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는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공사(한전) 본사 부지가 매물로 나왔다. 한전은 올해 안으로 땅 주인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매각은 최고 땅값을 써낸 업체가 주인이 되는 공개경쟁입찰로 진행 중이다. 막대한 부채 해소를 절대 과제로 안고 있는 한전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이 땅은 축구장 12개 규모(7만9342㎡·2만4000여평)에 작년 장부가액이 2조73억원, 공시지가는 1조4837억원(3.3㎡당 6171만원)이다. 인수전이 가열되면 공시지가보다 2~3배 비싼 3조~4조원 정도는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기아차그룹과 삼성그룹의 2파전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뤼디그룹과 카지노그룹 라스베이거스 샌즈 등 자금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들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까지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현대차밖에 없다. 인수전 참여를 공식화하며 ‘글로벌 비지니스 센터 건립’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대차는 과연 '강남 금밭'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 GBC 건립 '국제거점 시너지' 낼까

현대차그룹은 일사불란하고 신속한 경영상 의사결정을 위해 계열사를 아우르는 통합 컨트롤타워가 절실하지만 양재동 사옥의 수용능력은 한계에 이른 상태다. 서울에 있는 현대차 계열사만 30개, 임직원도 1만8000명에 달하지만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에 입주한 회사는 5개사에 불과하고 근무인원도 5000명이 전부다.

이로 인해 주요 계열사 본사가 외부 빌딩을 임대해 입주해 있고, 현대·기아차 및 현대제철 국내영업본부가 본사와 떨어져 있어 주요 임원이 업무회의 참석을 위해 본사로 이동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한다. 외부 VIP의 본사 방문 시 영접 공간 부족으로 회의실이나 임원 사무실을 이용하는 사례도 많다.


이를 반영하듯 현대차는 한전 부지 인수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룹 본사를 포함한 ‘글로벌 복합단지’로 개발하겠다는 밑그림도 공개했다. 현대차는 한전 부지에 글로벌 5위 완성차업체 위상에 걸맞은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전세계에 포진한 사업장(9개국 31개 공장)과 자동차전문그룹으로서 자동차를 중심으로 수직 계열화돼 있는 그룹사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확보하겠다는 게 현대차의 구상이다.

GBC에 들어설 예정인 다양한 부대시설도 주목된다. 국내 최고 수준의 호텔을 비롯해 ▲대규모 국제회의가 가능한 컨벤션센터 ▲한류체험공간·공연장을 포함한 문화시설 ▲자동차박물관·전시장·체험관을 포함한 자동차 테마파크 ▲백화점과 대형 리테일을 포함한 쇼핑공간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GBC를 명실상부한 국제적 업무·관광·문화 거점으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현대차의 계획이다.

현대차는 GBC가 건립되면 최근 서울시가 코엑스-잠실운동장 일대를 국제업무·전시·컨벤션 중심의 ‘국제교류복합지역’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발표한 청사진과도 맞아떨어져 서울시 계획과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전력 본사 부지 /사진제공=뉴스1

◆ '한국의 아우토슈타트' 조성 기대
현대차는 GBC 건립을 통해 문화와 생활, 컨벤션 기능을 아우르는 ‘랜드마크’를 조성한다는 로드맵까지 세웠다. GBC 내에 글로벌 통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업무시설과 함께 호텔, 컨벤션센터, 자동차 테마파크, 문화 클러스터 등도 포함시킴으로써 GBC를 업무와 문화, 생활, 체험, 컨벤션 등이 조화를 이룬 서울시의 상징적 랜드마크로 조성할 계획인 것이다. 이를 통해 현대차는 브랜드 인지도 제고는 물론 한국의 국가브랜드 위상을 ‘완성차 생산 세계 5위, 수출 세계 3위의 자동차 강국’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 세계시장에서 현대차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폭스바겐, BMW, 메르세데스-벤츠, GM, 도요타 등 세계 유수 자동차업체들은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를 위해 본사 및 인근 공간을 활용해 출고센터, 박물관, 전시장, 체험관 등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폭스바겐 본사와 출고센터, 박물관, 브랜드 전시관 등을 연계해 운영하고 있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아우토슈타트’는 20만명 가까운 외국인을 포함해 연간 250만명의 고객 및 관광객이 방문하는 독일의 대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아우토슈타트는 독일 관광청이 ‘독일 10대 관광명소’ 중 하나로 선정했을 정도다.

본사와 출고센터, 박물관이 콤플렉스 형태를 이루고 있는 독일 뮌헨의 ‘BMW 본사’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벤츠 본사’ 역시 연간 70만명 이상이 들르는 해당 지역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미국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GM 본사’와 일본 토요타의 ‘토요타 본사’ 역시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며 각 사 브랜드 가치 제고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전문그룹인 현대차는 공간적 한계로 인해 글로벌업체들과의 브랜드 가치 경쟁에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처지다. 브랜드 가치 향상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한단계 도약하려는 현대차에게 GBC와 한전 부지는 그만큼 절실하다.

◆ 삼성, 신중 모드… 제3의 후보는?

이처럼 현대차가 삼성동 한전 부지를 품기 위해 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반면 삼성은 사뭇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지난 2008년 이미 서초동에 신사옥을 마련한 만큼 인수전에 무리하게 뛰어들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초동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태평로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이미 자리를 잡아 현대차그룹처럼 절박하지 않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삼성의 과거 행보를 고려할 때 내부적으로 입찰 참여 여부와 기대효과를 검토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인수 후보로는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업체 뤼디그룹과 세계적인 카지노그룹인 라스베이거스 샌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뤼디그룹과 라스베이거스 샌즈의 경우 한전 부지에 카지노 설립을 염두에 둘 것으로 보이지만 허가가 나기 쉽지 않아 이들의 입찰 참여는 불투명하다. 뤼디그룹의 경우 제주도에 관광호텔, 콘도미니엄, 카지노 등이 들어서는 '드림타워' 건설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원희룡 제주지사에 의해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와는 별도로 삼성동에서 코엑스 컨벤션센터를 운영 중인 한국무역협회는 내심 한전 본사 부지 인수전에 참여할 길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직접 인수할 자금은 없지만 인수 희망기업이 컨소시엄 참여를 제안하면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한전 본사 부지를 포함해 코엑스-잠실운동장 일대를 국제업무·마이스(MICE, 회의·관광·컨벤션·전시회) 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에 무협의 의견이 반영된 만큼 명분도 있다는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