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사업재편 행보가 속도전에 돌입했다. 올초 삼성SDI-제일모직, 삼성종합화학-삼성석유화학의 합병을 발표하더니 지난 1일에는 건설분야의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마저 한 회사로 합치기로 했다.
회사간 합병에서부터 개별 사업부문의 타 계열사 흡수 등 지난해부터 전개한 삼성의 사업구조 개편작업이 본 궤도에 오른 형국. 때문에 재계의 관심은 삼성의 멈출 줄 모르는 ‘사업재편 열차’가 과연 어느 시점에서 종착역에 다다를까 하는 것에 쏠린다.
◆삼성重·엔지니어링 합병… 매출 25조 공룡기업 탄생
사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이번 합병 소식은 증권가에서조차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당초 업계에선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과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했다. 삼성물산이 지난해 7월부터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 1년 사이 지분을 7.81%까지 늘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 경영진은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상대로 삼성중공업을 택했다. 육·해상 플랜트 사업의 두 축인 양사를 합병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겠다는 계산에서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1일 이사회를 통해 합병을 결의하고 삼성중공업이 신주를 발행해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1주당 삼성중공업 주식 2.36주를 삼성엔지니어링 주주에게 교부하기로 했다. 합병은 다음달 27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최종 승인된 후 오는 12월 1일 마무리될 예정.
삼성중공업의 사령탑인 박대영 사장은 “양사가 갖춘 생산설비와 제작 경험, 우수한 육·해상 기술인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종합 플랜트 회사로 거듭나겠다”며 적지않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 사장의 바람대로 이번 합병은 삼성그룹 내 플랜트 사업 역량을 한 곳에 모으는 데 의미가 있다. 삼성중공업으로선 삼성엔지니어링의 강점 분야인 설계·구매·프로젝트 관리 능력을 확보해 해양플랜트 사업에서의 성장기반을, 삼성엔지니어링은 삼성중공업의 해양플랜트 제작역량을 보유해 고부가 영역인 육상 LNG와 해양 플랜트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양사는 합병으로 약 25조원(지난해 매출 기준)의 초대형 종합플랜트 회사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물론 이번 합병의 이면에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영향받은 양사의 실적악화가 원인으로 작용한 점도 있다. 실제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0% 이상 추락했으며 올 1분기에도 3625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삼성엔지니어링 역시 올 상반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지난해에만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낸 바 있다.
◆확고해진 경영승계 구도… 이재용-이부진, 어떻게 나뉠까
올 들어 계속되고 있는 삼성의 ‘합병 행보’는 종국에는 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경영권 향배를 명확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간 합병만 해도 단순한 사업적인 시너지 차원을 넘어 경영승계 작업에 가속페달을 밟았다는 해석이 짙다.
결국 1년 사이에 전기·전자(삼성SDI-제일모직)와 화학(삼성종합화학-삼성석유화학), 그리고 이번에 건설 부문까지 계열사 정리가 속속 진행된 셈인데, 특히 재계는 이번 건설 사업체 합병을 통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삼성전자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분기말 기준 삼성중공업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로 17.6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 역시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SDI가 13.10%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다.
따라서 관심은 건설 부문 사업재편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단순한 합병 차원에 그치지 않고 향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건설 부문을 재정비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쏠린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미 이번 합병을 시발점으로 지주회사 격인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과 삼성SDS의 상장 작업, 그리고 삼성생명을 축으로 한 금융 부문의 지배구조 정리 작업도 더 속도를 내지 않겠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삼성SDS는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가 나란히 지분을 가진 기업이고, 제일모직은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으면서 승계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때문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몫이 어떤 선에서 나눠질지가 향후 사업구조 재편의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 계열사와 금융 계열사는 이 부회장 중심 체제로 가는 반면, 건설 부문은 이 사장 몫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다음 정차역, 혹은 종착역은… 건설·화학 통합 완결?
그렇다면 삼성 사업개편 열차의 다음 정차역, 혹은 종착역은 어디일까.
일단 차기 정차역은 그룹 내 건설부문을 한데 모으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삼성물산에서 상사는 남겨둔 채 건설을 분리하고, 제일모직의 건설부문도 따로 떼내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법인과 합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화학 계열사간 사업 조정 가능성도 부각되고 있다. 지난 4월 삼성종합화학이 삼성석유화학을 흡수합병하면서 1차적인 삼성의 화학계열사 사업구조 조정은 마무리됐다. 따라서 남아 있는 삼성정밀화학이 추가로 다른 화학계열사로 흡수되느냐 여부에 재계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이는 삼성정밀화학의 저조한 실적이 반영된 시각이다. 이 회사는 올 들어 2분기 연속 적자로 216억원의 누적 손실을 기록하는 등 실적지표가 썩 좋지 않다.
다만 삼성그룹 측은 이 같은 향후 사업재편 가능성에 대해 "당분간은 추가 사업구조 조정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준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장(전무)은 지난 3일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 상장,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등은 올초 결정된 내용을 순차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향후 계열사 합병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