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돈을 모아 보내준 12일간의 서유럽 여행. 주변에서는 자식 잘 둬 유럽여행 간다며 부러운 시선을 보냈지만, 이들에게는 최악의 여행이 되고 말았다. 여행 내내 인솔자의 눈치를 보며 물 한 모금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안전벨트조차 갖추지 않은 버스를 타고 다니며 신변의 위협까지 느껴야 했다.
이도 모자라 고산지대로 유명한 스위스 융프라우에서는 고산병 증상을 호소하는 여행객에게 핀잔을 주며 방치해 큰 사고가 일어날 뻔했다. 자식들은 효도 한번 해보겠다며 추진한 여행 선물이 '불효여행'으로 돌아왔고, 여행을 떠난 부모들은 자식들이 미안해 할까봐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어찌 된 사연인지 <머니위크>가 여행을 다녀온 당사자들의 증언을 들어봤다.
#. 지난달 17일 런던의 한 식당. 10명이 둘러앉은 테이블 위에 1.5ℓ 물 한통이 놓여 있었다. 장시간 여행으로 지친 여행객들은 몹시 목이 말랐고 물은 금세 동이 났다. 이때 관광객 중 한명이 물 한통을 더 주문했는데, 저 멀리에서 한명이 뛰어오며 큰 목소리로 “누가 물을 시켰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바로 여행을 책임지던 인솔자였다.
#. 3일 뒤인 20일. 고산지대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한국인 여성 관광객 한명이 고산병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하지만 당시 그녀 주변에는 다른 일행이나 인솔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 사고 현장을 지나던 다른 여행사 인솔자와 관광객들을 만나 응급조치를 받아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인솔자의 몰상식한 언행과 행동에 엉망이 돼 버린 유럽여행. 문제의 여행상품은 국내 노랑풍선 여행사에서 패키지로 내놓은 ‘서유럽 6개국 12일 코스’다. 지난달 5월 16~27일에 진행된 이 여행은 ‘가정의 달’을 맞아 자녀들이 부모님을 보내주는 패키지여서 50대 이상의 여행객이 유난히 많았다. 총 34명의 여행객 대다수가 노년층이었다.
대부분 처음 서유럽여행을 떠난 이들은 흥겨운 여행을 기대했지만 이같은 바람은 여행 첫날부터 산산조각이 났다. 바로 노랑풍선 본사 직원인 인솔자 박모씨의 언행 때문이었다. 여행객들과의 첫 대면부터 자신을 17년 된 베테랑이라고 소개하며 거들먹거리는가 하면, 툭하면 소리 지르며 핀잔을 주는 일이 여정 내내 반복됐다.
한 여행객은 인솔자의 인성에 문제가 있다며 12일 동안의 여행이 악몽이었다고 말했다. “툭하면 소리치고, 우리들이 말 안 들어 사고 나면 자신은 책임지지 않는다. 나는 강남에 커피숍도 갖고 있어 이런 일 안 해도 된다는 등의 협박을 하는 겁니다. 무서워서 여행 다니겠습니까 어디.”
이러한 여행객의 증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또 다른 여행객도 “고함 지르는 것은 다반사고 여행객이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사람들 앞에서 몰지각하다는 등의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식당에서 물이 모자라 무심결에 시켰는데, 저 멀리서 소리치며 쫒아와 '생각이 없다. 기본도 모르냐'는 등의 폭언을 일삼았다”며 “이러고 난 후에 일행들을 모아놓고 '아까 내가 소리쳤다고 삐지기 있어요, 없어요?'라고 말하는 등 여행 내내 모욕감을 느꼈다”고 호소했다.
◆ 아프다는 여행객에 ‘핀잔’… 타 여행사 응급조치로 불상사 막아
인솔자의 문제는 언행에만 그치지 않았다. 인솔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책임의식 또한 결여됐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해발 3454m의 고산지대 스위스 융프라우 여행도중 양모(58·여)씨는 인솔자에게 고산병 증상인 어지러움과 호흡곤란을 호소했으나 돌아온 것은 무시와 핀잔이었다.
그러고 얼마 뒤 양씨가 바닥에 쓰러졌지만 인솔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곳을 지나가던 국내 H여행사 인솔자와 관광객들이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하곤 그늘로 옮긴 후 가슴 마사지와 팔다리를 10분여간 주무르는 등의 응급조치로 그의 증상이 호전됐다.
이후 얼마 뒤 그녀를 찾아온 인솔자는 그녀를 데리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가며 계속 핀잔을 주고 짜증을 냈다. 양씨는 “인솔자에게 증상을 설명하며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여기에 올라오면 다 그런다’는 말 뿐이었다”며 “일행이 있는 곳으로 옮기는 도중에도 ‘내려가면 괜찮아 질 것을 왜 유난을 떠냐’는 등의 폭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랑풍선 측은 “인솔자에게 확인한 결과 융프라우에서 비슷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휴식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파악이 제대로 안됐다고 한다”며 “여행객의 항의도 없어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논란이 된 인솔자의 언행과 행동에 대해서는 “인솔자와 여행객들의 주장이 상반되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며 “인솔자가 출장을 간 상황이라 돌아오는대로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 고객 안전·인권도 없는 여행
이번 여행은 버스의 안전문제와 인권을 무시한 현지 스케줄 대응에서도 문제가 나타났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을 여행하는 동안 여행객들이 이용한 전용버스에는 이들의 안전을 담보할 안전벨트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행객 대부분이 고령이었던 점과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각종 사고로 인해 안전사고에 대해 민감한 상황에서 이같은 버스운행은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탈리아 여행 당시에는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워야 할 상황이 됐는데 이때도 인권을 무시한 인솔자의 태도가 여행객들의 공분을 샀다. 지난달 20일 새벽 4시50분.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인솔자는 공원에 버스를 정차시킨 후 여행객들에게 밖에서 비를 맞으며 도시락을 먹도록 했다. 유럽은 버스 내 음식섭취가 금지돼 있지만 인솔자의 이 같은 처사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한 여행객은 “살면서 이렇게 더럽고 서럽고 짜증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며 “딸아이들이 처음으로 돈을 모아 보내준 여행이라 의미가 남달랐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패키지여행은 어떤 인솔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여행의 질이 결정된다”며 “여행상품을 꼼꼼히 체크하고, 가급적 여러 여행사와의 소통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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