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배구조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폐쇄적이던 롯데 이미지를 탈바꿈하기 위한 시도다. 주요 롯데계열사들도 '신동빈 체제'로 옷을 갈아 입고 있다. 67년 만에 새 리더를 갖춘 '뉴 롯데'의 관전포인트를 짚어봤다.
◆주주친화적 경영행보, 복잡한 지분구조 바뀐다
신동빈 회장이 한·일 롯데 '원톱'으로 올라서면서 달라지는 점은 주주친화 경영과 투명경영 강화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롯데의 순환출자 구조에 대한 비난여론을 의식해 주요 계열사의 상장을 통해 지배구조 개선을 꾀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철저히 수익중심의 무차입 경영을 펼친 신 총괄회장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신 회장은 최우선적으로 한국 롯데 지주사격인 호텔롯데의 상장과 연내 순환출자 고리의 80% 가량을 해소하겠다고 공언했다. 계열사 상장을 놓고 신 총괄회장이 '회사를 다른 곳에 파는 것'으로 인식한데 반해 신 회장은 '새로운 투자기회'로 보고 있다. 본격적인 작업에도 들어갔다. 롯데는 지난 8월19일 국내외 10여개 증권사에 호텔롯데의 IPO 주관사 선정을 위한 제안서(RFP)를 발송했다.
롯데 관계자는 "증권사로부터 8월31일까지 제안서를 받아 숏리스트(선발 후보 명단)를 선정하고 9월 초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IPO 주관사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신 회장은 롯데정보통신을 비롯해 세븐일레븐(코리아세븐), 롯데리아 등의 주요 계열사 상장도 검토 중이다. 여기에 투명한 의사결정 확보 차원에서 자산 규모 3000억원 이상의 모든 계열사에 사외이사를 두기로 했다. 현재 롯데그룹 비상장 계열사의 90% 이상이 자산 3000억원을 넘는다.
◆롯데 M&A 주도한 '불도저'
그동안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 했던 인수합병(M&A)에도 신 회장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평소 신 회장은 좋은 매물이 나오면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다만 지나치게 안전경영을 추구한 신 총괄회장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신 회장은 그동안 롯데의 M&A를 주도했다. 지난 2004년부터 현재까지 그를 중심으로 성공한 딜은 30여건에 달한다. 2010년 GS리테일 백화점·마트부문(1조3000억원)을 비롯해 하이마트(1조3000억원) 등 1조원이 넘는 굵직한 M&A를 성공시켰다. 올해는 1조원 규모의 KT렌탈 인수를 총괄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이를 통해 2004년 23조원에 불과했던 한국 롯데 매출을 2010년 61조원으로 3배 가까이 늘렸고 지난해에는 93조원으로 크게 불렸다.
그가 M&A에 욕심을 낸 이유는 증권사 근무 경험이 컸다. 그는 1981년 일본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7년간 근무했다. 이곳에서 선진기업의 재무관리와 국제금융 시스템 파악 등 국제감각을 익혔다. 선진 기업들이 M&A로 성장하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본 그는 '안전'보다 '공격적 경영'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롯데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이 '안전'에 초점을 뒀다면 신 회장은 불도저 경영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계열사 역할 변화… 롯데케미칼 주목받다
'뉴 롯데' 체제에서 예견되는 또 다른 변화는 계열사들의 역할 부분이다. 신 회장이 롯데 경영권을 쥐면서 가장 관심 받게 된 계열사는 롯데케미칼이다. 앞으로 석유화학분야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도 그렇지만 자신이 롯데 입사 후 첫 경영수업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실제 롯데케미칼에 대한 신 회장의 애착은 남다르다. 이 회사는 2조9000억원을 들여 미국 석유화학기업인 액시올과 함께 연 100만톤 규모의 에틸렌 공장 및 연 70만톤 규모의 에틸렌글리콜 공장을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세울 계획이다.
오는 2018년 상업생산에 들어가면 롯데케미칼의 에틸렌 생산량은 연 370만톤에 달해 아시아 민간 석유업체 중 1위에 오른다. 앞서 신 회장은 2010년 말레이시아 석유회사인 타이탄 인수에 1조5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이는 롯데그룹 M&A 역사상 가장 높은 금액이다.
신 회장은 지난 1990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전신)을 통해 한국 롯데에 처음 몸을 담았다. 그가 신임하는 측근들 가운데 롯데케미칼 출신들이 유독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시 신 회장과 인연을 맺은 인물은 지금까지 롯데그룹 내 핵심 보직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이다. 1979년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한 그는 신 회장이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있을 때 바로 아래 부장이었다. 한국어가 서툰 신 회장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업무를 보고해 신 회장으로부터 신임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신 회장은 롯데의 굵직한 사업을 대부분 황 사장에게 맡겼다.
롯데 관계자는 "모태가 된 식품사업도 신경을 쓰겠지만 신 회장이 향후 주력할 사업은 석유화학과 관광·서비스 사업이 될 것"이라며 "자연스레 롯데 계열사의 역할도 신 총괄회장 때와는 다르게 움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 적극적 대외행보 왜?
신동빈 회장이 대국민 사과 등 자신의 색깔을 이처럼 적극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롯데그룹의 '원톱'으로 올랐지만 그렇다고 후계자로서 신 총괄회장의 낙점을 받은 것은 아니다. 언제든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과 친족들이 보유한 지분을 통해 반격에 나설 수 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신 회장을 상대로 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 대표 취임 무효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너로서의 역할을 자처한 것은 롯데의 후계자가 자신임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목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로서 가족간 분쟁으로 드러난 롯데의 적폐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도 본인 중심으로 롯데를 재도약시키겠다는 책임 있는 리더십을 보임으로써 명실상부한 1인자 지위를 굳히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