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칼을 빼들었다. 지난 7월22일 장 마감 후 각 계열사들이 보유 중이던 계열사 지분을 장외시장에서 거래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대기업의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법안이 7월25일자로 시행되기 직전 벌어진 일이어서 이목이 집중됐다.

덕분에 다음날인 7월23일, 시장은 환호했다. 상장돼 있는 롯데그룹주 8개 가운데 롯데하이마트(-1.02%)를 제외한 전 종목이 오른 것. 특히 롯데제과의 경우 장중 217만5000원까지 급등하며 52주 신고가를 고쳐 쓰기도 했다.

 

롯데백화점 본점 /사진=류승희 기자

◇ 롯데그룹, 복잡한 순환출자구조 단순화 나서
지난 7월22일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장 마감 후 일제히 장외에서 지분을 거래했음을 공시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각 계열사들이 가진 롯데그룹 관련주의 지분이 장외거래를 통해 롯데쇼핑과 호텔롯데, 롯데케미칼 등으로 넘어갔다.


롯데쇼핑의 경우 430억원을 들여 롯데칠성음료·롯데제과·롯데푸드·대홍기획·롯데정보통신·롯데건설 등 6개 회사로부터 롯데상사의 지분 12.7%를 매입했다.호텔롯데는 롯데역사, 롯데닷컴, 롯데푸드, 롯데리아, 한국후지필름으로부터 롯데건설 지분 4.0%(875억원)를 사들였다. 롯데케미칼은 대홍기획과 롯데리아로부터 롯데알미늄 지분 5.1%(328억원)를 샀고, 롯데상사는 롯데리아 지분 0.9%(72억원)를 롯데칠성음료에 매각했다.이외에 바이더웨이는 호텔롯데 지분 0.6%(431억원)를 부산롯데호텔에, 롯데카드는 롯데칠성음료 지분 1.5%(371억원)를 롯데제과에 각각 넘겼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복잡한 지분거래에 대해 그룹의 공식입장은 명료하다. 매각사의 자금조달 목적, 매입사의 투자목적과 함께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함으로써 지분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
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계열사 간 합병을 진행하는 등 경영상의 사유로 의도치 않게 다수의 순환출자구조가 형성됐다”며 “앞으로 계열사 간 지분구조를 지속적으로 단순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신규순환출자금지 법안이 7월25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했다. 이 법안은 기존의 순환출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의결권 행사도 가능하다. 하지만 기존의 순환출자를 강화하기 위해 각 기업 간 주식취득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미리 나서서 지분을 거래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대기업 집단 가운데 순환출자구조가 가장 복잡하다. 이번 이동 전 롯데그룹의 순환출자는 총 51개에 달하며 이 중 롯데쇼핑이 43개, 롯데칠성이 24개, 롯데제과가 12개의 연결고리로 엮여 있었다.

 


◇ 순환출자 해소에 식품株·롯데쇼핑 부각
이번 지분이동과 관련해 시장전문가들은 순환출자구조 해소가 1차적인 목표로 보이나 계열분리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회사가 밝힌 바는 없지만 이번 지분이동을 보면 계열분리 움직임도 감지된다”며 “롯데쇼핑이 축이 되는 유통·상사와 롯데제과가 축이 되는 식품(또는 화학 포함)의 계열 간 통합이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일본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공개되지 않아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의 2세 경영구도를 예측하기가 어렵다”며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한국롯데 회장이 향후 각기 다른 계열을 경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롯데그룹이 복잡하게 얽힌 순환출자구조 해소에 나섰다는 점이다. 이번에 계열사들의 지분이동이 있었지만 아직도 순환출자구조가 완벽하게 해소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때 지분이 지속적으로 이동하면 계열사의 주식을 많이 보유한 종목들이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이 애널리스트는 이에 대해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푸드 등이 특히 계열사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지배구조 개선의 수혜를 입을 것”이라며 “특히 롯데제과는 호텔롯데 다음으로 지배구조상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는 신동주 부회장의 지분율 상승을 볼때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 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양일우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향후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감안하면 롯데쇼핑을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약 롯데가 지주회사 구조로 전환된다면 이 과정에서의 핵심은 롯데쇼핑 지분을 20% 이상 보유한 지주회사의 등장이다.

양 애널리스트는 “이 지주회사는 호텔롯데, 롯데제과, 롯데칠성이 각각 보유한 롯데쇼핑 지분 8.8%, 7.9%, 3.9%를 모두 보유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렇게 되면 각 회사가 보유한 롯데쇼핑의 지분이 부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순환출자란?

주식회사를 소유하는 기법, 즉 지배구조 가운데 하나다. ‘갑’이라는 사람이 A라는 회사의 지분을 일정수준 보유해 대주주로 있는 상황에서 회사 A가 B의 대주주가 되고, 회사 B는 C의 대주주가 되는 식이다. 이런 구조라면 갑씨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회사 A의 것뿐이지만 실제로는 B사와 C사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 C사가 다시 A사의 대주주가 된다면 환상(環狀)형 순화출자구조가 완성된다.

이렇듯 순환출자는 소액의 자본으로 다수의 회사를 소유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다만 회사 하나가 무너질 경우 연쇄적인 부도사태가 벌어지며 대기업조차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는 지배구조이기도 하다.

위험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기업집단이 순환출자를 취한 데는 이유가 있다.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는 금지됐으나 순환출자는 막지 않은 만큼 계열사 간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 첫번째고, 다른 하나는 최대주주의 취약한 지배력을 손쉽게 만회하기 위해서다.

IMF 외환위기 시절 기업들이 연쇄도산한 것도 결국은 순환출자였다. 당시의 기억 때문인지 시중에서는 순환출자에 대한 위험도가 지속적으로 부각돼 왔고, 결국 지난해 12월31일 대기업의 신규순환출자 금지를 골자로 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며 신규순환출자가 금지됐다.

다만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에서 사용된 지배구조기법이어서 현재도 순환출자구조로 이뤄진 기업이 많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롯데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한진그룹, 한솔그룹 등이 현재 상호출자제한 대기업 집단 중 순환출자구조로 이뤄진 그룹이다.

순환출자가 금지됐지만 기업들은 당장 이를 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는 모습이다. 지분이 복잡하게 엮여 있어 이를 해소하면서도 지배력을 유지 혹은 확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