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社 '함께 울었던' 2076일 최장기 비정규직 농성 봉합
'종탑 농성' 보며 가슴 아파… 글로벌 리딩기업 재도약
“이젠 점심시간에 맞춰 밥 먹으러 갑니다.”
‘비정규직 최장기 농성’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재능교육 노사가 비로소 지난 8월26일, 시위 2076일 만에 화해의 악수를 나눴다. 해고자 전원복직과 단체협상 원상회복에 합의하면서다.
자그마치 5년8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서울 혜화동의 재능교육 본사 앞에는 노조원(학습지교사)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농성 종결 하루 전까지만 해도 회사 정문 앞에는 노조원들의 천막은 물론 회사를 겨냥한 글귀의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있었다.
노사합의의 따뜻한 여운이 채가시지 않은 28일, 노조원 못지않게 맘고생이 심했을 양병무 재능교육 대표(58)를 만났다.
◆노조와 부딪힐까 식사·출근 '나홀로'
“보통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낮 12시부터 1시까지잖아요? 그동안은 이 시간을 피해서 점심약속을 잡았습니다. 출근도 노조원들이 시위를 벌이는 아침 8시 이전에 했고요. 수년 만에 처음으로 회사 정문으로 출근도 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사장으로 온지 3년4개월만에 후문(2층)이 아닌 정문(1층)으로 집무실까지 올라왔다는 양 대표. 노조시위의 시작점에는 없었지만 그는 지금 6년여에 걸친 노사분규의 끝맺음 현장에 자리했다.
통상 '勞'와 '社'가 대립하면 이를 지켜보는 주변에선 사측보다는 노조원들의 입장과 상황을 더 헤아린다. 해당 기업의 부도덕하고 노조원을 탄압하는 내용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능교육의 이번 노사간 대타협 이면에는 사측의 양보가 크게 자리한 건 분명하다. 지난 8월19일부터 4일간 열린 노사간 최종협상에서도 회사는 그동안 노조원들이 요구해온 단체협약 회복과 해지자 12명 전원복직에 대해 수용했고, 시위촉발의 계기가 된 학습지 교사의 ‘수수료’ 문제와 관련해서도 귀를 열었다.
“지난해 8월 이후 회사는 법과 원칙에 근거해 노조원들에 전향적인 협상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수십 차례의 교섭이 결말을 맺지 못하는 사이 2명의 여성 노조원들이 성당 종탑에 올라가더군요. 이때부터 이들의 안전과 건강이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타결시점을 빨리 앞당기자는 목표를 잡았어요. 당초 7월말을 그 시점으로 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8월이 아니었어도 민족의 명절인 추석 전까지는 어떡해서든 노사 합의를 이끌 생각이었습니다.”
양 대표의 노사화합 의지를 불태운 건 그의 말마나따 본사 맞은편에 위치한 혜화동 천주교성당의 종탑에 올라간 노조원들이다. 2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양 대표는 난간에 선 그들을 집무실 창문에서 지켜보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공교롭게도 양 대표가 집무하는 회사 9층이 종탑시위자들의 움직임이 가장 눈에 잘 띄는 위치다.
◆노사합의 이루던 날, 서정주 '국화 옆에서' 감회
노사합의가 이뤄진 날 양 대표는 종탑에 올라갔던 노조원들의 손을 꼭 잡으며 다시 한번 다짐한 게 있다. 노사문제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그동안의 경영소신을 재확인하게 됐다는 것.
“문득 서동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노사화합’이라는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그렇게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거쳤나 싶어서요. 이제 국화꽃을 피웠으니 노사가 상생의 묘를 살려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함께 뛰는 일만 남았습니다.”
사실 이번 노사갈등을 겪으면서 회사로서는 잃은 것들이 적지 않다. ‘최장기간 시위’ 기록을 연일 갱신하면서 재능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진 것은 기본이고, 핵심인력인 학습지교사의 모집에도 애를 먹었다.
