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 태기산에서 발원한 주천강과 평창에서 흘러드는 평창강이 영월군 한반도면 신천리에서 만나 서강을 이룬다. 이 서강의 흐름이 한 순간 굽이돌면서 기가 막힌 장면을 연출해 놓은 것이 바로 한반도지형이다.
한반도면 MTB코스는 크게 두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한반도면 사무소 근처의 돈골임도와 평창강 코스, 그리고 쌍용천과 서강 한반도지형을 돌아 나오는 코스이다. 총길이 56.4km에 초급기준 약 4시간30분(휴식시간 외) 걸린다.
이 코스는 신천리 한반도면사무소나 쌍용리 쌍용역 근처에서 시작한다. 교통은 쌍용역 근처가 편하다.
평창강 코스 입구에 장충약수가 있다. 수량이 풍부한 양질의 약수이다. 장충약수터부터 평창강코스가 시작되는데, 가희 영월 최고의 강변 코스라 할 비경이 펼쳐진다. 강변 코스는 약 9.7km. 경관도 좋지만 비포장구간이 많아 MTB코스로 분류할 수 있다. 돈골임도와 평창강을 돌아 나오는 코스는 약 25km. 한반도면이 자랑하는 멋진 MTB코스이다.
새내들 둑방길을 빠져나오면 본격적인 도로 라이딩이 시작된다. 서강길이 막혀 쌍용천으로 우회하여 가야 하는데, 다시 서강을 만나기까지 약 10km를 달려야 한다. 쌍용천길은 영월의 숨은 하이킹코스이다. 쌍용스틸표시 삼거리에서 쌍용역 방향으로 가다가 연당 갈림길에서 연당 방향으로 달리면 쌍용천길이 시작된다. 경관 좋고 차량 통행도 거의 없는 멋진 하이킹코스이다. 서강과 다시 만나는 구간에서 화병교를 건너면 한반도지형으로 코스를 이어갈 수 있는데, 화병교를 건너기 전에 화병임도를 타면 더욱 좋다. 화병임도는 약 4km. 한반도면과 남면 경계에 있는 임도라 서강코스와 연계해 타기 좋다. 코스 끝에서 남면 들풀교를 건너면 다시 화병교로 돌아와 한반도지형으로 코스를 이어갈 수 있다.
한반도 지형 전망대 입구까지는 약 1km의 언덕길이다. 한반도지형 전망대는 입구에서 약 500m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는 트랙이나 관광객이 많은 날엔 삼가는 게 좋겠다. 한반도지형에서 다하누촌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가면 한반도면사무소로 복귀할 수 있다.
서강은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선암마을에서 시작하여 단종의 첫 유배지인 청령포를 감싸 안으며 영월읍 합수머리에서 동강과 만나 남한강으로 흐른다. 그러나 서강은 속칭일 뿐 공식적인 하천명은 평창강이다. 평창강에 주천강이 유입된 것으로 본다. 동강을 물길이 험한 남성적 상징의 수강이라고 한다면 서강은 물길이 순한 여성적 상징의 '암'강으로 표현되며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오밀조밀한 산세와 더불어 들판을 감싸 안으며 흐르는 서강의 깊고 잔잔한 물줄기는 병풍처럼 펼쳐진 신선 바위를 휘돌아 아름다운 선암마을을 지나 청령포로 흘러든다. 물이 맑고 깨끗하여 이 지역 사람들은 '서강물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대단한 자부심까지 간직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름치 쉬리 등 1급수에서만 사는 민물고기가 득실하고 수달 비오리 원앙이 노닐고 있어 생태계의 보고다.
서강 지역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은 선암마을의 풍경이다. 이 마을은 놀랍도록 우리나라의 지형과 꼭 닮았다는 사실이다. 강을 끼고 있는 동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서쪽은 완만하게 수면과 맞닿은 동고서저의 지형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무성한 소나무 숲은 백두대간의 윤곽마저 보여주고 있다.
◇ 신천리(新川里)
한반도면 신천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도 그 명칭이 바뀌지 않은 곳으로 원래의 지명은 순수한 우리식 땅이름인 '새내'라고 불렀다. 이를 한자로 '신천리'라 했다. 새내의 유래는 오대산 우통수에서 시작되는 평창강과 횡성, 평창, 접경지역인 태기산을 발원지로 하는 주천강이 합수되는 두 강 사이에 있는 마을이므로 '사잇내→새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합수지점 안쪽을 '안새내', 바깥쪽을 '바깥새내'라고 했다. 신천리 주민들은 우래실(명라곡) 정동 안새내 바깥새내 등의 자연 부락을 중심으로 콩 옥수수 감자 담배를 재배하며, 일부 논농사를 짓고 있다. 특히 시멘트 공장이 들어오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신천리의 경제가 많이 활성화되었다.
◇ 돈골(錢谷)
쇠목 서쪽인 평창강 건너에 있다. 지금은 대여섯 가구가 10리 정도 뻗은 다래산 기슭의 논과 밭을 가꾸면서 생활하고 있다. 옛날 돈골에는 자린고비로 소문이 난 송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돈 모으는 재미로 세상을 살았다. 송부자는 주천 신천 골말 등지의 모든 논밭을 사들여 천석꾼이 되자 더욱 교만해져 밥 한 그릇 주는 것까지도 아까워했다.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손님을 막기 위해서 판운 쪽에서 오는 손님은 장취 서낭님께, 베일치 쪽 손님은 마지라오 서낭님께, 주천 쪽 손님은 아침치 서낭님께, 사정리 쪽 손님은 당마루 서낭님이 막아달라고 빌었을 정도였다 한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큰 폭우가 쏟아져 송부자가 사는 집이 물에 떠내려가자 벽장 속에 고이 간직해 둔 돈궤도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집안 식구와 하인들을 독촉해 엽전을 줍다가 자신도 결국 물살에 휘말려 죽고 말았다. 그후 지금까지도 이 골짜기는 땅을 파면 엽전(돈)이 쏟아져 나오므로 그 지명을 '돈골'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돈골에는 예전 보릿고개 때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전단토가 많았다.
◇ 관란정(觀瀾亭)
청령포로 흐르는 서강 상류에 집현전 직제학인 생육신 원호가 영월로 유배 온 단종 대왕을 그리며 초막을 짓고 살던 곳이다. 원호가 청령포를 바라보며 매일 통곡을 하자 빨래를 하던 어떤 여자가 우는 연유를 물었다. 이때 원호가 말하기를 "열녀는 두 남편을 갖지 않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법이라도. 내가 모시던 임금이 청령포에 귀양와 계시므로 슬퍼서 우는 것이요"라고 하였다. 이때 그 여자도 울면서 "제가 며칠 후에 개가를 하려고 했는데 어르신네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면서 끝내 수절을 했다고 한다. 원호는 단종을 그리며, 다음과 같은 시와 함께 함지박에다 음식을 담아 떠내려 보냈다. '간밤에 우던 여울 슬피 울어 지내여라 이제야 생각하니 님이 울어 보내도다 저물이 거슬러 흐르도록 나도 울어 보내리라'. 원호가 떠내려 보낸 음식은 여울살을 따라 청령포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원호는 단종이 승하 하자 수주면 무릉리 토실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가 고향인 원주 단구동(무학동)에서 여생을 보냈다. 정조은 교지와 함께 시호를 정간공이라 하고 수주면 토실마을에 모현사라는 사당을 세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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