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만대 vs 338만대'. 국토교통부와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차 거래는 약 338만대로 156만대를 기록한 신차시장의 2배를 넘어섰다. 시장규모(추정치)로 따져도 30조원을 넘어 세계 10위에 해당한다. 중고차 판매의 급성장은 인터넷의 발달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동안 중고차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정보부족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줄여주는 창구로서의 활용이 성과를 본 것이다. 이와 함께 경기침체로 저가에 차를 마련하려는 고객이 늘고 품질개선으로 자동차의 내구성이 강화된 것도 중고차시장이 성장하는 데 한몫 했다. 또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출도 빼 놓을 수 없는 이유로 꼽힌다. 특히 비교적 투명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운 '중고차경매시장'을 잡기 위한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중고차시장. <머니위크>가 국내 중고차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봤다.

 

시큼한 과일의 대명사 레몬은 미국의 비격식 속어로 '쓸모 없는 것, 불량품'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를 본따 경제 분야에서는 재화나 서비스의 품질을 구매자가 명확히 알 수 없어 불량품만 나돌게 되는 시장상황을 '레몬마켓'이라고 일컫는다. 이 레몬마켓의 원조이자 대표개념이 바로 중고차시장이다.

예컨대 중고차시장에서 구매자는 차량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물건을 골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딜러는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차의 상태를 속속들이 알고 있음에도 이를 명확하게 제공하지 않거나 때로는 속이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편견과 불신이 가득한 국내 중고차시장은 '불량마켓'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매년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2010년 이후 신차가 150만대의 등록대수를 꾸준히 유지하는 반면, 중고차 거래대수는 지난해 338만대로 신차 대비 2.2배에 달하는 거래량을 기록했다.

설익은 채로 덩치만 커지고 있는 중고차시장은 이제 본격적인 산업화과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관건은 누가 3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중고차시장의 성장에 따른 과실을 가져갈 것이냐다. 단순히 유통분야에만 머물고 있는 중고차시장의 향후 발전상과 그 과정 속에 성장하는 기업들의 생존방정식을 풀어본다.



◆'레몬마켓' 중고차시장, 산업화 필수적
KTB투자증권 및 국토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재 중고차 매매단지라 일컬어지는 독특한 상사체계 속에서 4000여개에 달하는 상사법인, 3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매매딜러를 중심으로 중고차시장이 형성돼 있다. 서울 장한평, 가양동 등 유명 대형매매단지를 비롯해 인천, 대구 등 지방까지 총 320여개의 중고차 매매단지를 통한 매매가 일반화됐다.

그럼에도 국내 중고차시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영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일본 등 해외 주요국의 경우 제조와 판매가 분리돼 판매대리점에서 신차와 중고차 유통을 동시에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국내 신차 제조사는 제조 및 유통을 직접 관할한다. 따라서 중고차업계는 신차 제조사의 중고차시장 참여를 강력히 반대해왔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의 중고차업계 진출이 제한됐으나, 대신 이렇다할 기업화가 진행되지 못했고 신차와 중고차 유통이 단절된 영세한 사업구조도 고착화됐다.

실례로 현대자동차의 경우 경매라는 도매시장에서 한정적인 중고차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매출을 통한 사업화는 SK C&C의 SK엔카가 유일하다. 하지만 SK엔카 역시 딜링을 통한 거래대수는 전체의 1.8% 수준에 불과하다.

단기간에 중고차시장이 하나의 산업영역으로 들어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국내 중고차시장이 충분히 산업화에 접어들 수 있다고 단언한다.

우선 소비자 효용 측면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만연하는 중고차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한계에 도달했다. 허위매물 등에 피해입은 소비자들은 더이상 중고차시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는 기업형 서비스를 통한 투명하고 경쟁력 있는 시장을 요구하는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수출 등의 국가산업 활성화 측면에서도 산업화는 필수다. 현재 수준의 자본력과 규모로는 중고차 수출을 추진할 힘이 부족하다. 또한 세수확보와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정부의 의지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중고차시장은 앞으로 빠르게 산업화될 가능성이 크다.

 
◆경매·온라인 통해 대기업 속속 진출

중고차시장의 산업화에 있어 핵심 분야는 렌터카와 경매, 그리고 온라인시장이다. 해외사례를 보면 일본은 경매장의 활성화를 통해, 호주는 카세일즈닷컴과 같은 온라인 중고차시장의 고도화를 통해 정보의 비대칭성을 제거하면서 시장의 산업화를 진행했다.

경매장업계는 출품물량의 안정적인 확보가 핵심인 만큼 밸류체인 확대가 비즈니스모델의 핵심 강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두 기업(AJ렌터카·SK엔카)이 AJ렌터카-AJ셀카-서울경매장(AJ렌터카 계열)과 SK네크웍스-SK엔카-SK엔카경매장으로 이어지는 라인을 완성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아직 전체 중고차거래에서 경매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2.1%에 불과하다. 하지만 3곳의 경매장을 운영 중인 현대글로비스(오토옥션)가 지난 3년간 28.3%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AJ렌터카와 SK엔카가 밸류체인 형성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에 기대가 모아진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경매보다는 온라인을 통한 시장 확장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중고차의 공급창으로 볼 수 있는 경매장이 아직까지 시장의 대세를 이루는 상황에서 일반중고차 소매상들이 대기업들을 '경쟁자'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 직매 및 온라인사이트를 운영하는 SK엔카는 지난 3월 호주의 카세일즈닷컴과 합작해 온라인판매 전용 엔카닷컴을 설립했다. 카세일즈닷컴의 연간 등록대수는 약 200만대. 호주 전체 중고차 연간 거래대수와 유사한 수준이다. SK엔카는 이들이 정착시킨 선진 온라인거래서비스를 국내에 도입, 정보의 비대칭성을 제거하고 사업성을 키울 예정이다.

도이치모터스와 현대캐피탈도 각각 '지카'(G-car)와 '오토인사이드'를 통해 투명성과 편리성을 무기로 중고차 및 부품판매의 온라인시장 성장을 대비 중이다.

 
◆A/S·금융 등 다양한 '사업가지'도 주목

A/S와 금융서비스 역시 중고차 매매 흐름의 전과정에 걸쳐 있어 매우 중요한 분야로 꼽힌다. 국내 렌터카업계 1위인 KT렌탈이 KT렌탈오토케어(렌트 차량관리)와 KT오토리스(금융리스)까지 사업을 확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AJ렌터카 역시 AJ카리안서비스(차량관리), AJ카리안디투디(순회정비), AJ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금융리스), 엘앤에프오토론(담보대출) 등 모든 사업영역에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가격비교 정보제공 전문 전자상거래 쇼핑포털인 '다나와'도 주목할 만하다. PC 등 IT제품에 특화된 곳이었지만 최근에는 중고차산업에도 뛰어들었다. 온라인 중고차쇼핑몰 상위 6개 사업자를 제휴사로 등록해 중고차 가격정보를 제공하는 다나와 중고차서비스를 개시한 것. 또한 리스·렌트, 할부·보험(금융), 용품 및 정비·관리(A/S) 등 자동차 관련 전산업에 걸친 제휴고객사의 가격정보도 제공할 계획이다. 올 하반기 중 10만명의 트래픽에 도달할 경우 수익모델로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진원·최종경 KTB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수출, 금융, A/S, 폐차부품 해체 및 재활용산업 등이 중고차시장을 기반으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되는 차기 핵심분야들"이라며 "올해를 기점으로 개척되지 않은 30조원대 중고차시장의 먹거리를 차지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