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심각한 문제는 전사자 중에 당시 집정관이었던 아이밀리우스와 전투에 참여했던 원로원 80명도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지도자 그리고 국회의원 중 1/3가량을 갑자기 잃은 셈이다. 이제 로마에게는 치욕스런 항복이나 처참한 종말만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쟁은 금방 끝나지 않았다. 무려 14년이나 지속됐으며 모두가 알고 있듯이 로마의 승리로 끝이 났다. 과연 로마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세계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일까. 신간 <강자의 조건>을 통해 그 궁금증을 풀어보자.
칸나이 전투가 끝난 후 한니발 휘하의 장수인 마하발은 당장 로마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니발은 이를 거절했다. 로마의 패배가 확실해졌기 때문에 로마의 동맹국들도 등을 돌리게 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로마도 항복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한니발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로마는 한니발 군대의 우위를 인정하고 정면승부를 피한 채 지연작전을 펼쳤다.
지연작전이 가능했던 것은 한니발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로마를 배신하지 않고 버텨준 동맹국들 덕분이었다. 이탈리아 중남부의 큰 도시였던 카푸아와 주변의 소도시 몇개를 제외한 다른 동맹국들은 로마를 배신하지 않았다.
한니발이 이렇다 할 승전을 거두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동안 로마군은 점점 더 단련됐고 마침내 한니발에 대적할 만한 천재가 등장했다.칸나이 전투 당시 19세의 나이로 참혹한 패배를 경험했던 스키피오였다. 한니발의 전술을 모두 습득한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와 일전을 벌였고 결국 힘겹게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 결과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게 됐고 카르타고는 속국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동맹국들이 로마를 배신하지 않았던 이유는 로마의 개방적인 통합정책에 있다. 로마에 새로운 이민족이 합병될 때마다 귀족들은 로마 귀족이 돼 원로원 의석을 보장받았고 평민들은 로마 시민이 돼 투표권을 행사하게 됐다. 그래서 후대에 로마를 이끈 사람들은 대부분 순수 로마인이 아니라 이민족 출신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로마와 대비되는 것이 아테네다. 아테네도 초기에는 재능 있는 외국인들에게 시민권을 나눠주고 아테네에 동화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패권국가로 성장하자 시민권을 폐쇄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부모가 모두 시민권자가 아니면 아테네 시민이 될 수 없게 한 것이다. 더불어 이방인들에게는 가혹하게 굴기 시작했다. 동맹국을 핍박하고 반발하면 가차없이 응징했던 것이다. 결국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대규모 전투에서 패하자 순식간에 붕괴하고 만다. <강자의 조건>에서는 로마와 아테네의 성패를 가른 것이 바로 개방성과 포용성이며, 이것들이 강자들의 공통적인 성공요인이자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이주희 지음 | MID 펴냄 | 1만6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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