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페달을 밟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정책 중 재계에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일감몰아주기' 규제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다.
지난 2일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당시, 재계가 잔뜩 긴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7월 말 정부로 이송돼 8월 공포된다. 그리고 정확히 6개월 뒤인 내년 2월 중순께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근거이자 기준이 되는 '총수일가가 몇%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와의 거래를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으로 하느냐'에 대한 시행령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몫으로 넘어간 이 '총수 지분율'을 놓고 현재 정치권과 시민단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는 미묘한 입장차가 존재한다. 지분율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같은 업종, 같은 그룹이라도 규제를 받을 수도, 받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재기준 되는 '총수 지분율' 어떻게?

일단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대상이 되는 기업은 '자산총액'이 일정규모 이상이어야 하고, '총수일가 지분'이 대통령령에서 정한 비율 이상인 계열사와 거래할 때로 규정하고 있다.

자산총액의 경우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기준을 준용해 현재 '5조원 이상'으로 정하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공정위로서도 시행령 제정에 있어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집계한 현황에 따르면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의 계열사는 모두 1519곳으로, 이 가운데 총수일가가 지분을 1주라도 갖고 있는 계열사는 405곳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는 일차적인 대상기업이 405개사가 되는 셈.

그렇다면 이제는 규제해야 할 총수일가 지분을 얼마로 해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만약 공정위가 '30%'를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은 총 405곳에서 195곳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이 경우 시스템통합(SI)업체로 계열사의 전산업무를 도맡아 하는 삼성SDS(총수지분 17.2%)나 LG CNS(1.4%)는 제외된다. 반면 같은 SI기업인 SK C&C(48.5%)는 이 규제에 포함돼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현재 전경련 등 재계에서 주장하는 '총수 지분율 50%'로 설정한다고 해도 잡음이 없어지진 않는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규제대상기업은 131곳으로 줄지만, 앞서 언급한 대기업 계열 SI업체들을 포함해 삼성에버랜드(46.0%), 현대엠코(35.1%) 등 일감몰아주기 논란의 중심에 선 기업 대부분이 제외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총수일가가 100%의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만 규제대상으로 삼을 경우엔 현대자동차그룹의 광고를 책임지는 이노션 등 55곳만 해당된다. 하지만 이 방안은 경제민주화 정책의 취지와 결부시킬 경우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

규제의 키를 쥐고 있는 공정위는 아직 지분율과 관련해 입을 다물고 있다. 노대래 공정위원장 역시 최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지금은 기업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면 안된다. 일감몰아주기가 워낙 메가톤급인 만큼 다른 것들은 좀 뒤로 미룰 것"이라고 말했다.
 
◆'몰아주기' 푸는 재계…현대차·롯데·SK 등 '동참'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신호탄'이 터진 사이, 이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행보도 한층 빨라졌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축소하고 해당물량을 중소기업 등 외부기업에 개방하는 이른바 '일감 나누기' 정책을 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장 발빠르게 대처한 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이다. 지난 4월 현대차는 ▲광고 분야에서 올해 그룹 국내광고 발주예상금액의 65%에 해당하는 1200억원 ▲물류 분야에서 올해 그룹 국내물류 발주예상금액의 45%인 4800억원 등 총 6000억원 규모의 물량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거나 경쟁입찰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뒤를 이어 LG그룹은 5월 SI 분야에서 계열사들이 올해 발주하는 사업 가운데 2300억원 규모의 거래를 중소기업 등에 개방하기로 했다. 50%는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고 50%는 경쟁입찰을 실시한다는 복안.

이번달 3일에는 롯데그룹도 일감 나누기 행렬에 동참했다. 롯데는 대기업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물류(1550억원), SI(500억원), 광고(400억원), 건설(1050억원) 등 4개 부문에서 연간 3500억원 규모의 일감을 나누겠다고 밝혔다.

SK그룹도 최근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의 SK C&C 간 거래규모를 전년대비 각각 10% 이상 줄이기로 했고 SK이노베이션을 통해서는 SK C&C와의 거래물량을 지난해 455억원에서 올해 390억원 규모로 14.2% 삭감 조치했다. 한화그룹 역시 지난해부터 계열사와 한화S&C 간 거래를 점차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방침과 궤를 같이해 그룹의 SI사업을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최근 늘고 있다"며 "앞으로도 기업들이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는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대기업 잡으려다 중소기업 죽이나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우선 대기업을 타깃으로 삼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실제 관련법 적용에 있어 중소·중견기업에 불리하게 적용되는 면이 적지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 4일 국세청이 지난해 계열사의 일감을 몰아받아 수익을 올린 기업주와 그 일가 1만여명에게 상속·증여세를 물리는 과정에서 중소기업들이 대거 포함됐다. 과세 대상자 1만명 가운데 30대 그룹의 65명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중견·중소기업의 지배주주와 친족 등이었던 것.

코스닥 상장사인 중견기업 A사. 이 회사의 대주주는 경영효율화 차원에서 핵심부품을 만드는 회사를 설립해 부품을 납품받았다가 국세청으로부터 증여세 6억원을 징수당했다. 이 대주주는 계열사 주식을 받지 않았음에도 세금을 내야하는 처지가 된 것. 특히 A사는 국내에 다른 부품 공급처가 없어 앞으로 과세를 피하려면 일본에서 3∼4배나 높은 가격에 부품을 수입해 써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박양균 중견기업연합회 조사통계팀장은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처음 대기업 자녀에 대한 부의 편법승계를 막자는 취지로 논의됐는데 실제로는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의 피해가 훨씬 더 크다"고 꼬집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