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휘지의 서명. 이 간단한 동작에는 한 사람의 ‘존재’를 남기고 증명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서명을 뜻하는 ‘시그니처’(Signature)란 말은 아무 곳에나 붙을 수 없고 존재를 대변할 만한 가치를 지닌 대상을 수식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명품브랜드의 ‘시그니처 아이템’이 그러하다. 수많은 제품 가운데에서도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이 가장 잘 담겨 있는, 브랜드의 얼굴과 같은 아이템인 것이다.
시그니처 아이템은 브랜드와 역사를 같이 하거나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인 경우가 많고 브랜드가 진보 중인지 퇴보하고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트렌드를 이끄는 내로라하는 명품브랜드의 중심에는 꾸준히 진화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이 있다.
시그니처 아이템은 브랜드와 역사를 같이 하거나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인 경우가 많고 브랜드가 진보 중인지 퇴보하고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트렌드를 이끄는 내로라하는 명품브랜드의 중심에는 꾸준히 진화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이 있다.
◆설화수 윤조에센스, '아시아의 美' 되다
설화수는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대표 화장품브랜드이자 세계 최초의 한방 화장품브랜드다. 지난 1997년 출시된 설화수의 ‘윤조에센스’는 세계 최초 한방 부스팅 에센스로서 설화수 브랜드 역사와 함께한 제품이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설화수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출시된 이래 18년 동안 한번도 베스트셀러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국내 뷰티 제품 최초로 단일 제품 누적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인기 비결은 바로 1세대부터 지금까지 혁신을 거듭한 '진화'다. 그리고 지난 4월28일 4세대 윤조에센스가 출시됐다. 설화수를 사랑하는 세계 여성들에게 ‘윤의 절정’이라고 표현할 만한 피부의 윤택함을 선사하기 위해 핵심 원료인 자음단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것.
뿐만 아니라 전통의 미를 계승하는 브랜드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유지하되 더욱 젊고 세련된 감각을 부여한 디자인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설화수가 한국을 넘어 세계에 아시아의 미를 전파하는 뷰티브랜드이자 글로벌 럭셔리브랜드로 성장한 데는 브랜드의 이미지와 철학을 대변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인 윤조에센스의 혁신이 있는 것이다.
◆'모노그램', 162년 루이비통을 현재형으로
162년 역사의 글로벌 명품브랜드 루이비통의 시그니처 아이템은 ‘모노그램’이다. 지난 1896년 창립자 루이 비통의 아들인 조지 비통은 아버지의 이름 첫 글자를 조합하고 별과 꽃 도형으로 장식한 패턴을 개발했다.
골교질로 방수 처리한 캔버스 소재의 여행가방에 이 패턴을 입혔는데 이것이 루이비통 모노그램의 시작이다. 이후 모노그램은 루이비통과 함께 성장하며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모노그램은 루이비통의 전통 그 자체지만, 틀을 깬 변화를 시도해 패션하우스의 화석과 같은 루이비통을 가장 앞선 감각으로 또 패션업계를 선도하는 브랜드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 1997년 루이비통은 마크 제이콥스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고, 그는 콜라보레이션이라는 개념조차 낯선 시기에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진행해 모노그램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스티븐 스프라우스부터 시작된 협업은 무라카미 다카시, 리차드 프린스, 레이 가와쿠보 등으로 이어졌고 콜라보레이션으로 재탄생한 모노그램은 우수한 품질과 전통에 파격을 가미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젊어진 트렌치코트, '버버리'가 부활하다
‘크리넥스’가 화장지를 지칭하는 말이 된 것처럼 ‘버버리’는 트렌치코트의 대명사다. 159년 역사의 영국 패션브랜드 버버리를 대표하는 아이템이 트렌치코트이기도 하다.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1890년대 창립자 토머스 버버리가 개발한 개버딘 소재의 레인코트로부터 시작됐다.
버버리의 개버딘 레인코트는 방수성·내구성·보온성을 갖춰 보어전쟁 당시 영국군의 공식 방수복으로 채택됐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군은 물론 연합군까지 두루 애용했다. 전장에서 각광을 받자 버버리의 레인코트는 참호를 뜻하는 '트렌치'코트라는 명칭을 얻게 됐다.
그리고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가 외출할 때마다 “내 버버리를 가져오게”라고 말했을 정도로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아끼면서 버버리라는 브랜드와 시그니처 아이템인 트렌치코트는 명품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그러나 영국의 전통만을 강조하던 버버리는 차츰 고루하고 나이 든 사람이 선호하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면서 패션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잊혀졌다. 타개책 마련을 위해 버버리는 지난 2001년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했다. 베일은 컬렉션 라인인 버버리 프로섬을 론칭하며 버버리 부활에 시동을 걸었다.
그가 트렌치코트를 중심으로 전통은 살리되 소재와 디자인에 젊은 감각과 실험 정신을 더하는 작업을 전개한 덕분에 경쾌하게 변신한 트렌치코트는 버버리브랜드 재기의 원동력이 됐다.
◆전통의 가치 담은 '포르쉐 911'의 질주
스포츠카의 명가 포르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자동차공학자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가 지난 193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설립한 포르쉐 엔지니어링 오피스에서 시작됐다.
페르디난트 박사의 아들 페리는 포르쉐를 독립적인 자동차회사로 만들었고, 그의 주도 아래 포르쉐 최초의 스포츠카 356이 탄생했다. 뒤이어 페리는 자신의 아들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와 함께 강력하고 넓은 실내 공간을 가진 356 후속 모델 개발에 나서 지난 1963년 포르쉐의 시그니처 모델인 911을 출시했다.
출시 후 50여년 동안 전세계인이 선망하는 스포차카로 자리잡은 911은 1세대 모델의 핵심을 전통으로 계승했다. ‘개구리 눈’이란 별칭으로 알려진 동그란 헤드램프와 차 지붕부터 뒤쪽 끝까지 완만하게 경사진 ‘패스트백 보디’ 디자인, 6기통 수평대향(피스톤이 수평으로 왕복운동) 엔진과 후륜구동 방식이 그 예다.
포르쉐는 ‘전통과 혁신’이라는 브랜드 가치에 기반해 911의 전통에 끊임없이 기술적·디자인적 혁신을 시도하며 명차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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