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하나금융지주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으로 자리를 옮겨 증권부장과 영업부장, 상무, 전무, 부사장에 이르기까지 금융의 전반적인 업무를 경험했다. 당시 단자회사에 불과했던 한국투자금융은 1991년 제1금융권으로 승격, 하나은행으로 이름을 바꿨고 김 이사장은 6년 만에 은행장에 올랐다. 그의 나이 54세 때다.
인수합병(M&A)을 통해 승부사 기질을 본격 발휘한 것도 이때부터다. 1998년 충청은행을 시작으로 1999년 보람은행, 2002년 서울은행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줄줄이 하나은행에 인수됐다. 작은 단자회사였던 하나은행을 4대 은행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는 은퇴 전까지 승부사 기질을 놓지 않았다. 국내 굴지의 금융지주사들이 껴안으려다 번번이 실패한 외환은행을 품는 데 성공했다. 그는 당시 해외로 직접 달려가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 경영진과 담판 짓는 데 성공했다. 2010년도의 일이다.
물론 M&A 과정에서 숱한 논란도 불거졌다. 하지만 김승유 이사장이 금융 역사에 수많은 페이지를 장식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바로 교육자로서의 삶이다. 금융과는 조금 다른 분야지만 그는 하나금융 회장에서 은퇴한 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오랜 꿈인 교육자로 옷을 갈아 입었다. 아시아 금융벨트 구축을 강조하던 그가 이제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학교 축구장 넓이를 고민하고, 자기주도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립형사립고등학교 폐지 논란이 불거질 땐 전면에 나서 자사고 입장을 대변했다.
이 역시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그가 처음 하나고등학교를 설립한다고 할 때 금융권에선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은퇴준비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역시 김승유였다. 기존과는 다른 교육방식과 커리큘럼으로 하나고를 단숨에 명문고로 부상시켜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지난 2012년 수험생 중 절반 이상이 명문대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최고 명문학교로 꼽히는 민족사관고와 대일외고를 뛰어넘은 것. 하나고 개교 4년 만의 일이다.
이제는 그를 금융그룹 회장보다는 하나고 이사장으로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다고 금융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중국민생은행 고문을 맡아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최근에도 수차례 중국을 오가며 한중 가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국내 금융사들이 중국에 진출할 때 김 이사장이 윤활유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머니위크>는 창간 7주년을 맞아 금융권에서 한 획을 그은 김승유 이사장을 만나 국내 금융산업의 문제점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 현재 한국 금융산업은 저성장·저금리의 덫에 걸려 위기를 맞고 있다. 문제는 이 위기를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부(금융당국)가 금융을 기업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은 1960~1970년대까지 금융기관으로 불렸다. 이후 80년대 미국을 시작으로 금융산업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금융도 기업이라는 인식이 점차 퍼지기 시작한 때다. 그런데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정부가 다시 금융업에 개입하면서 금융산업이 퇴색됐다. 은행은 서로간 경쟁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익을 내는 것이 성장의 발판인데 최근 이 같은 움직임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다. 정부의 개입으로 금융시장이 균일화 돼 (위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행동한다는 의미다. 업무능력이 떨어지면 금융발전이 저하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 정부가 개입한 것 중 어떤 점이 잘못됐다고 보는가.
▶은행에 대해 판단할 때 과정보다 결론이 우선시되면 안된다. 기본적으로 은행은 이자(예대마진)를 통해 수익을 낸다. 이자는 크레딧(신용)과 미래의 불확실성, 금리 및 환율 등을 포함한 리스크의 대가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정부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개입하고 있다. 의사결정 과정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따져야지 어떤 결과만 가지고 문제제기를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파생상품을 예로 들어보자. 파생상품이 시장에서 과열조짐을 보이면 투기세력을 잡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파생상품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접근이) 금융을 과거로 회귀하게 하고 발전을 저해시킨다고 생각한다. (금융당국이 먼저) 금융산업에 대한 명확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은 지나치게 일본 모델을 따라가는 것 같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A은행이 신상품을 만들면 B, C, D은행이 똑같은 상품을 내놓는 식이다. 정부가 이를 적절하게 분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금융당국이 파생상품 등 새로운 금융상품을 계속 개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은행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내가 은행에 처음 입행할 땐 다른 은행과 연계가 되지 않았다. A은행 통장을 발급받으면 그 은행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모든 은행이 서로 인터넷뱅킹을 통해 온라인 계좌를 주고받고 심지어 중국의 알리바바, 텐센트 등 유통통신과 금융이 섞이고 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은행의 계좌와 프라이빗뱅킹 등으로 거액 자산가의 자금을 흡수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흐름은 더 빠르게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국내은행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은행의 최대수익은 결제수단이다. 그 결제수단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5~10년 후 무엇을 할지 지금 생각하지 않으면 은행은 살아남을 자리가 없다. 은행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한다.
