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필자는 잊지 못할 선물을 받았다. 자신을 드림워커(Dreamworker), 즉 꿈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손편지였다.

"저는 멋진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에요. 저의 꿈은 위대하고 사랑스럽고 날 기쁘게 하는 엔돌핀이에요. 백번을 말해도 제 꿈이 시킨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엄마가 과외하고 미술을 끊으라고 해도 저는 절대 끊지 않을 거예요."

이 대목에서 필자는 '빵' 터졌다. 이제 열두살인 아이가 꿈에 대한 배짱과 소신이 보통이 아니어서다.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했다. 혹시 아이엄마가 미술은 그만하고 공부나 하라고 하면 어떡하나. 예사롭지 않은(?) 아이의 글을 봤을 때 부모가 그렇게 밀어붙였다가는 갈등이 깊어질 게 뻔했다.

사진_류승희 기자

◆꿈과 부모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들


실제로 필자에게 상담편지를 보내는 10대 청소년 중의 상당수가 꿈과 부모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한다. 자신은 다른 꿈이 있는데 빨리 대학을 졸업해서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바라는 부모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하소연이 대부분이다.

그때마다 필자는 이들에게 말한다. "그 꿈이 정말 네 꿈이 확실하다면 100번을 생각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부모를 울려!"라고. 이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성실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부모는 아무리 나를 사랑해도 띄엄띄엄 내 생각을 하지만 나는 24시간 내내 내 생각만 한다. 그러니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내가 가장 잘 되기를 바라는 것도 나 자신이다. 게다가 30년 먼저 태어난 사람들의 얘기가 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들의 얘기 속에는 언제나 도전과 모험이 세트로 빠져있기 마련이다.

또한 부모들은 언제나 중요한 진실을 외면한다. '공부도 재능'이라는 사실이다. 노래를 잘 하는 것이 재능이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재능이듯, 공부 역시 재능이다. 언어, 수리, 기억력 등 공부와 관련된 지능이 특별히 발달한 아이가 있고 아닌 아이들도 있다.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노래를 지독히 못하거나 그림을 못 그린다면 부모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쪽은 소질이 없나 보다. 괜찮아. 딴 거 찾아보면 되지." 그러나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이렇게 말한다. "수학 성적이 왜 이래? 너 공부 안하고 놀았지?"

한국사회에서 공부는 재능이 아니라 무조건 성실성이다. 노래를 지독히 못하는 아이라도 열심히 연습하면 노래를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똑같다. 물론 레슨을 열심히 받으면 비슷하게 흉내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노래를 타고난 아이들의 장벽은 뛰어넘기 힘들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수능, 그리고 각종 입사시험까지는 흔히 IQ로 대변되는 입시용 재능과 집중력만 있으면 해결되는 게임이다. 이것 역시 분명 타고난 이들이 있다.

필자는 중학교 때부터 수학을 아예 포기했다. 시험지를 받으면 늘 1번에 동그라미를 치고 잤다. 별 별 노력을 다 해봤지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어차피 한국사회에서는 5% 안에 들지 않으면 소위 말하는 명문대 진입이 불가능하다. 이 숫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95%의 아이들도, 부모도 안다. 자신이, 또는 자녀가 저 커트라인을 넘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그래도 멈추지 못한다.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_류승희 기자


꿈이 없는 공부는 언젠간 배신…꿈을 키워라

우리가 이토록 학벌에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꿈이 약하기 때문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 할 수 있는지, 내게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몰라서다. 그래서 마치 보험을 들듯 대학이라도 나와야 꿈에 근접해 보이는 근사한 직장, 안정적인 월급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꿈이 없는 공부는 언젠가 배신하게 마련이다. 엄마가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고 해서 행정학과에 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왜 여기 앉아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재수나 편입을 하느라 몇년 또 고생한다. 일단 대학을 졸업해야 사람 구실을 한다고 해서 경영학과를 졸업했는데 정작 꿈은 헤어디자이너다. 괜히 어마어마한 등록금만 날리고 시간을 뺏긴 셈이다. 다 큰 자식의 꿈을 위해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부모는 또 무슨 죄란 말인가.
게다가 모두가 알다시피 대학이 취직을 보장해주는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너무 많고, 명문대라 할지라도 대기업에 들어가기가 만만찮다. 그래서 요즘 청춘들이 그토록 '힐링'을 원하는 것이다. 대학만 나오면 미래가 보장된다고 해서 학자금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투자했는데 사회에 나오니 빚쟁이에 실업자가 돼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요즘 <김미경쇼>를 진행하면서 만난 드림워커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들은 '꿈이 최고의 스펙'임을 믿는다는 것이다. 4회에 나왔던 위자드웍스의 표철민 대표(29)는 중학교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도메인 등록사업이 한창 잘 나갈 때는 하루에 200만원씩 벌었을 정도로 비즈니스에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 우연히 시작한 일이었지만 IT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는 자신의 꿈을 발견했고, 입시공부가 아니라 비즈니스에 올인했다. 자신의 꿈이 너무나 확실했고 그 꿈이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이런 사례가 수없이 많다.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는 명문대 졸업장을 포기했다. 이미 대학시절 확실한 꿈이 세팅된 그들에게 졸업장은 더 이상 무의미했던 것이다.

한국에도 표철민 대표 같은 '선진국형' 인재들이 점차 늘고 있다. 중졸 동대문 출신 디자이너인 최범석씨는 대기업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면서 미국 유학파 디자이너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제 기업들도 천편일률적인 스펙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 속에서 독특한 꿈을 키워온 실력파 인재들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학벌이 인생을 좌지우지하던 '꿈의 개발도상국'에서 꿈 센 사람이 인정받는 '꿈의 선진국'으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는 대학이, 스펙이 아니라 꿈이 먼저다. 더 이상 간판에 기대지 말고 내 꿈부터 가장 나답게 만들자. 꿈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 프로필
1965년 충북 괴산 출생/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이화여자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석사/더블유 인사이츠 대표/아트스피치 연구원 원장/정치·경제분야 인사 100인 개인 스피치 코칭 컨설턴트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