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휴대폰을 사려면 꼭두 새벽에 동대문으로 달려가야 한다? 지난 2월 11일 동대문의 일부 휴대폰 판매점, 대리점에서 일어났던 '211 대란'이후 생긴 '웃픈' 말이다. 이날 새벽 매장에서는 약 80만원짜리 휴대폰을 사는데 최대 145만원의 보조금이 지원되기도 했다. 다음날 같은 모델의 스마트폰에서 보조금 100만원이 쏙 빠졌고 '대박'을 피해간 고객은 '호갱'이 됐다.
시간과 장소별로 차별적인 보조금을 지급해 '대박 고객'과 '호갱'을 양산하는 곳. 현재 국내 통신 시장의 자화상이다.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정부가 이통3사에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지만 그 효과가 또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지난해 7월 KT가 과다 보조금 제공으로 영업정지 조치를 당한지 7개월 만에 대란이 터졌기 때문. 7개월 후 또다시 보조금 폭탄이 쏟아지지 않겠냐는 기대감마저 감돈다. 정부의 보조금 정책은 신뢰를 잃은지 오래다.
<머니위크>는 통신시장을 들썩이게 한 '보조금 대란'의 전말을 살펴보고 영업정지 철퇴를 맞은 통신시장,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봤다. 영업정지에 따른 여파를 짚어보고 예측불허 보조금으로 혼란이 가중되는 현 시장에 필요한 대안을 모색해봤다. <편집자주>


'영업정지' 시작 전인 D-3부터 D-데이까지, 이통 3사 대리점·직영점, 휴대폰 판매점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그 '긴박했던 4일' 속으로 들어가 봤다.


D-2인 3월11일에는 60만~70만원 규모의 보조금이 게릴라성으로 뿌려졌다. KT·LG유플러스의 영업정지를 하루 앞둔 12일에는 보조금 규모를 40만~50만원(이하 69요금제 기준)으로 조절하는 눈치작전을 폈다.

SK텔레콤(이하 SKT)만이 정상영업이 가능한 3월13일, KT와 LG유플러스 및 정책당국의 감시 속에서도 SKT 대리점·직영점은 법정 가이드라인을 훌쩍 넘긴 30만원의 보조금을 뿌렸다.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D-3: '오늘이 마지막'… 폭풍전야 방불
미래창조과학부가 이통 3사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이후 맞는 첫 월요일(10일). 이통사 대리점·직영점들은 때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매장 방문자에게 대놓고 보조금 마케팅을 펼치진 않았지만 '오늘과 내일, 좋은 가격이 나온다'는 말로 소비자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본인을 SKT 본사 출신이라고 소개한 을지로 소재의 SKT 직영점 직원은 "오늘 내일 통신사로부터 (보조금)정책이 나올 것"이라며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닐 것 없이 우리가 가격 좋을 때 전화 줄테니 믿고 맡겨라"라는 말을 조용히 건넸다.





KT와 LG유플러스 대리점·직영점에서도 이 같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폭풍전야'와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통사 대리점·직영점 곳곳에 나붙은 '오늘이 마지막' 문구도 시선을 끈다. 부도로 '눈물 세일'을 진행하는 회사 앞에나 붙음직한 문구다.




◆D-2: '살벌'… SKT로 이동하니 LGU+ 직원이 따라붙어

3월11일. 가입자 뺏어오기 경쟁의 정점을 찍은 날이다. 영업정지가 가까워오자 마지막 몸부림을 치듯 대규모 보조금을 마케팅 수단으로 내세워 번호이동 경쟁에 팔을 걷어붙인 모습을 보였다.

서울 용산의 한 SKT 직영점은 주요 단말기에 보조금 40만원을 적용해 판매했다. 법정 가이드라인보다 13만원 높은 금액이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되는 영업점의 사정은 더 급하다. 갤럭시S4LTE-A에 38만원의 보조금을 적용한 서울 용산구 소재 LG유플러스 직영점에서는 '시간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자사로의 번호이동을 재촉했다.

