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개사 중 90개사 자본잠식 상태… 퇴출 우려 고조

 

"아직도 자문형 랩어카운트(Wrap Account)의 수탁고는 꽤 되죠. 하지만 신규로 들어온 자금이 아니라 손실을 좀 줄이고 나갈 시점을 기다리고 있는 '탈출 대기자금'인 거죠."

한 투자자문사 운용역의 말이다.


지난 2010년 하반기부터 금융투자업계에는 랩어카운트 돌풍이 불었다. 당시 차이나펀드 충격,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인해 펀드수익률이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의 펀드에 대한 애정이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펀드에 실망한 개인투자자에게 랩 상품의 출현은 손실을 만회할 뿐만 아니라 다시 계좌를 흑자로 돌릴 수 있는 상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이에 각 증권사들은 자체 운용하는 랩 상품에 이어 외부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받는 자문형 랩도 함께 출시하면서 투자자문사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랩 상품도 2011년 상반기를 최고조로 꺾이기 시작했다. 랩의 가장 큰 특징은 소수종목에 대한 '집중투자'다. 따라서 랩 상품들은 2010년 당시 증시를 이끈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과 삼성전자에 집중투자했다. 새롭게 자금이 들어와도 결국 들어간 곳은 차화정이었다. 그러나 증시가 다시 침체기를 겪으면서 차화정은 결국 랩의 수익률 하락을 가져왔다. 화학과 정유는 바닥을 모르게 내려갔고, 자동차는 하락 후 박스권에서 움직임이 없었다.


펀드로 다쳤던 상처를 랩으로 치료하려 했던 투자자들은 결국 더 큰 상처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투자자문사에 대한 신뢰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문업계에서는 "차화정으로 흥해 차화정으로 망했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고 있다.


3곳 중 1곳은 적자

랩시장의 규모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자산관리시장을 키우는 데 랩만큼 좋은 상품이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한 관심을 줄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2010년 1월 말 20조원 규모였던 전체 증권사의 일임형 랩 계약자산(평가금액)은 올 1월 말 현재 56조원으로 3배 가까이 성장했다.
하지만 투자자문사의 랩 규모는 큰 폭으로 축소됐다. 일임형 랩 중 자문형의 계약자산은 2011년 5월 9조1824억원으로 최고치를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올 1월 말 현재 3조7024억원으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특히 지난해 1월 말 이후 13개월째 계약자산이 줄고 있다. 그러나 남아있는 자산의 대부분도 빠져나갈 시점을 기다리는 자금으로 보인다.

이 같은 계약 축소는 투자자문사의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150개 투자자문사 중 3분기(2012년 12월 말)에 순이익을 낸 곳은 45개사에 불과했다. 또한 54%인 81개사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다.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도 투자자문사 159개 가운데 56.6%인 90개사가 자본잠식 상태였다.

이처럼 투자자문사의 부실이 심해지자 금융감독당국은 부실이 심한 금융투자회사를 퇴출시키겠다고 밝혔다. 특히 투자자문사는 3단계 상시관리기준을 적용해 조기 퇴출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우선 자본잠식률 등을 분기별로 점검해 부실 징후 자문사를 선정하고 대표이사 등을 면담해 자본확충 노력 등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이후에도 개선노력이 보이지 않으면 최종 현장점검을 통해 퇴출 투자자문사를 선정하기로 했다.
 
"수수료로 수익내는 곳, 20개사 수준"

투자자문사들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자문형 랩의 축소 때문만이 아니다. 업체가 늘어나면서 수수료 경쟁이 심화됐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로 들 수 있다.

투자자문사의 수수료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에 대해 다르게 책정된다. 연기금 등의 자금운용에 대한 수수료는 위탁금액의 0.3% 정도다. 운용성과가 좋아도 이에 대한 성과수수료는 없다. 반면 개인고객에 대한 운용수수료는 1% 정도다. 업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10% 정도의 수익률을 올리면 추가로 1%의 성과수수료를 얻을 수도 있다.

즉 100억원을 운용한다고 할 때 연기금 등의 자금을 운용하면 3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얻는 데 그치지만 이 자금이 개인자금이라면 최대 2억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자문사들은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자금 운용을 통해 수탁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VIP투자자문 등 일부 투자자문사만이 개인의 수탁자산이 많을 뿐이다. 결국 대부분의 투자자문사들이 연기금 등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투자자문사들이 연기금의 자금운용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적은 수수료라도 확보할 루트가 없는 셈이다.

투자자문사의 한 관계자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수수료 수익을 얻지 못해 적자를 탈피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투자자문사가 수수료로 수익구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기관자금의 경우 3000억원 이상, 개인자금은 1000억원 이상이 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고객 자산의 수탁에 어려움을 겪는 많은 투자자문사들이 기관 또는 개인 등 고객의 수탁자산 운용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고유자산 또는 특정 지인의 자산만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투자자문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위 20위권 내외의 투자자문사를 제외하고는 고객 수탁자산 만으로 흑자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50위권 이하의 투자자문사는 지인의 자산운용을 위해 명맥만 유지하는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고용 불안에 떠는 투자자문사 직원들
 
지난해 투자자문사 임직원은 1424명에서 1383명으로 41명 감소했다. 단순 수치상으로는 큰 규모라 할 수 없지만, 그동안 성장일로에 있던 투자자문사들이 인력을 감축한 것은 그만큼 시장이 어렵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시장이 어려워 인력을 감축한 것은 자산운용사들도 매한가지다. 자산운용사들도 34명의 인력이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할 정도로 어렵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 운용역들의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회복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면 추가적인 인력감축이 불가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자문사 직원들의 불안감은 자산운용사 직원보다 더 크다. 자산운용사는 대부분 증권사를 모회사로 두고 있어 모회사가 경영을 포기하지 않는 한 회사는 존속될 수 있다. 하지만 투자자문사는 대부분 개인회사다. 따라서 손실이 커지다 보면 언제든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한 투자자문사 운용역은 "사주가 포기하지 않더라도 당국에 의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점은 고용의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킨다"며 "물론 금융투자업계 전체가 어렵지만 투자자문사 직원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 크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