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비움의 자리에 어느덧 새로운 생명이 그 자리를 채운다. 어찌 꽃의 떨어짐이 떨어지므로 끝나는 일이겠는가? 자신이 비운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이 사실 앞에, 어찌 꽃의 떨어짐을 단순히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밑으로 내려오는 힘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새로운 변화를 이루게 하는 사랑이다. 사랑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는 것.
최근 환자의 삶과 생명 그리고 죽음의 질을 고려한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즉 ‘삶과 죽음의 질’의 문제 즉 한 인간의 ‘존엄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중단’이 시행되어야만 ‘삶과 죽음의 질’의 문제가 향상된다고 보는 듯하다.
과연 ‘삶과 죽음의 질’의 문제가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중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최근 대통령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에서 소수 사람이 모인 가운데 형식적으로 치러진 소위 국민공청회를 거쳐서 마련한 ‘연명의료중단’ 입법화 문제가 이제 국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연명의료중단’이 함유한 원래의 의미와 방향이 그 본질과 전혀 다르게 생뚱맞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유독 필자만 느끼는 것일까? 생명은 절대자가 개인에게 부여한 것이며 그 누구도 침해하거나 해악을 끼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제 삼자가 그 생명을 대상으로 어떠한 행위와 결정을 한다고 할 때(의료적 행위를 포함)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서 환자의 자율적 선택과 의사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 사전의료의향서에 기초한 ‘연명의료중단’의 의미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운동과 무의미한 ‘연명의료중단’ 결정은 과연 이러한 본질적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한국에서의 ‘연명의료중단’ 결정은 환자의 자아존중감에 의한 자율적 선택과는 사뭇 거리가 먼 듯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이 환자의 가치관과 신념에 의한 순수한 자기결정권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가족의 재정적 부담)에 의해 강요되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의 많은 부모의 삶이 대부분 자기중심적 삶이라기보다는 자식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분들이라는 전통 문화적 훈습을 고려한다면, ‘자아존중감에 의한 자기결정권’이라는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의 홍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지레짐작할 수 있다.
둘째 무의미한 ‘연명의료중단’ 결정이 국민연금기금의 고갈과 현 정부의 보편적 복지실현의 공약과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즉 환자의 순수한 고통과 무의미한 치료를 고려하기보다는, 복지기금의 효율적인 쓰임과 소모를 줄이겠다는 물질적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능적 공리주의 입장에 기초해있다는 점이다.
과연 환자의 남은 생명을, 효율성과 기능적 이익의 극대화로 환원될 수 있는 사안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삶과 죽음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사전의료의향서 작성’과 무의미한 ‘연명의료중단’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필자는 다음의 사항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언제가 국가보건산업정책의 하나로 반드시 실천해야 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제표준 죽음교육의 실천이다. 삶은 상실의 연속이다. 죽음도 그 상실 과정의 한 부분이다. 죽음에 따른 슬픔과 분노· 절망 · 우울의 감정이 환자와 가족 사이에 화해되지 않는다면 진정 품위 있는 존엄사에 이르게 할 수 없다.
호스피스 철학이 추구하는 평온하고 품위 있는 죽음, 그리고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주체적인 죽음 맞이는 죽음교육전문가(싸나토로지스트)에 의한 죽음교육으로 가능하다.
둘째, 인간의 품위 있는 존엄사의 문제를 무의미한 ‘연명의료중단’의 범주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죽어가는 환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귀담아 들어 그것을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 존엄사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사전의료의향서’의 근본정신은 연명의료중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일상적 삶의 소중한 부분을 발견하고 누리는 것’에 있다. 지금까지 의학은 환자를 질병 치료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탓에, 환자의 남아 있는 생명과 삶의 질 · 인간관계의 회복과 화해 · 감정치유와 자아완성 등의 문제에 대해서 등한시해온 경향이 있다. 이것을 확보해달라는 것이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의 근본 취지이다.
환자의 존엄사의 문제 해결은 연명의료중단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환자의 가장 큰 공포와 불안, 고통이 혼자라는 생각 · 버림받았다는 생각 · 사랑받지 못하는 마음 · 수치심과 · 죄책감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이를 해결해주는 것이 연명의료중단보다 더 본질적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임종에 임한 사람의 심리적 영적인 갈등을 해결하여 품위 있는 마무리를 안내하는 싸나톨로지(Thanatology) 죽음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부의 순결한 드레스의 행렬처럼 온산을 춤을 추었던 아카시아 꽃이 우수수 발 아래로 내려왔다. 어떤 것은 오래되어 색이 노랗게 변했고, 어떤 것은 금방 내려왔는지 여전히 온기가 남아있다. 이미 일찍 내려온 꽃잎들이 바람에 휩쓸려 저희끼리 인정을 나누려는지 이리저리 서로 이마를 맞대고 아심아심 다음 삶을 꿈꾸고 있다.
이들의 모습이 어찌 단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어찌 꿈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래로 내려오는 이들의 행렬에 어찌 사랑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온 땅에 꽃비처럼 널 부러진 이들의 모습을 어찌 그냥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래로 내려오는 아카시아 꽃의 행렬에서 인간다움을 회복해 나가는 죽음교육을 다시 한 번 꿈을 꿔본다. 내년 유월이면 다시 온산을 눈부시게 수놓을 아카시아 꽃들의 화려한 부활을 그려본다.
※필자약력
·국제 싸나톨로지스트(국제표준 죽음교육전문가)
·전일의료재단 이사장
·한국유방암총연합회 자문위원
·아시아 만성기의료학회 수석부회장
·전일의료재단 이사장
·한국유방암총연합회 자문위원
·아시아 만성기의료학회 수석부회장
※본 내용은 기고자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머니위크의 편집방향과는 무관합니다.
<저작권자 © ‘존중받는 개인, 부강한 대한민국’ 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