- 국내 시중은행이 포화상태인 국내에만 머물지 말고 글로벌은행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은데.
▶동아시아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예전에 파키스탄 진출 경로를 알아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와 법체계가 달라 포기했다. 사실 아프리카, 미얀마, 남아공은 영국이 금융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미얀마는 영국의 법체계를 그대로 적용해 국내은행이 뚫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은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이다. 더 길게 본다면 만주, 동북 3성까지 고민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들 국가의 인구만 해도 수요가 엄청나다. 동아시아 벨트라는 용어를 내가 만들었는데 이러한 수요를 분석한 후 제시한 전략이다. 그 이상은 사실 자신하기 힘들다. 그나마 캐나다는 현지에 있는 교민들만 공략해도 수요를 맞출 수 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하나의 국가로 보면 안된다. 허난성이나 광둥성 인구만 1억명에 달한다. 남북한을 합친 인구보다 많다.
- 글로벌시장에 진출한 후 어떤 전략으로 가야 할까.
▶철저한 현지화가 필요하다. 리테일영업은 고객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마음을 잡으려면 사고방식도 같아야 한다. 하나금융 회장일 때 인도네시아 지점 직원들에게 모두 콧수염을 기르라고 지시했다. 콧수염이 없으면 현지인들이 미성년자로 보고 무시할 수 있어서다. 또 중국에 가면 공산당과 잘 협력하라고 얘기한다. 상대의 문화와 마음을 이해한 후 현지화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 중국민생은행 고문을 맡아 중국을 자주 드나든다고 들었다. 중국에 대해 느낀 점이 많을 것 같은데.
▶한마디로 무서운 나라다. 공산주의체제로 자본시장을 개방하면서 자기가 일한 대가를 가져간다는 것에 굉장한 에너지를 받는 것 같다. 대가가 확실하다보니 항상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중국민생은행의 경우 규모가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 그런데 은행장이 72년생(42세)이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지만 머리가 좋더라. 은행 내에 젊은층이 많아 충분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본다. 이처럼 중국은 능력이 있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받아들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 중국의 교육열은 어떤가.
▶우리나라보다 더 치열하다. 7~8세 아이들이 중국 한자 2000자를 뗀다. 옛날 우리나라에선 10살짜리가 천자문을 외워도 천재라는 말을 들었는데….(웃음) 여기에 수학과 영어 등 과외열풍도 불고 있다. 시장도 넓다. 게다가 상하이와 광저우, 베이징, 선전, 광둥성의 국내총생산(GDP)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다. 물론 단점도 있다. 빈부격차가 크고 부동산 버블이 심하다. 또 지역감정이 우리나라보다 더 심하고 개인플레이가 강하다. 특히 서비스 정신을 높여야 한다. 다만 부동산 버블이나 지역감정 등은 중국정부가 발 벗고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어 개선될지 지켜봐야 한다.
- 하나고로 화제를 바꿔보자. 한마디로 요즘 '핫'하다. 어떻게 운영하는지 소개해달라.
▶학교부지는 2만6446㎡(8000평)로 정원은 학년당 200명이다.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우리는 이겨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페어플레이를 중시한다. 오후 4시30분에 수업을 끝내고 저녁을 먹기 전인 6시30분까지 체육활동을 시킨다. 협동을 통해 단결심을 키우는 게 학습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주말에는 봉사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1인당 2가지의 악기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특히 과외나 학원에 다니지 못하도록 한달에 한번만 집으로 보낸다. 학습은 자기주도학습을 지향한다. 누가 시켜서 공부하는 것과 스스로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 단기간에 명문고로 급부상했는데 비결이 무엇인가.
▶어렸을 때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구세군냄비에 1000원이라도 넣도록 가르쳐야 한다. 내가 교육사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그리고 아이들을 믿는다. 하나고는 학생들이 스스로 의사, 변호사, PD 등을 섭외해 강의도 듣고 토론하면서 장래 진로계획을 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기자신을 표현할 줄 알게 되고 스스로 목표를 잡을 수 있게 된다.
☞프로필
▲1943년 충북 진천 출생 ▲1961년 경기고 졸업 ▲1965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65년 한일은행 입행 ▲1971년 한국투자금융 입사 ▲1976년 한국투자금융 증권부장 ▲1980년 한국투자금융 부사장 ▲1991년 하나은행 전무 ▲1997년 하나은행장 ▲2005년 하나금융지주 회장 ▲2012년 하나고 이사장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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