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 최근 극장가에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이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명량>은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과 일본군 장수 역을 맡은 배우 류승룡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치열하고 속도감 넘치는 해상전투 장면, 여기에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 등이 더해져 관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 영화는 개봉 8일 만인 지난 6일 7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연일 신기록을 쏟아내며 무서운 기세로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한국영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성적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대세작품답게 <명량>에는 170억원의 제작비에 마케팅 비용을 합쳐 총 2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됐다. 촬영현장에서는 10대가 넘는 카메라가 동시에 돌아갔고 그 결과 관객들의 시선을 휘어잡을 만한 스케일이 큰 전투신을 담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모든 영화가 <명량>과 같이 풍족한 환경 속에서 제작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군소제작사들은 대기업의 극장 및 배급망 독과점과 수직계열화로 인해 시름하고 있으며 현재 국내 영화제작사의 80% 이상이 빈사상태에 놓여있다. 이들은 열약한 영화제작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동으로 투자·배급사를 설립하고 기존 수익배분방식의 변화를 시도하는 등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최부석 기자

◆ 대기업이 장악한 영화시장… '악화일로' 걷는 제작사들
지난해 한 장편영화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가 임금체불로 인한 생활고 끝에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이 스태프와 함께 해당 영화제작에 참여한 스태프 전원은 임금을 지급받지 못했으며 이 같은 일은 영화제작사 사이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A제작사의 영화제작에 약 3~4개월간 제작부장으로 참여했던 B씨는 지난해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조 측 관계자는 "이 영화에 참여했던 한 스태프가 임금체불 건으로 상담을 요청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생활고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스태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해당 영화제작에 참여한 스태프 전원은 아직까지도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영화산업은 대기업의 독과점과 수직계열화로 인해 날이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이다. 대기업이 투자·배급·상영을 독점함에 따라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제작사들은 대기업의 눈치를 보며 경비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외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영화제작사 팀장급 스태프의 월평균 수입은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 지난 2011년 도입된 스태프에 대한 표준근로계약서 역시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4대 보험 가입과 초과근무수당 지급 의무화를 골자로 한 근로계약서는 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시중 중소영화제작사 대표는 "현재 한국영화제작사의 80% 이상이 빈사상태에 빠져있다"며 "영화를 6편 정도 제작한 중견영화사도 직원들의 급여를 몇달째 지급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최근에는 CJ와 같은 투자배급사들이 직접 감독과 계약을 맺으며 제작에 뛰어들어 제작사들의 입지가 계속 축소되는 상황"이라며 "몇몇 대형제작사를 제외한 군소제작사들이 처한 환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다른 영화제작사 관계자도 "대형배급사가 우월한 지위를 남용해 제작사와 협의 없이 영화 상영을 조기종영하거나 관객이 적은 시간대에 배치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이에 따른 불공정한 거래가 마치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화 '소녀괴담' /사진=머니투데이 DB

◆ 리틀빅픽쳐스, 한국영화 시장구조 흔들까
이 같은 대기업 중심의 불합리한 영화제작·배급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영화제작사들은 공공성격의 투자배급사 '리틀빅픽쳐스'를 설립했다. 제작사들이 대기업의 독과점에 반발해 투자배급사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리틀빅픽쳐스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영화제작사 명필름, 삼거리픽쳐스, 청어람, 주피터필름, 외유내강, 케이퍼필름 등 유수의 제작사 등 10개사가 각각 5000만원씩 투자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영화제작·배급 환경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합리적인 배급수수료를 책정하고 공정한 계약과 수익분배를 이뤄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7월2일 첫 배급작인 <소녀괴담>을 선보이며 손익분기점(약 45만명)을 안정적으로 넘기는 호성적을 거뒀다.

특히 <소녀괴담>의 제작사인 고스트픽처스와 주피터필름은 손익분기점을 돌파할 경우 흥행수익의 30%를 스태프들과 배분한다고 밝혀 의미를 더했다. 다만 올바른 배급관행을 만들겠다던 목표와 달리 <소녀괴담> 배급과정에서 전야개봉이라는 변칙을 사용한 점은 한계로 지적됐다.

리틀빅픽쳐스는 앞으로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 <화장>의 배급을 맡아 한국영화투자 대부분을 좌우하는 대형배급사와 외화수입에 의존하는 소규모 배급사로 양분된 영화계의 판도변화를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기덕필름 "영화제작은 공동운명"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김기덕 감독이 대표로 있는 김기덕필름은 제작과정에 참여한 스태프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환경을 개선코자 색다른 방법을 통해 영화를 제작한다. 보통 제작비가 10억원 이하인 영화를 저예산 영화로 구분 짓는데 김기덕필름은 1억원 안팎의 제작비를 통해 영화 한편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거둬들인 극장 상영 수익의 50%를 스태프와 배우들의 몫으로 분배해 스태프들의 최소 생계여건을 보장해주는 것. 또한 영화제작은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이뤄내는 공동작업이라는 의식 아래 시나리오, 감독료, 출연료를 사전에 지급하지 않는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