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거리(格力)전기 둥밍주(董明珠) 회장(61).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에어컨 외판원으로 시작해 세계 최대 에어컨 제조회사 거리전기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중국 젊은 여성직장인들의 롤 모델이기도 하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내던 그녀는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말단 영업사원으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회사 전체 매출의 8분의 1에 달하는 에어컨을 혼자서 판매할 정도의 독보적인 영업실적으로 CEO 자리까지 올라 ‘철의 여인’으로도 불린다.


그런 그녀가 경영외적인 이유로 화제에 올랐다. 스마트폰업체 샤오미 돌풍의 주인공 레이쥔(雷軍) 회장(46)과의 대결이 바로 그것이다. 레이쥔은 공식석상에 나설 때면 청바지에 까만색 셔츠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어 ‘레이잡스’(중국의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둥밍주(董明珠) 회장 /사진=신화사, 뉴시스 제공

 
◆ 5년 후 매출 놓고 10억위안 내기
나이, 재계 서열 등에서 비교가 안되는 두 사람의 악연은 지난해 12월 ‘2013 CCTV 올해의 경제인물’ 시상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상식에서 레이쥔은 옆자리의 둥밍주를 보고 “향후 5년이면 샤오미 매출이 거리전기를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 섞인 말을 건넸다.

샤오미의 매출이 지난 2012년 기준으로 265억8300만위안(약 4조6520억원)으로 거리전기 매출 1200억위안(21조원)의 4분의 1에 불과해 레이의 주장은 도발에 가까웠다.

레이쥔이 하도 자신 있게 얘기하자 사회자는 돈을 걸 수 있을지를 물었고 이렇게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내기의 판돈이 무려 10억위안(1750억원)에 달했다. 둥밍주 역시 5년 후 매출액을 둔 10억위안 내기를 승락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달린 두 CEO의 내기가 중국인 사이에 화제가 된 것은 당연했다.


40대 CEO의 과도한 패기 정도로 보였던 이 내기는 올해 샤오미가 중국 스마트폰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3위로 올라서는 돌풍을 일으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 IT업계 거물로 급부상한 레이 회장은 지난 10월 한 행사에서 “샤오미의 매출이 올해 800억위안을 돌파하는 등 고속성장을 거듭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둥밍주 회장과의 내기에서 내가 이길 확률은 99.99%”, “샤오미의 승리는 역사발전의 필연” 등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인터넷이라는 날개를 달고 신흥산업의 성장세를 대표하는 샤오미가 중국 전통 제조업을 대표하는 거리전기를 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점잖게 대응하던 둥 회장도 발끈했다. 그는 “에어컨 제조업을 전통산업으로 보고 성장정체 위기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창조, 혁신으로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거리전기 매출이 한계에 달했다는 말은 이미 10년 전부터 나온 말이지만 거리는 끊임없이 매출을 늘렸다”며 레이쥔과의 내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맞대응했다.

레이쥔의 도발에 마음이 상했던 둥 회장은 최근 반격에 나섰다. 샤오미와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의 전략적 제휴를 ‘사기꾼과 좀도둑의 제휴’로 폄하한 것. 지난 12월14일 샤오미는 중국 가전시장에서 하이얼과 시장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메이디 지분 1.29%를 12억6600만위안(약 2215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양사 제휴는 TV, 에어컨, 냉장고 등을 통신망으로 제어하는 스마트홈 사업진출을 위한 포석이다.

메이디의 경쟁업체 CEO 자격으로 양사 제휴에 대한 평가를 요청받은 둥 회장은 에어컨 과장광고를 한 메이디를 ‘사기꾼’으로, 인도에서 특허침해로 판매가 중단된 샤오미를 ‘좀도둑’으로 폄하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특히 샤오미를 겨냥해 “나라 밖으로 나가자마자 주저앉은 것은 레이쥔 회장이 타인의 특허를 훔쳤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레이 회장은 “둥 회장의 민감한 반응은 스스로 내기 패배를 인정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레이쥔(雷軍) 회장 /사진=신화사, 뉴시스 제공

 
◆ ‘구체제 vs 신체제’ 격돌
이처럼 두 CEO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CEO 간 대립은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50)과 왕젠린(王健林) 다롄완다 회장(60)이 원조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과 부동산개발회사 오너로 최고 갑부 1, 2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두 사람은 지난 2012년 'CCTV 올해의 경제인물' 시상식에서 전자상거래의 전통유통시장 대체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오는 2020년까지 온라인쇼핑 비중이 전체 유통시장의 50%를 돌파할 수 있을지를 두고 1억위안(175억)짜리 내기를 걸었다.

중국 온라인매출 비중이 10%도 안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윈의 패배가 명백하다. 하지만 알리바바가 올해 11월11일 광쿤제(光棍節·솔로데이) 할인행사에서 하루 동안 571억위안(약 10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을 보면 50%가 단순한 몽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부를 주체하지 못한 갑부들의 장난스런 내기로 볼 수도 있지만 중국에서는 이들 4명의 CEO가 벌이는 내기를 ‘전통제조업 대 신흥산업’, 혹은 ‘구체제 대 신체제’의 격돌이라는 관점에서 주목한다.

당사자들도 전의를 불태운다. 마윈 회장은 “이번 내기에서 왕 회장이 이긴다면 2020년에도 부동산투자가 만연할 것이라는 의미이고 중국사회가 패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이쥔도 “샤오미의 꿈은 전세계인이 중국제 첨단제품을 사용하고 한국의 삼성처럼 중국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며 신흥산업을 대표하는 샤오미의 승리에 의미를 부여했다.

마윈과 레이쥔은 전통제조업 혹은 구체제에 자극을 줬다는 점에서 중국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실제로 부동산개발에 주력하던 왕젠린 회장은 최근 마윈의 라이벌인 리옌훙 바이두 회장, 마화텅 텅쉰 회장과 손잡고 50억위안(약 8750억원) 규모의 전자상거래 합작사를 만들었다. ‘알리바바 왕국’에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저성장·저소비·고실업으로 대표되는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으로서는 이처럼 역동적인 CEO간 대립구도가 부럽기만 하다. 한국에서도 삼성전자, 현대차를 위협할 마윈, 레이쥔과 같은 젊은 기업가가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