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다. 전에 미천했던 사람이 이전 일은 생각지 않고 잘난 듯이 행실함을 이르는 말이다. ‘요리왕’이라고 불리는 사내가 있었다. 
방송에서는 그를 ‘최고의 셰프’라고 치켜세웠고,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끊임없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건방진 개구리라고 칭한다. 

이제는 ‘빵이파파’란 닉네임으로 불리길 원한다. 맛집 전문 블로거 빵이파파를 서울 가양동 <맛찬들 왕소금구이>에서 만났다.
▲ 제공=월간 외식경영

◇ 꿈 없던 소년, 하늘색 꿈을 꾸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퇴근길 만원 지하철. 쉴새 없이 쏟아지는 인파 속에 땀으로 샤워할 때면 대폿집에 모여 앉아 시원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모처럼 외식산업에 종사하는 선배를 인터뷰할 생각에 가는 길부터 설 다. 

선배는 맛집 전문 블로거 빵이파파(본명 마경덕)다. 만나자마자 궁금함이 밀려와 ‘외식업에 어떤 경위로 뛰어들었는지?’부터 덜컥 물었다.
“학창시절에는 특별히 꿈이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처럼 성적에 맞춰 대학교를 선택해 진학했죠. 그렇게 지원했던 과가 전자계산과였고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군입대를 했습니다.”

꿈 없던 그에게 군생활은 전환점이었다. 장교식당에 취사병으로 일하게 되면서 음식에 관심이 생겼고 요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 후 아버지의 권유로 전역 후 집과 가까웠던 한국폴리텍대학 조리학과에 입학했다. 

흥미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은 본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른 학우보다 열정적인 그는 63빌딩 연회장에서 일하게 될 기회를 얻었다.


◇ 철 없던 올챙이, 개구리로 옷을 갈아입다
블로거 빵이파파의 글은 누구보다 차분하면서도 솔직하다. 자신만의 관점을 신중하게 풀어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요리를 갓 시작한 그때도 지금과 같았는지 궁금했다.

“연회장에서 일할 때만 해도 혈기가 가득 차 지금과는 달랐어요. 한식, 중식, 일식과 양식을 모두 배울 수 있었던 환경임에도 전문성을 연마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해 그 당시 부장님께 찾아가 한식 전문점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주변에선 말단사원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행동하느냐며 타일렀죠. 지금 같아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

하지만 철없던 당당함이 되려 전화위복으로 돼 그는 당시 <삼원가든>, <명월관>과 함께 손꼽히는 한식당이었던 63빌딩의 <루프가든>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누구보다 뛰어난 집중력으로 탕부, 냉면부를 거쳐 육부장과 조리장의 자리를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러자 점차 주변에서 인정해주기 시작했고 더 좋은 기회를 추천해줬다. 요리 경력에 방점을 찍은 것은 SBS에서 방송된 ‘결정! 맛대맛’이었다. 한식 조리장으로 진출해 한식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하더니 급기야 왕중왕전에서 ‘연저육찜’을 멋지게 내놓으며 쟁쟁한 다른 유명 셰프들을 제치고 요리왕에 등극했다. 그가 요리왕 마경덕으로 불리게 된 이유다.


◇ 겁 없던 개구리, 우물 속에 갇히다
방송과 함께 높아진 유명세와 끊이지 않는 박수갈채는 오히려 귀를 어둡게 했다. 무엇을 해도 성공할 것만 같았다. 능력 있는 30대 조리장의 자신감은 십 수년간 머물렀던 직장의 사직서를 가볍게 만들었다. 그러자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브레이크가 걸렸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판매했던 홈쇼핑 사업도 녹록지 않았다. 요리왕 마경덕이라는 타이틀로 방송도 제법 했지만 성에 차지는 않았다. 그 사이 본업인 요리에서 점점 멀어졌고 외식이란 새로운 틀을 맞이했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것도 이때쯤이다.

“요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서 블로그를 하게 됐죠. 요리만 하면서 살았던 터라 셰프로서 처음에는 블로거의 존재는 달갑진 않았어요. 프로도 아니고 그 정도 깊이도 없는데 음식에 대해 쉽게 평가하는 모습이 유쾌하진 않았죠. 지금도 셰프 중 블로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제법 있습니다.”

셰프의 마음을 잘 알고 있던 그이기에 블로거 인터뷰를 처음 요청했을 때 고사했다. 일상을 기록하고 자신만의 외식노트 활용이 목적이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 요리왕 마경덕, 미래를 꿈꾼다
블로거 빵이파파는 “블로그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넓어진 시야”라고 말한다. 주방에 들어가 요리할 때 만나지 못한 세상을 직접 찾아서 맛볼 시간이 많아졌다. 게다가 이전보다 가정이 더 화목해졌다고 말하며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주말에도 일해야 했던 그땐 맞벌이로 일하던 아내와 데이트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말마다 사랑하는 아내와 어디로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지 고민하는 모습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요리사로서 꿈을 저버린 것은 아니다. 현재 창업 아카데미에서 조리교육을 하는 강사인 그는 언젠가 자기 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꿈꾼다고 한다. 단, 임차료를 내지 않는 조건하에서 말이다. 

임차료와 식재료를 아끼고 원가율을 계산하며 장사하기보다는 푸짐하게 요리를 내어주고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방문해 편하게 쉬고 즐기다 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는 포지션은 달라졌지만 마흔네 살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한 우물을 파고 있다. 우물 밖 또 다른 세계란 꿈을 꾸면 여전히 가슴 설렌다는 그의 도움닫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