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치 데자뷰처럼 느껴진다. 12월31일 0시를 기해 타종식을 하고, 카운트다운 행사를 벌이며, 그 해의 마지막 해넘이와 신년의 첫 해돋이를 보러 산이나 바닷가로 몰려가는 등 분명 작년과 다를 바 없는 모습들이 이어진다. 북적대는 수많은 인파에 치이고, 오가며 교통대란에 시달리면서도 어김없이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를 뒤로하고,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어보는 기쁨을 누리고자 함이 아닐까.
간의 이러한 기대와 관련된 행동양식은 비단 사회현상에서만 목격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지금, 경제활동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소비자들의 기대가 투영된 제품, 기대심리를 극대화하는 브랜드전략 및 마케팅전술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두고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있는 마이클 달렌은 사회심리학, 경제학 등이 종합된 행동경제학적인 관점에서 ‘기대사회’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넥스토피아, 즉 기대감을 파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그가 <넥스토피아 미래에 중독된 사람들>를 쓰게 된 모티브다.

먼저 미국에서 진행된 한 실험을 소개한다. 수백 명을 대상으로 각자 삶의 만족도를 연도별로 점수를 매겨 그래프를 그리게 했다. 그 결과, 거의 모두가 V자 형태의 그래프를 그린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만족도가 가장 낮았고, 3년 전후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그렇다면 혹시 다들 현재가 실제로 가장 암울해서 저런 그래프를 그린 것은 아닐까. 이를 고증하기 위해 같은 대상자들에게 3개월, 6개월 후에 각각 동일한 실험을 진행했다. 역시 그래프의 모양은 하나같이 V자를 보였다.


이 실험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 3개월 단위로 3번 측정을 했는데, 그때마다 수백 명 모두가 실험 당시 현재 시점이 최악일 확률은 지극히 낮다. 바로 현재의 만족도가 가장 낮다고 해서 실제로 최악의 상태이기보다는 스스로 그렇다고 느낄 뿐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미래는 늘 밝고 긍정적으로 예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늘 꿈꾸지만 결코 도달할 수는 없는 것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넥스토피아(Nextopia), 즉 미래는 행복할 것이란 믿음이 만들어낸 세상이다.

우리가 넥스토피아에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최신 스마트폰에 대한 구매욕구가 정점에 달할 때는 출시 직전이다. 정작 제품이 출시되면 수요는 급격히 줄어든다. 한정판 제품이나 최신 음반에 대한 주문도 출시 전후에 급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미 ‘출시된’ 제품보다는 아직 ‘출시되지 않은’ 제품에 더 열광하는 사람들. 이 현상의 원인을 학자들은 ‘쾌락의 패러독스’(paradox of hedonism)에서 찾는다. 이는 어떠한 행동을 왜 하는지, 왜 즐거운지를 정확히 알면 오히려 그 즐거움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때문에 기업들은 쾌락의 패러독스를 피해 소비자들이 넥스토피아에 계속 머물도록 애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후속작을 번갈아 가며 지속적으로 예고하는 애플. 검색서비스에서부터 이동통신과 우주여행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분야로 끊임없이 진출하며 미래를 기대케 하는 구글. 이처럼 강력한 브랜드와 기업들은 넥스토피아를 매우 잘 활용하고 있다.


기대 자체가 하나의 소비대상이 되고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동력이 된 사회. 우리는 지금 넥스토피아에 살고 있다.

마이클 달렌 지음 | 미래의창 펴냄 | 1만2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