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집밥은 집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집 나온 밥은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외식시장은 커졌고 집밥은 간소해졌다. 빠른 시간 내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겨 고픈 배를 채우면 그만이었다. 한때는 그게 이상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다시 집밥을 그리워한다. 미디어는 이러한 심리를 반영해 다양한 ‘집밥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후 집밥 신드롬이 일었다. 집밥을 담은 콘텐츠는 인터넷방송에서 시작됐다. 방송가는 음식 콘텐츠에 재미라는 양념을 버무려 시청자가 집밥을 갈망하게 만들었고 음식콘텐츠는 다양한 형식으로 프로그램에 녹아들었다.
◆ 예능 양념 친 ‘쿡방’… 집밥 트렌드 견인
집에서 밥해 먹는 인구가 줄었다. 보건복지부가 국민 7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013년 기준 일주일 평일 5일 가운데 이틀 이상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는 비율은 64%에 그쳤다. 76%였던 지난 2005년보다 12%포인트 급락했다. 자연스레 외식이나 간편식 위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는 식습관이 보편화 됐다.
이는 맞벌이가 많아지고 1인 가구가 늘어난 탓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00년 15.5%에 그쳤던 국내 1인 가구 비율은 2010년 23.9%로 급증했다. 올해에는 25%를 넘어서고 2025년 이후에는 30%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네가구 중 한가구는 혼자 산다는 얘기다.
또 국토교통부가 결혼 5년 이하 신혼부부 2677쌍을 대상으로 지난해 신혼부부 가구주거실태 를 조사한 결과 10쌍 중 4쌍은 맞벌이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끼리도 한 식탁에 둘러앉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외로운 도시인들이 건강하고 따뜻한 집밥을 그리워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TV에서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면 넘기던 채널을 멈추고 입맛을 다신다. 어느새 ‘먹방’(먹는 방송) ‘쿡방’(요리하는 방송)이 현대 도시인의 심리적 허기를 채워주는 수단이 됐다.
먹방이라는 말은 지난 2009년 인터넷 개인방송의 BJ(브로드캐스팅 자키)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방송한 데서 통용됐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시도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비싼 음식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을 복스럽게 먹는 BJ를 보며 누리꾼들은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BJ가 치킨, 피자 등을 시켜먹거나 계란과 간장을 넣어 밥을 비벼먹고 김에 밥을 싸먹기만 해도 누리꾼들은 열광했다.
먹방에 쿡방까지 떠오르면서 스타 BJ도 생겨났다. 하얀 주방장 의상 대신 군복을 입고 직접 요리를 해먹는 BJ 비룡은 현실감 있는 쿡방으로 인기를 끌었다. 떡을 튀기다 기름이 튀자 소리를 지르며 싱크대 아래로 숨어버리는 동영상은 5만명이 넘게 시청했다. 한동안 인터넷에서는 먹방과 쿡방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결정적으로 먹방을 널리 알린 주인공은 배우 하정우다. 그가 영화 <황해>에서 국밥, 핫바, 감자, 김 등을 화끈하게 입에 욱여넣는 장면은 보는 이의 식욕을 자극했다. MBC TV의 <아빠 어디가>에 출연한 꼬마스타 윤후도 먹방 열풍에 불을 지폈다. 윤후가 오물오물 라면을 흡입하는 장면이 화제를 모으면서 해당 라면 판매업체는 매출 상승효과를 누렸다.
물론 오래 전부터 음식과 요리라는 콘텐츠는 고정 시청층을 확보한 알짜 소재였다. 1990년대 SBS 예능 <이홍렬쇼>는 토크와 요리를 결합한 ‘참참참’ 코너를 만들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KBS <이정섭의 요리쇼>에서 배우 이정섭은 여자 뺨치는 말솜씨와 요리실력을 자랑하며 ‘챔기름 두 방울’이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되면서 요리프로그램은 점차 사라졌다. 특히 외식문화와 배달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요리프로그램은 더욱 변방으로 밀려났다.
최근의 음식 관련 방송은 과거의 요리프로그램과는 확연히 다르다. 기존 요리프로그램이 여성 요리연구가가 나와 요리의 정석과 비법·레시피 정보를 알려주는 식이었다면 요즘 방송은 요리과정에 웃음과 재미를 넣어 집밥 열풍을 견인한다. 요리하고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도통 만족하지 못하는 시청자를 끌어내기 위해 조리과정을 예능으로 풀어낸 것이다.
특히 tvN <삼시세끼> 시리즈는 밥 짓기 노동의 고단함을 프로그램에 자연스레 녹였다. 아침 먹고 설거지하면 바로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 하루 세끼의 굴레를 보여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 한그릇은 따뜻한 아날로그적 정서를 건드렸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기존 요리프로그램 형식을 비틀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케이스. 스타들이 자신의 집 냉장고를 직접 스튜디오로 가져오면 셰프들이 그 안에 있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대결을 벌이는 방식의 프로그램이다. 주방에서 묵묵히 요리만 하던 셰프들이 미디어의 조명을 받으며 연예인급 인기를 얻었다.
◆ 집밥 열풍 배경, 식구에 대한 그리움
전문가들은 집밥 열풍이 현대인의 외로움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해석한다. 일상에서 채워지지 않는 삶의 허기가 집밥 트렌드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현대인들은 생존경쟁 속에 요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의탁하며 살다보니 음식에 대한 불안함이 내재돼 있다”며 “요리방송을 보며 현실의 결핍감을 충족시키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리하고 먹는 방송의 인기몰이에는 사회불안, 가족해체 등 사회·심리적 요인도 작용한다”며 “남을 이겨야 생존할 수 있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보살핌을 받고 싶어하는 소망이 반영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