 낭쉐 게스트하우스로 토스트, 오믈렛, 팬케익, 과일, 샨누들 등 아침식사가 푸짐하기로 유명하다.(No.82, Kann Nar Road, Win Qtr., Nyaungshwe, Southern Shan State, Myanmar.) 15~20$ (1박)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