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4월 서울시내 도로 곳곳이 통제된 적이 있었다. 마포대교, 상암동 월드컵북로, 청담대교, 강남대로 등이 교통 통제된 이유는 영화 <어벤저스 2>의 국내 촬영 때문이었다.

영화 촬영 한번 하는 게 무슨 유세라고 가뜩이나 교통량이 많은 도로들을 통제하는지 비난 여론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어벤저스>의 속편이 촬영되면서 직접적인 홍보효과가 무려 4000억원에 이르고 국가브랜드 가치도 2조원 이상 올라갈 것이란 예측이 나온 만큼 며칠간의 불편은 감수할 만하지 않을까. 게다가 한국 내 영화산업의 성장과 함께 국내 관광산업의 수혜까지 노리고 있다.


이처럼 책자보다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왔던 장소로 여행을 떠나는 시대가 다가왔다. 글이나 사진을 보고 여행을 가는 것과는 다르게 영상으로 접하고 가면 그만큼 감동도 커진다. 단순 여행을 넘어 그 콘텐츠 속 감성까지 느끼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케이션 투어가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tvN '꽃보다 할배' /사진=머니투데이DB

 
◆<겨울연가>에서 <꽃할배>까지… 여행지를 바꾸다
로케이션 투어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개념이다. 서울에서 1시간 반 남짓이면 도착하는 남이섬. 연인 또는 가족과 함께 많이 가봤을 것이다. 필자는 2002년을 뒤흔들었던 <겨울연가>의 인기에 힘입어 학교에서 단체로 남이섬을 다녀왔다. '욘사마'의 행적을 좇아 일본·중국인 등 외국관광객들로 붐볐던 기억이 난다.

케이블TV에서 방영된 한계를 극복하고 거의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꽃보다 할배>는 효자노선인 '꽃할배 노선'을 탄생시켰다. 전반적인 국제선 항공의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방송에 소개됐던 여행지인 스페인 마드리드, 터키 이스탄불, 대만 타이페이,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등은 탑승객이 부쩍 늘었다. 이른바 '꽃할배 효과'로 방송에 나온 여행지뿐 아니라 유럽노선 전반에서 탑승객이 늘어난 것이다.

'꽃할배 노선'의 탑승률은 90%로 사실상 만석에 가깝다. 지난 1분기 대만노선 탑승객은 전년 대비 13% 늘었고 이스탄불 탑승객은 35%나 증가했다. 직항노선이 없었던 스페인은 여행수요가 크게 늘면서 직항노선이 비정기적으로 개설되기도 했다.


특히 장기침체에 빠졌던 크로아티아의 경우 여행산업이 부쩍 성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지역은 물론 미국이나 아시아 등지의 여행객도 크로아티아로 몰려들고 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크로아티아 GDP의 12.1%를 차지했던 관광산업은 향후 10년간 17.1%로 늘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크로아티아정부도 관광산업이 침체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효자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꽃보다 시리즈' 덕분에 크로아티아가 남유럽의 핫한 여행지로 떠올랐다면 해외에서는 왜 크로아티아가 인기를 끄는 걸까. 2009년 개봉해 화려한 영상과 3D 기술의 결합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아바타>가 한몫 단단히 했다. 영화 <아바타> 속 배경의 모티브가 됐던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이 크로아티아에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세계적인 인기작품이 된 미국 HBO 드라마 <왕자의 게임>도 시즌 2·3이 크로아티아에서 촬영되는 등 이 나라는 콘텐츠업계의 러브콜을 한몸에 받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예전부터 해안낙원이자 문화의 경이로움을 뽐내던 곳이었지만 그 인기가 지금엔 미치지 못했다. 최근 들어 더욱 큰 인기를 끌고 있다니 매체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크로아티아·노르웨이, 영화 한편으로 관광산업 급성장

할리우드 영화의 촬영지가 관광산업의 흥행으로 이어진 경우는 이외에도 많다. 올해의 시작을 'Let it go' 열풍으로 도배했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실제 촬영이 되지는 않았지만 애니메이션 속 왕궁을 닮은 교회가 노르웨이에 위치해 있고,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인 베르겐이 <겨울왕국> 속 '아렌델 왕국'의 배경이 됐다. 노르웨이관광청이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선 가운데 <겨울왕국> 이후 가족단위 관광객이 늘면서 미성년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급증했다.

<겨울왕국> 이후 늘어난 노르웨이 관광수요를 살펴보면 한마디로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지난 1분기 미국인의 노르웨이 관광은 전년 동기대비 37%나 급증했고, 노르웨이로 향하는 비행기편을 검색한 사람은 전세계적으로 무려 154%나 증가했다(Flight Tracker 기준). 노르웨이항공의 오슬로-미국 구간 실제 운항 횟수는 52%의 성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기준 노르웨이 총 국내총생산(GDP)의 6.2%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의 비중은 앞으로 9~10%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우리나라도 각종 대중문화 콘텐츠의 성공과 연계한 관광상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 현지에는 한국의 각종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를 집중적으로 찾아가는 상품도 있다. 지방자치단체별로도 드라마나 영화제작 장소를 지원하며 향후 관광지화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매체에 소개됐던 특정 점포나 촬영지가 나름 외국인의 관심을 끄는 것도 사실이다. 올 봄에 종영한 <별에서 온 그대> 이후 가평의 쁘띠프랑스를 찾는 중국인이 급증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앞서 소개했던 <겨울연가> 등의 인기에 힘입어 장기적으로 상품화된 관광지가 남이섬을 제외하고 없다는 점은 아쉽다. 관광공사 등 정부기관 또는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여행업계나 콘텐츠제작진들도 제작단계부터 로케이션의 활용을 검토한다면 앞으로의 시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판단이다.

CNN은 지난 2012년 '이번 가을에 한국에 가야 하는 여섯가지 이유'라는 흥미로운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한류체험이 당당하게 2위와 4위에 랭크됐다. 콘텐츠와 연계된 관광산업이 가능성 있는 비즈니스라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단순히 쇼핑만 즐기는 관광이 아니라 한류라는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문패키지상품을 더 개발하고 영화나 드라마 제작 때부터 로케이션 상품화를 기획하는 것이 진정한 창조경제가 아닐까.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