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속한 사태수습을 위해 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미얀마 가스전 매각 문제를 놓고 포스코 수뇌부와 마찰을 빚던 전병일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이 결국 물러났다. 지난 16일 열린 임시 이사회를 통해 자진 사의를 표명한 것.
전 사장은 사장직에서 물러나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보좌역을 맡기로 했다. 한달 가량 지속된 포스코의 내홍은 이렇게 일단락됐다. 하지만 후폭풍이 인다. ‘전병일 사퇴’는 포스코그룹 전반에 걸쳐 적지않은 '뒤끝'을 남겼다.
◆ 포스코-대우, 그 불편한 동거
‘항명’ 사건으로 평가받는 이번 사태는 포스코와 대우 간 미묘한 갈등에서 비롯됐다. 지난 5월22일 미얀마 가스전 매각과 관련한 보고서가 외부로 유출된 게 발화점이다. 당시 보고서 내용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우인터 직원들에게 알려졌고 전 사장은 나흘 뒤인 26일 사내게시판을 통해 “포스코의 구조조정은 미얀마 가스전과 같은 우량자산을 매각할 게 아니라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라며 공개적으로 포스코를 비난했다.
다급해진 포스코로선 권 회장이 직접 나서 “(미얀마 가스전을) 당장 팔 생각이 없다”고 밝힌데 이어 미얀마 가스전 매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조청명 가치경영실장과 한성희 홍보실장을 해임하며 갈등 봉합에 나섰다.
하지만 ‘항명한’ 전 사장에 대한 경질설이 불거졌고 이를 인지한 전 사장이 사외이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퇴불가 의사까지 피력하자 포스코와 대우인터내셔널간 갈등양상은 극에 달했다. 결국 주변의 분위기를 인식한 전 사장이 자진 사퇴의 길을 택해 상황이 종료됐다는 게 이번 사태를 보는 포스코 안팎의 시선이다.
사실 포스코와 대우인터내셔널의 갈등은 인수와 피인수 관계가 맺어진 때부터 줄곧 있어왔다. 지난 2010년 포스코는 3조3724억원을 들여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했지만 그로 인한 시너지효과는 그리 크지 못했다. 낮은 수익성과 높은 차입비중으로 대우인터내셔널이 포스코의 재무건전성을 해친다는 평가가 많았던 탓이다. 실제 대우인터내셔널의 영업이익률은 1%대지만 부채비율은 300%에 육박했다.
대우인터내셔널 내부에선 포스코를 '점령군'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남아있다. 지난 2013년 대우그룹의 모태인 대우인터내셔널 부산공장 매각 때만 해도 내부 반발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미얀마 가스전 사업 매각 방침이 외부를 통해 알려지자 ‘정통 대우맨’인 전 사장이 총대를 메고 포스코 수뇌부를 공격했다는 게 보편적인 주변의 평가다. 그도 그럴 것이 대우인터내셔널에 있어 미얀마 가스전 사업은 현재 회사 영업이익의 80%를 차지하고, 향후 20년 이상 연간 3000억원 이상의 이익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핵심자산이다.
◆ 상처입은 '권오준 리더십'
전 사장의 사퇴로 그간의 갈등이 진정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권오준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부정기류가 강하다.
우선 계열사(대우인터내셔널)와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포스코그룹 전반을 지휘하는 권 회장의 리더십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포스코가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며 수익성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에 총력을 쏟는 상황에서 터져나온 '분란'인 터라 리더로서 권 회장이 입은 타격은 크다.
여기에 사태를 봉합하는 과정에서 오락가락 인사행보를 보인 것도 논란이 됐다. 권 회장은 지난 10일까지만 해도 전 사장에 대한 해임을 추진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전 사장이 사외이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임하지 않겠다”고 반발하자 하루만인 11일 전 사장의 행동에 대해 그 어떤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말을 바꿨다.
전 사장과의 갈등설이 언론에 보도된 책임을 물어 임명된지 몇달 되지도 않은 홍보담당 임원을 경질한 것도 대인배답지 못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3월 취임 당시 권 회장은 “위대한 포스코를 재건하겠다”며 당찬 취임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리더십에 대한 우려는 1년 반 동안 줄기차게 제기됐다. 취임과 동시에 재무구조개선과 철강 본연의 경쟁력 강화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포스코의 실적이 소폭 회복된 것을 빼고는 구조조정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썩 좋지 못하다.
지난해 말 대표적인 부실 계열사인 포스코플랜텍에 2900억원을 지원했지만 이 회사는 올 1분기 700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해 워크아웃을 추진 중이다. 때문에 부실 계열사에 수천억원대의 회삿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정작 수익성이 큰 미얀마 가스전을 매각하려 한 권 회장의 모습에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들의 섭섭함은 극에 달했을 법하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 지금 재계는 자신의 리더십 부재를 덮으려다 ‘전병일 사퇴’로 오히려 리더십에 생채기를 남긴 권오준의 포스코를 다시 주시한다.
권오준 ‘보좌관’ 된 전병일, 왜?
일단 ‘보상 차원’이라는 말이 나돈다. 공식적으로는 ‘자진사퇴’의 모양새를 취했지만 포스코 수뇌부의 압력에 의한 타의적인 사의표명이었고 그에 대한 대가로 권 회장이 자리를 만들어 준게 아니냐는 시선이다.
물론 포스코 측에선 ‘전 사장의 역할론’을 거론하며 펄쩍 뛴다. 전 사장이 포스코그룹에 합류해 대우인터내셔널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민차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것. 실제 전 사장은 국민차사업을 초기부터 진두지휘해온데다 사우디측 파트너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 측 인사와 좋은 인맥을 맺고 있어 본 계약 체결까지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 기대된다.
다만 그 이후가 문제다. 회장 보좌역이 임기가 보장된 자리가 아니어서 본 계약 체결 후 전 사장의 거취는 또다시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