자연스레 회사의 매출하락도 겪어야 했다. 한때 업계 1위를 넘보며 정상의 문턱까지 올랐던 위상에서 이제는 1~2위 기업들에 새롭게 도전장을 던져야 하는 처지가 됐다. 농성이 종결됐다고는 해도 아직 전 노조 집행부가 이번 노사합의안에 반대하고 있어 이들을 설득하는 수순도 밟아야 한다.
양 대표는 이에 대해 ‘사람좋아 보이는’ 외모답게 새로운 과제를 떠안게 된 재능교육을 점진적이고 순리대로 성장·발전시키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재능스스로펜, 이러닝 앞세워 업계 정상 도전할 것"
“매출상승을 견인할 ‘무기들’이 우리 회사에는 많습니다. 출시 3년만에 15만대 이상이 팔린 ‘재능스스로펜’이 대표적이죠. 교재에 갖다대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원어민이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한 이 펜을 보더라도 재능은 ‘스스로 학습’ 시스템에 있어 장점이 있는 회사입니다. 물론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e학습’ 시스템도 발전시켜 국내와 글로벌 시장에서 리딩 교육기업으로 거듭날 계획이에요. 노조와의 남은 과제에 있어선 충분히 그들(노조원들)에게 귀를 기울여 해결할 겁니다."
재능교육 사태가 ‘시위 1895일’의 기륭전자를 넘어섰을 때가 가장 마음이 무거웠다는 양 대표. 하지만 불명예를 쓰던 그 순간이 있었기에 노사문제에 더 겸손하고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갑의 횡포’로 대변되면서 사회적인 '가해자'의 입장에 놓이기도 하는 한국의 기업들. 지금껏 그런 '오명'의 한 축에 올랐던 재능교육의 사령탑 양 대표는 사태해결이 이뤄진 현 시점에서 가슴 한켠에 담아놓았던 과거의 한(恨)을 조심스럽게 꺼내놓는다.
“노조원들의 눈물도 있지만 회사가 흘린 눈물도 참 많았습니다.”
☞ 노사간 합의문 주요 내용
- 2008년 10월31일자로 해지한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한다. 재능교육과 재능교육지부(전국학습지산업노조 예하)는 복귀 후 즉시 교섭을 실시하고 오는 12월31일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 월회비정산제도는 복귀 후 노사가 협의해 합의서 체결일 기준으로 3개월 이내에 개선한다.
- 현 사태와 관련해 발생한 모든 고소·고발의 소에 대해 합의서 체결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상호 취하하고 형사건은 처벌불원탄원서를 추가로 제출한다.
- 회사는 재능교육지부에 생활안정지원금 및 노사협력기금으로 2억2000만원을 지급한다.
☞ 재능교육 노조시위 일지
2007. 12. 노조, 단체협약 재교섭 및 수수료제도 개정 요구하며 혜화동 본사 앞 천막농성 돌입
2008. 3. 서울중앙지법, 사측이 노조에 처한 '방해금지가처분' 결정
2010. 11. 노조, 서울시청 앞 원구단 천막농성 시작
2011. 1. 회사 대표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표간 1차 면담
2. 서울중앙지법, 사측이 노조에 처한 '집회금지 등 가처분' 결정
4. 회사 대표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표간 2차 면담
5. 중앙노동위원회, 노조의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 신청' 기각
2012. 5. 노사간 상견례 및 1~2차 교섭
6. 노사간 3~11차 교섭
7. 노사간 12차 교섭
8. 노사간 13~14차 교섭
2013. 2. 노조, 혜화 천주교성당 종탑 시위 돌입
3. 사측, 교섭 위해 노조측에 해지교사 11명 위임장 요구
4. 노사간 15~16차 교섭
5. 노사간 17차 교섭
7. 노사간 18~20차 교섭
8. 노사간 21~24차 교섭 및 최종 노사합의안 도출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9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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