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에 민감한 아이템보다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해온 그림 한 점이 지친 일상을 위로받는 순간이 있다.
크리스티 경매에 오르내리는 수억원의 고가 작품부터 첫 컬렉션의 설렘으로 장만한 작은 소품 그림까지, 컬렉션은 단순히 부유한 취미를 넘어서 감성과 이성의 가치관이 반영된 하나의 세계를 의미한다.
미술품 자체가 주는 심미적인 만족을 넘어서 '미술품 투자', '아트 펀드'등의 용어처럼 미술품을 투자의 가치로 보는 것도 어느덧 생경하지 않은 요즘, 작품을 수집하는 '컬렉터'의 역할은 나날이 미술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해 가고 있다.
컬렉터는 미술품 유통의 그림자 속에서 은밀하게 작품을 매입하는 존재가 아닌, 작가·화상과 함께 빠질 수 없는 주체로 미술사에 자리매김해왔다. 역사 속 컬렉터 역시 단순수집 차원을 넘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미술사에 존재한다.
◆욕망을 수집하는 컬렉터의 태동
조선시대 안견 곁에서 시대의 역작 <몽유도원도>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안평대군처럼 화가의 막역한 친구가 되어 명작이 탄생할 수 있도록 후원한 컬렉터가 있는가 하면, 사회적 통념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쿠르베의 작품 <세계의 기원>을 보호한 자크 라캉처럼 시대의 편견과 변화 속에서 작품을 지켜낸 컬렉터도 존재했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YBA(영국의 젊은 예술가)를 세상의 중심으로 견인한 찰스 사치처럼 컬렉터가 작품 자체의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미술작품이 어떠한 컬렉터에게 얼마에 소장되었는지가 그 작품가치에 직접 영향을 주는데, 이는 미술시장에서 컬렉터가 가지는 영향력을 방증하는 예다. 유럽 최고의 컬렉터로 꼽히는 프랑수아즈 피노는 1000여점의 작품이 소장된 피노 컬렉션을 기반으로 피노 현대미술재단으로 발전했다. 이렇듯 자본력이 있는 컬렉터는 때때로 화상이 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오랜 기간 컬렉터가 수집한 작품은 개인 재단으로 운영되기도 하며 미술관에 기증돼 컬렉터의 이름을 걸고 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도 한다. 컬렉터는 이렇듯 다양한 의미를 품고 미술사의 창조적 주체로 수집품을 통한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고 있다.
일차적으로 컬렉션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되기에 수집품에는 컬렉터의 안목이 반영된다. 수집 장르나 시대의 범위, 스타일이 어느 정도 정해진 컬렉터의 수집품은 한 컬렉터의 철학을 묵묵히 드러낸다.
당장 먹지 않을 곡식을 저장해두듯 가치를 소유하는 욕망의 행위는 곧 컬렉터의 탄생과 밀접하게 연관된 인간의 당연한 본능일 것이다. 컬렉터의 존재가 태동한 것도 이러한 '가치의 소유' 욕망에서 비롯됐다. 가치를 수집하는 컬렉터의 모습이 태동한 때는 고대 로마시대로 볼 수 있다.
로마시대에 고대 특권층은 제식을 위한 물품 등을 모으며 본인의 취향을 드러냈다. 네로 황제, 하드리아누스 황제, 가이우스 베레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등이 컬렉터 개념의 시작을 알린 당시의 주요 수집가였다.
최초 로마인들의 컬렉션은 주로 전리품이었는데, 로마인들이 그리스 도시들을 점령하면서 상당한 그리스 예술작품을 약탈해 로마로 보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전리품을 통해 그리스 미술을 재발견했고, 그리스풍의 유행으로 불게 된 컬렉션 바람은 요즘처럼 일종의 투자를 의미하기도 했다. 전리품의 의미처럼 전리품 중심의 컬렉션에는 자연스럽게 힘과 영광, 계급에 대한 찬양적 성격이 짙었다.
뿐만 아니라 부자들은 개인적인 전시실이 있었기 때문에 원작을 가질 수 없을 때는 화가에게 복제품을 주문했다. 그 결과 로마제국, 이집트, 시리아까지 복제품 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알아볼 수 있는 유명 조각들은 수없이 복제됐고, 이 작업에는 그리스 노예들이 투입되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미술품을 소유한 사람은 귀족들에게 힘과 교양이 있는 사람으로 비춰졌기 때문에 이러한 수집품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을 것이다.
◆투자목적보단 순수한 기쁨 앞서야
이후 신(神) 중심의 인간관이 지배했던 중세로 접어들며 예술품은 종교적인 목적에 귀속됐다. 예술품은 대부분 종교심을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작가가 누구인지, 작품의 유일한 가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림은 단지 기독교를 위한 교육의 목적으로써 존재했다. 곧 성당이 미술품을 소장하는 박물관의 역할을 대신했다. 중세 종교미술은 5세기부터 14세기까지 1000년간 지속됐다.
과시의 성격이 강했던 고대시대에는 진정한 예술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긴 했지만, 로마 귀족의 수집경향은 욕망을 수집하는 컬렉션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고대로부터 시작된 수집의 욕망이 그렇듯,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하고 과시하고 싶은 욕망은 시대를 막론하고 컬렉션의 기저에 깊이 깔려있는 심리다. 좋은 것을 자신의 소유로 묶어두고 싶은 욕심에 때때로 컬렉션에 마약처럼 중독돼 무리한 수집성향을 보이는 것은 컬렉션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컬렉션은 자본의 크기에 따라 움직일 수 있지만 단순한 과시와 욕망, 투자에 대한 욕심이 앞선 컬렉션은 심리적·경제적인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수집에서 투자개념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투자의 목적이 강한 컬렉션은 일차적으로 작품에서 느껴야 할 순수한 기쁨마저 퇴색시킬 수 있다. 컬렉터의 아름다운 욕망과 작품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반영된 컬렉션은 곧 시장의 유통 활로를 견고히 하며 수많은 명작의 탄생과 유지를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이 닿은 작품을 소장하는 기쁨이 컬렉션의 가장 첫번째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오랜 친구처럼 해묵은 그림이 주는 안온한 만족이야 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작품의 장기적인 투자가치인 까닭이다.
'나'라는 문화적 역사를 설계하는 일인 컬렉션. 비싸지 않은 작품으로도 컬렉터가 될 수 있고 나름의 안목을 바탕으로 테마를 둔 컬렉션은 삶의 시간과 함께 쌓인 컬렉터만의 작품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 건강한 컬렉션이 꾸준히 지속돼 하나의 세계를 설계할 때, 때론 내가 말하는 나보다 더 많은 의미를 품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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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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