이 직영점 관계자는 "오늘 오후 8시 이후로 보조금이 끝난다. 내일은 영업정지 이전에 행정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가입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지원을 못해준다. 시간이 없다"고 재촉했다. 이어 그는 "오픈한 지 2주 됐는데 영업정지까지 걸려서 너무 힘들다. 영업정지가 임박해서 우리는 지금 최대한 판매를 해놔야 하는 상황이고, 그래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보조금을) 많이 주는 것"이라며 "SKT에서 지원해준다는 금액보다 무조건 많이 해주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직원은 기자가 근처 SKT 대리점으로 이동하자 해당 대리점으로 따라 들어오기까지 했다. SKT 직원에게 뭔가 물어볼 것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분위기를 살피는 그에게서는 급박함이 느껴졌다.

이날 용산구 소재 한 SKT 대리점은 베가아이언에 48만원, 갤럭시S4에 70만원대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보조금 가운데 26만원은 단말기 가격에서 할인해주고 그 나머지 금액은 현금으로 불법 지급하는 형태다. 각각의 제품을 7만원, 10만원대에 판매한 셈이다.

 
사진=머니위크 류승희 기자


◆D-1: 마지막이라더니…
'마지막'이라는 말은 덧없었다. 이날도 여전히 이통사들은 과다 보조금을 투척했다. KT와 LG유플러스의 영업정지 시작일을 하루 앞둔 지난 12일, 용산에 위치한 한 판매점에서는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 LG G2로 SKT 번호이동 시 60만4800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근처 LG유플러스 직영점은 갤럭시노트3네오로 번호이동 시 53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인근 KT 대리점은 갤럭시S4LTE-A, 베가시크릿업에 각각 40만원을 지원했다. 두 직영점, 대리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SKT 대리점에서는 갤럭시노트3네오에 40만원, 갤럭시S4 LTE-A에 50만원의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D-Day: 단독 '정상영업' SKT "보조금 30만원! 4만원은 현금으로"

SKT는 '오직 SKT만 정상영업'이라는 현수막을 각 대리점마다 내걸고 번호이동 가입자 확보에 열을 올렸다. 본사로부터 내려오는 보조금은 하루 전보다 확 줄었지만 여전히 법정 가이드라인보다 많은 금액을 지급하는 곳이 있었다.

서울 시청역 인근 한 SKT 직영점은 갤럭시노트3에 22만원, 갤럭시노트3네오·갤럭시S4 LTE-A·G2에 30만원(4만원은 현금 지급)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 직영점 직원은 "어제 샀으면 더 좋았을텐데…"라며 "주식이 언제 오르고 내릴지 모르듯 휴대폰 보조금도 얼마나 오르고 내릴지 모른다. (영업)정지되기 전까지 좀 두고보자. 번호를 알려주면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조심스러운 곳도 있다. 영업정지에 묶인 KT와 LG유플러스가 홀로 정상영업을 하고 있는 SKT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어서다. 게다가 정책당국의 모니터링도 SKT에 집중된 상황이다.

지난 13일 오후 1시께 을지로 인근 SKT 대리점에서는 갤럭시노트3에 22만원, 갤럭시 노트3 네오·갤럭시S4LTE-A·G2에 26만원의 보조금을 적용했다. 출고가에서 보조금을 뺀 가격이 할부원금이다. 해당 대리점 직원은 "영업정지에 들어가는 4월5일 전까지 본사에서 좋은 (보조금)정책이 나올 수 있다"며 "가격이 좋을 때 바로 문자를 보내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이날 영업정지에 들어간 LG유플러스와 KT는 매장이 텅텅 비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부 대리점과 직영점에서는 통상 회사원들이 많이 몰리는 점심시간 때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광화문 소재 KT 대리점에서는 자사에 걸린 '영업정지' 안내문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한 언론사 기자와 이를 저지하려는 직원 간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대리점의 직원은 카메라를 막아서며 "허락도 않고 왜 우리 대리점을 찍느냐"고 항의했다.

썰렁하기는 LG유플러스 대리점·직영점도 다르지 않다. 손님 한명이 아쉬울 정도. 실제 서울 시청역 인근에 위치한 LG유플러스 대리점에 들어서니 직원이 "손님, 정말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라며 의자를 빼주고 커피를 직접 타준다. 기기변경 고객이라도 잡아야 하기 때문.

그는 24개월 이상 LG유플러스를 사용하는 고객이 갤럭시 S4 LTE-A(16G) 기기로 변경할 경우 출고가 84만7000원에서 27만원 보조금을 제외한 56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사용자에게 누적된 쿠폰을 적용하지 않은 가격)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