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박 전 부회장의 재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팬택의 창업자이자 상징과도 같았던 그가 기업 인수행보에는 적극적이면서 정작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친정기업’ 팬택의 회생은 외면하고 있다는 쓴소리가 많아서다.
◆재기 모색… SK하이닉스 자회사 인수 눈앞
반도체 시험·인증 업체 큐알티의 우선 인수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곳은 팬택씨앤아이. 박 전 부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2012년 975억원, 지난해 425억원의 매출을 올려 중견 시스템통합(SI)·관리 업체로 자리잡았다. 휴대폰 부품 업체인 라츠와 인력업체인 토스 등의 자회사까지 두고 있다.
작년 팬택 경영에서 손을 뗀 박 전 부회장은 이 팬택씨앤아이를 비롯해 라츠, 토스 등의 회사를 함께 운영하면서 팬택과의 인연을 계속 맺어 왔다. 팬택 채권단의 문제 제기로 팬택에서 수주하는 물량은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휴대폰 액세서리 등을 팬택에 공급하고 있다.
그러던 중 토스를 통해 경비인력을 파견하며 SK하이닉스와 비즈니스 협력관계를 맺어왔고 이번 큐알티 인수전까지 뛰어들었다. 큐알티의 매각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시장에서는 100억원에서 150억원 규모로 추정하는 상황.
큐알티는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전자에서 2001년 분사한 업체로 연매출은 180억원 정도, 영업이익률은 12%에 달한다. 박 전 부회장은 “연간 매출 200억원 규모의 작은 기업이지만 보유한 기술 때문에 해외 기업에 넘어가면 안된다”며 이 회사에 대한 강한 인수의지를 밝혀왔다. SK하이닉스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공식 발표하면서 팬택씨앤아이에 대한 실사에 들어갔고 7월 말까지 정식 계약 체결을 완료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팬택씨앤아이를 앞세운 박 전 부회장의 재기 노력은 이전에도 있었다. 올초 팬택씨앤아이를 통해 컨소시엄을 구성,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른바 ‘스포츠토토’로 불리는 체육진흥투표권 발행사업의 새로운 수탁사업자 입찰을 추진한 게 그렇다.
◆"기업 살 돈 있으면 팬택 살리지"
박 전 부회장의 큐알티 인수에 대한 강한 의지와는 대조적으로 현재 그의 행보를 둘러싼 주변의 반응은 싸늘하다. 특히 팬택 진영에서 감지되는 반감분위기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팬택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팬택씨앤아이만 해도 팬택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커온 회사인데 박 전 부회장이 큐알티를 인수할 정도의 자금이 있다면 우선 팬택 회생에 힘을 보태야 하는 게 아니냐”고 지탄하는 목소리가 크다.
실제 팬택의 경영사정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박 전 부회장이 떠난 뒤 팬택은 올 3월 2차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팬택에서 받을 돈 3000억원을 출자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에 팬택 채권(판매장려금 채권) 가운데 1800억원을 출자 전환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채권단에 답변을 주지 않으면서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다급해진 팬택은 이통사에 1800억원 채무 상환 유예기한을 2016년 7월25일로 2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 SK텔레콤이 가장 먼저 팬택이 제시한 이 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나머지 2개 이통사들도 이 행렬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지난 17일에는 팬택의 협력사 60여개로 구성된 팬택 협력사 협의회가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T타워 앞에서 정부, 채권단, 이통사를 대상으로 팬택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협의회 관계자들은 "팬택 지원 여부에 대해 결정이 나지 않으면 대부분의 협력사는 줄도산 하고 550개 협력사 8만 종사자, 직계가족 30여만명은 거리로 나앉게 된다“고 읍소했다.
이보다 앞선 10일에는 이준우 사장까지 나서 “팬택이 존속할 수 있도록 채권단이 제시한 방안을 이동통신 3사가 검토해주길 간절히 호소한다”며 이통사들에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기도 했다.
박 전 부회장은 1991년 맨손으로 팬택을 세워 윤석금(웅진그룹), 강덕수(STX그룹)와 함께 대표적인 ‘샐러리맨 신화’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무선호출기(삐삐) 사업으로 시작해 휴대폰 사업으로 덩치를 키운 뒤 현대큐리텔과 SK텔레텍을 잇달아 인수하며 지금의 팬택을 일궜다.
비록 거침없는 성공 신화가 창업 15년만에 좌초되며 팬택의 사령탑에서조차 내려와야 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팬택의 회생에 '박병엽의 역할론'이 가미될 것을 기대한다.
박병엽은… 삐삐신화 일군 '오뚝이'
1962년 전북 정읍 태생인 그는 양조장집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으나 형의 투병과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지방대(호서대 경영학과)를 나와 1987년 무선호출 제조사인 맥슨전자의 영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91년 10평짜리 아파트 전세금 4000만원으로 팬택을 창업해 삐삐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이후 벤처와 IT 업종의 호황으로 사세를 확장했고 1997년에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휴대전화 제조사업에 진출했다. 특히 2000년대 초 33만 화소급 카메라를 장착한 휴대전화를 세계 최초로 출시한 데 이어 국민적 히트 상품 ‘스카이폰’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1년 부채로 경영난을 겪고 있던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면서 외형을 키웠고 2005년에도 ‘스카이’ 브랜드의 휴대전화를 만들던 SK텔레텍을 인수하면서 삼성전자, LG전자와 함께 국내 3대 휴대폰 제조사로 우뚝 섰다.
하지만 팬택은 2006년 불어닥친 모토로라의 휴대폰 '레이저' 열풍과 국내외 금융환경 악화로 2007년 4월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후 박 부회장이 4000억원대 보유 주식을 내놓고 정상화에 진력한데 힘입어 팬택은 2011년 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그럼에도 만성적자를 흑자로 돌려놓지는 못했다. 결국 지난해 9월 800명의 감원을 포함한 자구책을 내놓으며 자신도 팬택을 떠났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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