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시설공단 '민관 유착고리' 전방위 수사 착수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근무하는 진명철씨(가명)는 요즘 눈이 아프고 입에선 단내가 난다. 공단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해 하루 종일 눈치를 보며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기 때문이다. 진씨는 “올해 들어 공단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며 “행여나 말실수를 하게 될까봐 업무 외에는 가급적 말을 안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부채 과다·방만 공기업으로 정부에 낙인찍힌 데 이어 최근에는 납품비리로 압수수색까지 받으면서 공단이 생긴 이래 최대 위기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철도시설공단 내부 관계자가 전하는 요즘 공단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은 느낌이다. 삼삼오오 모여 언론이나 자신들이 전해들은 부채와 방만 경영 계획안에 따른 얘기를 하는가 하면 복리후생비 삭감이나 임금 동결 등 자신들에게 미칠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기관장이 행여 바뀌는 것은 아닌지 등의 얘기를 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더욱이 최근 세월호 사태와 지하철 2호선 추돌 사고 등으로 불거진 ‘관피아’ 논란이 자신들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걱정돼 업무가 손에 안 잡힌다.

 
/일러스트레이터=임종철

◆ '철피아' 오명에 조여오는 檢 수사망
세월호 사태와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사고 등의 격랑 속에서 철도시설공단은 바짝 엎드려 있었다. 공단 업무와 직결된 사고는 아니었지만 시설 안전과 관련된 사고였던 만큼 시설물을 공사·관리하는 철도시설공단으로서는 시범 케이스로 찍히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결국 철도시설공단으로 불똥이 튀었다. 검찰이 지난 5월21일 ‘관피아’ 척결 방안을 내놓은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공단을 찾아온 것이다. ‘철피아’(철도+마피아)라는 오명도 뒤집어썼다.


철피아를 첫 수사 대상으로 삼은 건 2011년 2월 KTX광명역 탈선사고를 포함해 철도와 지하철에서 대규모 인명피해의 전조가 여러 차례 나타났기 때문이다. 광명역 사고의 원인은 부실한 ‘레일체결장치’였다. 또 지난해 신분당선에서 400여개가 파손된 채 발견된 것도 레일체결장치였다. 레일체결장치는 열차 하중을 분산하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철로를 침목에 부착시키는 핵심 부품이다.

검찰은 독일 보슬러에서 레일체결장치를 수입·납품하는 에이브이티(AVT) 사무실도 압수수색했다. 이 장치를 납품하던 시기에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AVT는 호남고속철도 납품업체 선정과정에서 제출한 시험성적서를 위조했다는 게 드러나 지난해 국회에서 논란이 됐다. 검찰은 AVT가 고속철-공항철도 연계사업과 호남고속철도사업 때 철도시설공단에 제출한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납품업체로 선정된 경위를 집중 조사 중이다.

검찰은 김광재(58) 전 이사장을 포함해 철도시설공단 전·현직 간부들이 납품업체 선정 과정에서 금품을 받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김 전 이사장은 국토해양부 항공정책실장 출신으로 2011년 공단 이사장에 임명됐다가 지난 1월 사직했다.

대검찰청 반부패부는 전국검사장회의에서 ‘철피아’에 대해 “철도고·철도대학 출신이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 등 관련 기관을 장악하고 퇴직자는 민간기업에 재취업해 공사 입찰을 위해 현직 임원과 유착고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지목했다.

◆ 납품업체 재취업 유착고리 '정조준'

검찰의 움직임은 철도시설공단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오던 문화가 벗겨진 것이다. 사실 철도시설공단은 철도청이었을 당시부터 공단 퇴직자들이 납품업체 임원으로 재취업 해왔다. 이는 어느 순간부터 관행으로까지 자리 잡았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철도시설공단 부장급 이상 퇴직자 185명 가운데 136명이 철도 관련 민간업체에 취업했다.

실제 ‘철피아’는 철도 관련 공사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이들의 입김은 공단의 발주 공사 입찰에 영향을 미쳐 퇴직자 영입 여부에 따라 업계 순위가 바뀌기도 한다. 이 의원이 공개한 사례를 보면 한 민간업체는 공단에서 관리본부장을 역임한 퇴직자를 영입해 2012년 61억원 규모의 공사 계약을 맺고, 이듬해인 2013년에는 135억원, 222억원 규모의 계약을 수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철피아’의 구조적인 관행과 비리는 어느덧 수장으로까지 향하고 있다. 그동안 철도시설공단 이사장 5명이 모두 국토교통부 출신이기 때문이다. 철도시설공단은 철도 건설만 담당하기 위해 철도청에서 분리시킨 공공기관이지만 국토교통부 출신들이 요직을 독점하고 있다. 초대 정종환 이사장부터 2대 이성권, 3대 조현룡, 4대 김광재, 5대 강영일 이사장까지 모두 국토교통부 고위직 출신이다.

◆ 강영일 이사장 책임론 무성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자리에 올라있는 강영일 이사장의 거취를 놓고도 말들이 많다. 물론 부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부채과다·방만 공기업으로 정부에 낙인찍힌 데 이어 세월호 사태로 '관피아(관료+마피아)'가 논란이 되면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공직 사회의 부패와 민관 유착 비리가 민낯을 드러낸 가운데, 정부가 관피아 전횡을 뿌리 뽑을 수 있을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이러한 인물 중 한명으로 강 이사장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으로까지 번진 셈.

정부 부처의 한 인사는 “이번 검찰의 철도시설공단 압수수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대통령이 관피아 척결을 외치자마자 검찰이 바로 철도시설공단으로 움직인 것은 무언가 생각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도 “강 이사장 취임때부터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며 “세월호 참사로 인해 그동안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시설물 관리에 대한 비리와 관피아 논란까지, 누군가 책임을 져야하는 인물이 나와야 하는데 그 인물로 강 이사장을 정부가 지목한 것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