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5일, 인천공항에선 총 53편의 항공기가 결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동안 흔히 봐왔던 기체결함이나 태풍, 폭우 등으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고 귀로만 들어 쉬이 간과했던 미세먼지로 인한 결항이었다. 오전 한때 인천공항 주변의 가시거리는 40m까지 떨어지면서 ‘저시정 경보’가 내려졌다. 300여명의 승객이 3시간 가까이 기내에서 대기하다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세먼지의 위력을 새삼 실감케 하는 날이었다.
# 같은 시각, 평택항에 위치한 수출입 자동차 전용 야역장. 출고를 앞둔 수백대의 차량들이 세차를 위해 줄을 섰다. 단 며칠 야외에 세워뒀을 뿐인데 최근 부쩍 심해진 미세먼지 탓에 차량 곳곳에 시커먼 먼지가 자욱해졌기 때문이다. 차량 자체 점검을 하기에도 바쁜 직원들은 때 아닌 미세먼지와의 사투를 벌이느라 요즘 하루하루가 스트레스다.
◆미세먼지와의 '혈투'
미세먼지로 인해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어난 요즘 '비상사태'에 돌입한 건 사람만이 아니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대한민국을 뒤덮기 시작하면서 산업계도 미세먼지 경계령으로 잔뜩 긴장해 있는 상황.
특히 미세먼지 경계령이 내려진 곳들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군이어서 기업을 넘어 국가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직까지 생산라인에 지장을 빚는 등 실질적인 피해가 드러나는 정도는 아니지만 미세먼지가 한해를 넘길 때마다 심각성이 더해지는 만큼 업계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각에선 산업계가 자신들이 뿌린 씨앗을 다시 거두는 꼴이라는 비판까지 내놓는다.
가장 민감한 곳은 역시 반도체업계. 세밀한 공정이 많은 만큼 먼지 하나라도 유입되면 곧 제품의 불량으로 이어질 정도로 치명적이다. 미세먼지 농도가 300㎍(1㎍은 100만분의 1g) 이상이면 불량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 모 전자업체의 경우 중국발 미세먼지가 강해지면서 평균 불량률이 이전보다 0.4%포인트나 올라갔다는 결과가 환경부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미세먼지와의 전쟁에 한창인 반도체업체들은 미세먼지 농도 예보 전파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다. 즉각적인 예보를 통해 직원들에게 수시로 미세먼지 및 황사 발생 여부를 환기시킨다. 라인의 기압을 평상시보다 높이는 방법도 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기압의 특징을 이용한 것이다. 황사나 미세먼지가 기준치를 넘기면 1.05~1.1 정도로 기압을 높여 원천적으로 먼지를 차단한다.
이밖에 생산라인을 들어갈 때 수동문 대신 자동문을 가동시켜 먼지 침투를 최소화한다든지, 생산라인 내 먼지를 털어내는 에어샤워 작동 시간을 늘리는 등의 노력들은 어느덧 업계 내 매뉴얼처럼 자리 잡았다.
반도체산업 못지않게 미세먼지에 민감한 디스플레이업체들 역시 필터 추가설치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결국 이 같은 일련의 대응들은 차츰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직접적인 피해가 눈에 띄게 드러날 만큼 미세먼지의 영향력이 심각한 수준에는 미치지 않고 있다”면서도 “사소한 듯 보이는 미세먼지 대응 작업들이 결국에는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지게 되고, 그 수준이 올라갈수록 체감피해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힘든 건 사람이다
자동차업계, 조선업계도 미세먼지 및 황사가 날아들어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자동차업계의 경우 생산라인에서 발생하는 직접적인 피해는 아직 없다. 다만, 출고나 수출입을 위해 야적장에 보관 중인 차량에 미세먼지가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졌다. 한번 세차하면 될 차량을 두세번 한다든지 추가로 방호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하는 등의 일이다.
자동차정비소의 경우 차량 필터교환 등의 문의가 늘어나면서 나름 특수를 누리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실내작업장이 마련돼 있지 않은 업체의 경우에는 도장작업 등에 황사나 미세먼지가 영향을 줄 수 있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H자동차직영정비소 관계자는 “규모가 큰 곳은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 도장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미세먼지나 황사 때문에 작업을 미루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부피가 크고 야외 도장작업이 많은 조선업체들은 어떨까. 직원들의 건강을 신경 쓰는 측면이 오히려 더 크고 작업에 관련된 지장은 크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거제도의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평소 방진마스크를 착용토록 하고 있지만 직원들의 근무여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미세먼지 농도는 매일 확인 중”이라며 “옥외 도장작업에 영향을 줄 정도의 미세먼지나 황사가 자주 있는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건설 현장도 작업 자체가 먼지의 영향을 받는 수준은 아니고 일하는 직원들이 불편함을 겪는 정도다. 업체들은 황사 발생 시 현장공사를 최대한 줄이도록 지시하고 있으며, 불가피하게 옥외작업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방진마스크와 보호안경, 긴소매 옷을 착용토록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오는 3월20일~21일 양일간 베이징에서 일본·중국과 대기분야 정책대화를 열 계획이다. 각국의 산업계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국외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미세먼지저감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다. 산업계 발전과 미세먼지의 발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지만 기술이 발전한 만큼 3국이 친환경 정책을 적극 활용하면 '윈-윈'할 수 있는 방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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