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부터 그를 둘러싸고 사면받은 지 5년이나 지난 만큼 경영활동 복귀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일각에선 그가 물밑으로 몇몇 기업체에 투자하고 있다는 소문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세간의 관심을 차단하기라도 하듯 이날 "건강이 좋아져야 뭘 할 수 있지 않겠냐"며 경영 재기설을 우회적으로 부인했다. 그리고는 행사 다음 날 바로 출국했다.
김 전 회장의 국내 발걸음은 일단 자취를 감췄지만 그의 경영복귀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더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박근혜 대통령 일가와의 각별한 인연 때문인 듯하다.
◆복귀설 솔솔…박 대통령과 인연 '작용'
김 전 회장의 선친 고 김용하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구사범학교 은사였다. 31살의 청년 김우중은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했고 60~70년대를 거치면서는 전자와 중공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대우를 재계 2위의 위치까지 올려놨다. 모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 일어난 일이다. 이후 김 전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에게 EG그룹(옛 삼양산업) 인수를 위한 자본금 9억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의 재기설이 탄력받는 데는 박 대통령과의 인연 외에 새 정부 들어 국회는 물론 청와대 핵심 요직에 대우 출신 인물들이 대거 앉았다는 점도 작용한다.
박 대통령의 측근 중 한명인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전 대우경제연구소장이었고, 백기승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대우그룹 홍보담당 임원이었다. 여기에 최경환·안종범·강석훈·정희수 새누리당 의원은 모두 대우경제연구소 출신. 서승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김 전 회장의 연세대 경제학과 후배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 들어 첫 공식선상에 모습을 드러낸 김 전 회장의 이번 행보는 그의 경영복귀설을 한층 더 부추긴 격이 됐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아직도 김 전 회장을 따르는 사람이 많고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다"며 "언제든지 복귀를 택하면 그를 서포트할 세력이 많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김 전 회장 스스로도 몇해 전 베트남에서 열린 강연에서 "지금도 가끔 대우가 재기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며 "대우가 다시 창조적인 비즈니스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18대 대선 전,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그가 경영자로 복귀해 대우를 재건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었다.
시기상으로 김 전 회장이 사면받은 지 5년이 지났고 지난해 체납세금 14억5000만원을 모두 완납했다는 점도 그의 경영복귀 여건을 조성하는 요소다.
2010년부터 매년 대우 창립기념식에 참석해온 김 전 회장은 기존 대우 임원 친목모임인 대우인회를 발전시켜 대리급 이상의 직원들도 합류하도록 한 '대우세계경영연구회'의 행사에도 꼬박꼬박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우맨들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인데, 이 역시 경영복귀 가능성을 해석하게 하는 대목이다.
◆자금·건강 문제…현장 복귀 걸림돌
현재 김 전 회장의 외부활동은 베트남에 머물며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운영하는 해외 청년 취업프로그램 'YBM'(Global Young Businessman for Vietnam)에 간혹 참석해 후진양성에 도움을 주는 일 정도다. 지난해 이 과정을 마친 1기생 33명 전원이 연봉 2만~3만달러를 받으며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포스코·CJ푸드빌·한솔 등)에 취업하는 데도 역할을 했다.
김 전 회장은 베트남 국토개발사업을 자문하면서 쌓은 인맥이 아직 상당하고 현지에서 대우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좋아 언제든 그의 복귀 시나리오는 현실화가 가능하다. 특히 베트남·중앙아시아 등에서 그는 여전히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대우'라는 브랜드도 현지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재계에선 그의 복귀 현실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복귀자금'이 넉넉지 않고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행사에서 김 전 회장은 복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건강'을 언급하며 "한달에 한번 (건강을) 체크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심장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고 지난해 대우그룹 창립 기념식에서는 보청기까지 착용한 모습이 포착됐다.
■김우중의 성공과 몰락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우중은 1960년부터 66년까지 한성실업에 근무한 후 67년 서울 중구 충무로에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자본금은 500만원이었지만 동남아시아·미국시장에서 성공해 1970년대에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성공적으로 키워 신흥재벌이 됐다. 한때 계열사 41개와 해외법인 396개를 보유한 재계 2위의 위치에도 올라섰다.
그러나 1998년의 IMF 구제금융사건으로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고 그로 인한 여파로 부채비율이 600%이상이었던 대우그룹은 1999년 8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당시 부채는 500억달러였다.
그때부터 김우중은 검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출국한 후 도피생활을 했으며 그를 둘러싸고 중국 등지에서 호화롭게 생활을 했다는 추측과 유럽 등지의 3류 호텔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어렵게 생활했다는 상반된 얘기가 나돌았다.
2005년 6월 귀국해 검찰조사를 받았으며 2006년 11월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횡령 및 국외 재산도피 혐의로 징역 8년6개월에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00억원의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를 포기하고 복역하다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12월31일 특별사면됐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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