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영을 가슴 속 깊이 새기고 재임기간 동안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이 지난 7월22일 취임사를 통해 강조한 말이다.
 
KB국민은행이 이건호 행장을 새 수장으로 맞아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리딩뱅크의 입지를 굳히고 국민에게 더욱 신뢰받는 은행을 만드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 행장이 선택한 경영전략 포인트는 '사람'이다. 그는 "직원과 고객을 보호하는 전제하에서 주주들에게 적정한 이윤을 돌려주는 게 경영 제1철학"이라며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직원과 고객의 보호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 이런 신념을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영'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래서일까. 노조와의 대립을 끝내고 은행에 첫 출근한 직후 그는 직원과의 만남을 가장 먼저 시도했다. 직원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그동안 자신을 두고 오갔던 오해를 풀고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한 것.
 
새 수장이 교체될 때마다 불거진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자신의 뜻을 명확히 드러냈다. KB국민은행은 그동안 새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될 때마다 구조조정에 시달려왔다. 따라서 CEO가 임기를 채우거나 중도하차할 때마다 직원들은 구조조정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 행장은 그러나 "직원들은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라며 "한 사람의 낙오 없이 같이 가겠다"고 약속했다. 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끌어안고 간다는 게 기본원칙이다. 사람을 내보낼 가능성은 없으며 청년층 채용도 줄일 생각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전형적인 학자출신… 풀어야할 과제 산더미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은 한국금융연구원과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 등을 거쳤다. 은행 전문가보다는 전형적인 학자에 더 가까운 셈이다.
 
따라서 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만들어진 초기만 해도 짧은 은행경력 탓에 그가 차기 KB국민은행장으로 선임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차기 행장 후보로도 거론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리스크를 강조해온 임영록 회장의 경영구상과 맞는데다 금융연구원과 KDI를 거치며 쌓은 인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이 행장은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특히 내부에서는 그가 저금리와 경기침체에 따른 위기를 잘 극복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 있다. 수익이 절반 이상 고꾸라졌고 금융환경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그가 KB국민은행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낼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부평가와 경영능력, 임 회장의 선택을 받는데 성공했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의미다.
 
이 행장은 은행 경험이 짧은데다 특정분야에서만 근무했다. 조흥은행과 KB국민은행에서 리스크관리 업무를 주로 맡은 것. 일각에서는 리스크관리 전문가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전체 은행경력은 7년이 채 안된다. 자산규모 280조원이 넘는 KB국민은행 호를 이끌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얼마나 빨리 KB국민은행 조직 전체를 이해하고 미래의 먹거리를 제시할 지에 따라 그의 평가도 엇갈릴 수 있다.
 
쪼그라든 수익개선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KB국민은행은 올 상반기에 순익이 84%나 급감했다. 지난해 말 기준 1인당 순익규모는 업계 평균치를 크게 밑돈다. 단 한명의 구조조정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만큼 전체 직원들을 아우르며 서둘러 순익을 끌어올려야 한다.
 
KB국민은행은 주택은행과 합병 후 조직이 양분된 것으로 유명하다. 주택은행 출신과 KB국민은행 출신이 각각 조직적인 라인을 굳히고 있어서다. 이 문제 역시 그가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다.
새 수장이 선임될 때마다 불거진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도 그는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 가운데 외부출신 CEO는 이 행장이 유일하다.
낙하산과 관치금융 논란에 그는 취임식도 열지 못하고 약 2주간 노조로부터 출근저지를 당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은행 집무실 대신 호텔에서 업무를 보고받았다. 다행히 노조와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끄는데 성공했지만 업무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요구된다.

 


 
◆금융권 보수적 이미지 깨고 파격적인 패션
 
이건호 행장의 행보를 보면 불리한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는 매사에 긍정적이며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는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학자출신답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으며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시 여기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감각적인 패션도 눈길을 끈다. 이 행장은 동그란 뿔테 안경과 트렌드에 맞는 옷을 추구한다. 몸에 딱 달라붙는 수트와 굽이 닳지 않은 브라운 컬러의 구두를 즐겨 신는다. 보수적인 금융권에서는 이례적인 모습이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안경 등 나의 패션에 대해 (외부에서)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옷은 주로 아내가 코디해준다. 또 일반 남자보다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스스럼 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내부에서는 이색적인 행보를 걷고 있는 이 행장이 진보적 스타일로 은행 내 나쁜 악습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KB국민은행의 수익이나 미래의 금융환경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아 오히려 단점으로 부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앞으로 그의 이색적인 행보가 구설수에 오르게 될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 될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된다.
 
☞프로필
 
1959년생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미국 미네소타 대학원 경영학 박사 / 한국금융연구원 은행팀장 및 연구위원장/ 조흥은행 리스크관리본부장 및 부행장 /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 / KB국민은행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