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실망 그 자체다. 그간 정성을 다해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신 회장은 지난 6월24일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사옥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최근 롯데가 안팎으로 처한 상황과 관련해 착잡한 심경이 섞인 말이다.
◆줄악재에 흔들리는 롯데의 공든 탑
현재 신 회장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롯데홈쇼핑 비리 문제다. 지난 6월23일 서울중앙지검은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거나 회사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배임수재 및 횡령)로 신헌 전 롯데쇼핑 대표 등 임직원 7명을 구속기소하고, 전·현직 상품기획자(MD)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비리 내용은 가관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신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던 신 전 대표는 2007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방송 출연과 백화점 입·퇴점 등의 편의 제공 명목으로 업체 등 3곳으로부터 1억33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챙겼다. 그는 공사비를 부풀려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3억272만원을 횡령, 그 중 2억2599만원을 사적으로 쓰기도 했다.
믿었던 임직원에 대한 배신감도 잠시. 상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신 회장이 예정에 없던 긴급 사장 회의를 주재한 6월24일,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 여동생이 납품비리 혐의로 피소됐다. 이 부회장 여동생인 이모씨는 롯데마트 협력업체 등록을 미끼로 사업체 대표로부터 아반떼 리스 차량을 넘겨받고, 자동차 보험료를 대납하게 하는 등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홈쇼핑 비리로 얼룩진 상황에서 신 회장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 특히 이 부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 회장의 형인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부자의 경영을 보좌하는 그룹의 핵심 리더로 알려져 있어 충격이 컸다.
재계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사이가 좋지 않은 두 형제가 경영권 승계와 맞물려 지분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형 쪽 가신으로 점쳐지는 인물과 관련된 비리는 신 회장에겐 충분히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잦은 안전사고도 신 회장 위기론에 한몫 한다. 롯데는 대기업군 중에서 유독 안전 불감증에 빠져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 제2롯데월드 타워 공사현장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올 4월까지 약 10개월간 4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당초 롯데 측이 계획했던 5월 조기개장이 물 건너 간 것은 물론, 건축 허가 자체를 재검토하라는 주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 회장이 이달 들어 ‘안전’에 대해 강조한 횟수만도 세차례에 달한다. 그만큼 걱정이 크다는 얘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 회장 리더십’까지 도마에 올랐다. 지난 5월 말 롯데슈퍼 일부 직원들이 회사의 살인적인 업무강도, 불합리한 근무조건, 권위적인 조직문화 등을 지적하고 나서면서 롯데그룹 자체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롯데의 ‘직원 옥죄기’를 신 회장이 내건 비상경영체제의 폐해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신 회장은 취임 첫해인 2011년 10월부터 비상경영체제 돌입을 선포했다. 당시 주력 계열사인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홈쇼핑 등 유통 계열사들은 판촉비, 접대비 등 소모성 경비 지출을 최대한 줄여나갔다.
2012년 6월에는 비상경영체제를 전 계열사로 확대했고 롯데마트만 해도 지난 3월 급격한 실적악화를 이유로 독자적인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했다. 취임 후 줄곧 전사적인 비상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직원 옥죄는 비상경영체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비상경영체제로 직원들의 고삐를 조였지만, 신 회장은 롯데쇼핑 등 계열사에서 매년 수백억원의 배당금을 받아 챙겼다는 것. 또 수천억원대 자금으로 국내외 대형 인수·합병(M&A)에 참여, 그룹 몸집을 불려나가는 데도 속도를 냈다.
그러나 기대만큼의 성과는 얻지 못하고 있다. 신 회장이 야심차게 인수한 롯데하이마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7% 증가한 292억원에 머물러 실망을 안겼다. 해외사업 확대 및 관계사 흡수를 진행한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등 음식료 계열사의 상황도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
이런 가운데 롯데그룹은 해외 M&A로 차입금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빚이 급증했다. 롯데쇼핑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차입금은 12조3470억원. 2010년 8조3954억원이었던 차입금이 3년도 안 돼 4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이자비용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 신 회장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업계 안팎에선 신 회장이 공격적인 M&A 전략으로 롯데의 덩치를 키우는 데 성공했지만 내실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며 “신 회장이 개인 과욕을 앞세우기보다 롯데 조직 내부의 곪아터진 부분을 먼저 개선해야 할 시기”라고 진단했다.
국내 5위권 굴지의 대기업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보기 힘든 메가톤급 악재가 속출하면서 신 회장의 비상경영에도 '비상등'이 켜진 모습이다. 신 회장은 과연 실타래처럼 꼬인 그룹 안팎의 문제를 털어내고 위기의 롯데를 구할 수 있을까. 롯데에 쏠린 요즘 유통업계의 이목이 신 회장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프로필
1955년 일본 출생/1977년 일본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경제학부 졸업/1980년 미국 콜롬비아대학 경영학 석사/1981년 4월 일본 노무라증권 입사/1982년 2월∼1988년 2월 노무라증권 런던지점 근무/1988년 4월 일본 롯데상사 입사/1990년 3월 호남석유화학 상무/1995년 12월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1997년 2월 롯데그룹 부회장/1999년 5월 코리아세븐 대표이사/2000년 롯데닷컴 대표이사/2004년 3월 롯데제과 및 호남석유화학 대표이사/2004년 10월~ 롯데 정책본부 본부장/2011년 2월~ 롯데그룹 회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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