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어린이집 설치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업장 수가 여전히 전체의 절반을 넘어선다. 직장에 다니는 부모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설인데 일부 기업들은 설치 대상임에도 의무를 외면하고 있다. 설치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업장 중에는 대기업도 다수 포함돼 있어 사회적 책임 회피 논란이 커졌다. 

◆설치 기업 절반도 안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직장어린이집 설치 현황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2013년 12월31일 기준 전체 의무사업장 1074개소 중 설치·수당·위탁 등의 방식으로 ‘이행’한 곳은 877개소(81.7%)로 조사됐다. 197개소(18.3%)가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

특히 실제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한 비율은 49.7%(534개소)로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설치의무를 보육수당 지급(22.5%·242개소)과 위탁보육(9.4%·101개소)으로 돌린 탓이다. 2012년 9월 말보다 직접 설치 비율이 10.6%포인트 상승했지만 여전히 절반에 못 미친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 여성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을 고용한 사업장은 사업주가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 단독으로 설치할 수 없을 때는 공동 설치·운영하거나 지역 어린이집에 위탁보육 또는 근로자에게 보육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설치의무사업장이 보육수당 지급으로 직장어린이집 설치의무를 대신하는 것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직장어린이집을 직접 설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위탁보육 요건도 강화할 예정이다. 일부 기업의 참여율이 저조해 내린 결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직장어린이집 설치 유도를 위해 규제 개선과 지원 확대를 우선 추진하겠지만 명단공표제도를 강화하고 이행강제금제도를 점진적으로 도입해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계획”이라며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통해 맞벌이 가정의 보육서비스 이용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 직장어린이집 /사진제공=한화그룹
◆재정부담·장소확보 곤란
실제로 기업들의 직장어린이집 의무설치율은 전체 633개소 중 287개소에 그쳤다. 45.3%로 절반에 못 미친다. 위탁보육(69개소)과 보육수당(122개소)까지 더하면 75.5%까지 올라서지만 24.5%(155개소)의 기업이 직장어린이집 의무설치를 이행하지 않은 사실에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이들 기업의 직장어린이집 의무설치 미이행 사유는 재정 부담, 장소확보 곤란 등이다. ▲직장어린이집 설치 대상이 된 날부터 1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 ▲직장어린이집 설치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 건축비용 일부를 집행하는 등 직장어린이집을 설치 중인 경우 ▲상시 근로자의 특성상 보육수요가 없는 경우 등은 미이행 사업장에서 제외됐다.

미이행 기업 중에는 굵직한 기업도 다수 눈에 띈다. 대림산업, 효성, 한진중공업 등 재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대기업들로, 업계에선 이들 기업이 미이행 사유로 재정 부담과 장소확보 곤란을 꼽았다는 사실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한 대림산업에는 6779명의 상시 근로자가 근무한다. 이 중 여성은 835명이고 보육대상 영유아 수는 1277명이나 된다. 하지만 회사 측은 ‘장소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직장어린이집 의무설치를 이행하지 않았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효성도 1666명의 상시 근로자 중 359명이 여성이고 265명의 보육대상 영유아가 있지만 ‘장소확보 곤란’을 이유로 직장어린이집 설치의무를 외면했다. 뿐만 아니라 효성 울산공장과 창원공장의 보유대상 영유아 수는 총 769명이나 되지만 이 역시 장소확보가 곤란하다는 이유로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뒷전으로 미뤘다.

한진중공업도 마찬가지다.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 위치한 이 기업은 상시 근로자 수가 1267명이다. 상시 여성근로자 수는 24명이고 보육대상 영유아 수는 184명이다. 이 기업은 재정부담과 장소확보 곤란을 직장어린이집 미이행 사유로 내놨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LF(옛 LG패션)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상시 근로자 1016명 가운데 여성근로자가 506명이고 보육대상 영유아 수는 258명이지만 미이행 사유는 역시 장소확보 곤란이었다.

경남 창원시 성산구 신촌동 소재 포스코특수강 역시 1256명의 상시 근로자 중 55명이 여성이고 169명이 보육대상 영유아였지만 답변은 장소확보 곤란으로 똑같았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에 위치한 대우인터내셔널은 977명의 상시 근로자 중 255명이 여성이다. 보육대상 영유아 수는 212명이지만 미이행 사유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계속 버티면 이행 강제금

이 같은 기업들의 직장어린이집 설치의무 미이행에 대해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재정 부담과 장소확보 부족이라는 사유는 대기업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일부 대기업이 직장어린이집 설치의무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비롯됐다.

지난해 12월 개원한 LIG넥스원 희망어린이집은 적극성을 띤 사례로 꼽힌다. 이 기업은 사업장 내 위험시설과 부지확보가 곤란했지만 외부에 위치한 사원아파트에 어린이집을 설치했다. 오히려 사업장보다도 쾌적하고 안전한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별동의 건물에 어린이집을 설치하고 회사에서 많은 재정지원을 하면서 부모들의 만족도가 훨씬 높아졌다. 직장어린이집 설치의무를 미이행한 일부 기업들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직장어린이집 설치는 현재 강제적인 부분이 아니라 일부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하지만 2016년 하반기에는 미이행 시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후에도 설치하지 않을 경우 이행 강제금이 부담되기 때문에 언제까지 모르쇠로 일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직장어린이집 설치의무를 미이행한 기업들은 현재 검토 단계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2016년까지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는 쪽으로 의견을 취합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설치의무 미이행 기업 관계자는 “직장어린이집 위치가 회사에서 가까워야 하고 도심의 경우 임대료도 너무 비싸서 당장 결정을 내리기 곤란하다”며 “2016년까지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